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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현준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사무국장) |
지난 상반기를 되돌아봤을 때 가장 주목되었던 점은 발굴, 지원, 지속이라는 생태계 선순환을 위한 지원 체계가 완성되었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대구 영화계의 가장 큰 장점은 창작자의 역량과 인적 네트워크였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창작자라는 인적 인프라 외에 다른 인프라는 부족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소수의 창작인력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서로에게 의지하며 작업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그래서 다른 지역보다 커뮤니티가 강해졌고, 결과적으로 이는 좋은 작품으로 발현될 수 있었다.
2019년부터 시작된 대구영화학교(Daegu Film School)는 인적 역량을 더욱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난 4년간 대구영화학교 졸업생 수는 48명이다. 이 중 절반 이상이 지역의 현장에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절대적인 창작인력의 수가 늘어나기도 했지만, 육성된 신진 창작자들은 선배 영화인들의 작품에 자연스럽게 스태프로 참여하였고, 이러한 현장경험은 이들을 더욱 빨리 성장시키는 촉매제가 되었다.
성장하는 인적 인프라에 발맞춰 지역영화 지원 시스템도 점차 개선되어왔다. 올해에는 세 개의 지원 사업을 통해 총 11편의 작품이 공적 지원을 받았다. 지원 분야 역시 기획개발, 제작, 배급, 후반작업 등 영화 제작 전 분야로 확장되었다. 여기에 지난 5월 지역 최초의 영화 후반작업 시설과 전문편집실이 구축되면서 작품의 최종 완성단계까지 안정적으로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은 큰 진전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영화의 후반작업 중 사운드 분야가 빠진 것이 아쉽지만, 그럼에도 필요성이 높은 시설인 만큼 현장의 창작자들에게는 활용도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변화의 핵심 키워드는 '내실'과 '체감'이다. 어떤 변화는 자칫 현장과 괴리가 있을 수 있다. 훌륭한 인프라가 갖추어지더라도 실제 활용하는 사람이 적어 유령화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역 영화계의 이 변화들은 현장과 맞닿아 있다. 그래서 실제 이 시스템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효용성이 클 수밖에 없다. 효용성은 결국 사람을 머무르게 하고 활동을 지속할 수 있게 만든다.
두 번째 주목할 점은 식지 않는 창작 열기와 작품적 성과다. 앞서 언급대로 창작인력이 많이 육성된 만큼 창작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였고, 수요에 대응하는 지원 시스템의 구축은 양질의 작품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지난 5월에 열린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김현정 감독이 단편영화 <유령극>으로 감독상을 수상하였다. 이 작품은 원주에서 제작지원을 받았지만, 연출을 맡은 김현정 감독과 촬영을 맡은 고현석 촬영감독 등 주요 스태프가 대구 출신이다. <유령극>은 최근 발표된 제25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단편 경쟁 부문에도 진출했다. 더 놀라운 점은 같은 영화제에 또 다른 대구작품 3편이 함께 선정되었다는 점이다. 채지희 감독의 <점핑 클럽>, 권민령 감독의 <사라지는 것들>이 단편경쟁 부문에, 유지영 감독의 장편영화 <나의 피투성이 연인>이 장편경쟁 부문에 진출하였는데, 경쟁부문에 선정된 16편의 한국작품 중 4편이 대구를 기반으로 한 영화라는 점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 중 <나의 피투성이 연인>은 동유럽의 칸영화제라고 불리는 체코 카를로비 바리 국제영화제에서 한국 영화로는 최초로 경쟁부문 대상(프록시마 그랑프리) 수상이라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라, 장주선 감독의 <겨울캠프>가 서울독립여성영화제에 초청되었고, 시니어 영화 커뮤니티인 '청바지'의 <이상한 희수연>은 서울국제노인영화제에서 한국단편경쟁 우수상을 수상했다. 미얀마 출신 감독의 미얀마 민주화 투쟁을 담은 다큐멘터리 <지금은 멀리 있지만>은 인천에서 열린 디아스포라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하는 등 고른 성과를 보여주었다.
작품의 질적 향상은 올해 24회를 맞는 대구단편영화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심사를 하면서 전반적으로 완성도가 높아 놀랐습니다. 그리고 장르가 다양한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꾸준하게 대구에서 영화가 만들어지면서 경험과 네트워크가 축적되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제24회 대구단편영화제 애플시네마 예선 심사평)
지역영화 부문인 애플시네마에는 총 23편의 영화가 출품되어, 그중 10편이 상영작으로 결정되었다. 4, 5년 전만 해도 애플시네마 상영작이 불과 5편 내외였던 것에 비하면 큰 변화이다. 그만큼 지역영화의 완성도가 높아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2023년 상반기에도 지역 영화계는 쉴 새 없이 달려왔다. 계속해서 들려오는 영화산업의 위기, 부산국제영화제 등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제들의 갈등 소식 등 영화계에는 어두운 뉴스만이 드리웠지만, 지역 영화계는 그것과는 무관하게 마치 숙명인 듯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다. 물론 앞으로도 그 이야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첫 번째는 챕터는 사람이라는 하나의 가능성에서부터 시작되었지만, 이제 그 가능성이 훨씬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의 두 번째 챕터는 훨씬 다채롭고 풍성해질 것이다.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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