[월요칼럼] 한국의 카르텔들

  • 허석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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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7-17 06:56  |  수정 2023-07-17 06:56  |  발행일 2023-07-17 제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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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석윤 논설위원

얼마 전 김승환 전 전북교육감의 저서와 관련된 인터넷 기사에 눈길이 갔다. 평범한 책 제목(나의 이데올로기는 오직 아이들)과는 달리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2010년부터 2022년까지 내리 3선을 한 그의 재임 시절 회고담은 교육계 비리에 대한 적나라한 폭로로 가득했다. 특히 그가 2010년 7월에 검사 출신 변호사와 나눴다는 대화가 압권이다. 그 변호사는 "4년 동안 100억원만 챙기면 매우 점잖은 교육감이라는 평가를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단다. 이 말은 점잔 빼지 않으면 더 챙길 수 있다는 뜻일 거다.

김 전 교육감은 '100억 발언'이 허튼소리가 아님을 금방 알게 됐다고 한다. 각종 공사계약에 따르는 리베이트만 '점잖게' 받아도 그만한 돈은 될 거라는 것. 거기에 더해 직원들의 승진용 뇌물도 짭짤한 수입원임을 파악했다. 물론 교육감 혼자 다 해 먹는 구조는 아니라고. 교육청 간부들과 실무진, 수많은 사업자의 묵인·협력이 없으면 드러날 위험성이 있으니. 교육청 내부와 주변 모두 한통속이었던 셈이다. 그러면 외부 감시는? 의문에 대한 답도 책에 들어 있다. 지역 각계 인사들의 온갖 청탁을 기록한 내용이 그것이다.

교육계의 '비리 카르텔'이 그토록 거대하고 은밀했다니 놀랍다. 더 놀라운 건 전직 교육감의 생생한 '증언'에도 큰 반향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일 수 있다. 사람들이 그의 말을 믿지 않거나, 설사 그렇다고 해도 별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또 특정 지역에만 있었던 과거의 교육 비리로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이유들은 타당성이 낮다. 그보다는 이런저런 카르텔이 워낙 많고 비리도 만연하다 보니 어느새 우리 사회가 무감각해진 건 아닐까.

요즘 '카르텔'이란 말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권 카르텔과의 전쟁'을 선포하면서다. 윤 대통령이 갑자기 카르텔을 언급한 건 아니다. 2년 전 대선 출마 명분의 핵심 키워드로 내세웠다. 출마 선언문에서 "정권과 이해관계로 얽혀 권력을 사유화하고 부패한 먹이사슬을 구축한 소수의 이권 카르텔을 혁파하기 위해 정권 교체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 당시에는 이권 카르텔 지목 대상이 명확하지 않아 정치적 수사(修辭) 정도로 읽혔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빈말을 하지 않았다. 그동안 마음속에 품고 있던 칼을 꺼내 들었다. 민주당 정권 인사들과 신재생·태양광 사업, 운동권 세력 및 노조(민주노총·건설노조·화물연대), 시민단체, 사교육 시장에 칼끝을 겨누고 있다. 또 최근 개각을 통해 스스로를 '반카르텔 정부'로 규정하고, 공직사회까지 포함한 이권 카르텔과의 전면전에 나선 상황이다.

대통령이 앞장서 이권 카르텔을 뿌리 뽑겠다는 데 반대할 이유가 없다. 지지와 응원을 보내는 국민도 많다. 하지만 우려되는 부분도 있다. 대(對)카르텔 전선(戰線)이 한쪽에만 치우쳐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념적 성향이 다르거나 힘없는 집단 위주로 카르텔 낙인을 찍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실, 넓은 의미의 카르텔로 치자면 법조계 만한 데가 없다. '유전무죄'를 낳는 전관예우만 해도 사라질 기미가 없다.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도 여전하다. 국회는 또 어떤가. 긴 설명이 필요치 않다. 세계 최고의 특혜를 거머쥔 기득권 카르텔의 표본 아닌가.

허석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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