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생각의 감옥

  • 허석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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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8-01 06:56  |  수정 2023-08-01 06:56  |  발행일 2023-08-01 제23면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프랑스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가 남긴 유명한 문구다. 어려운 철학적 논제이지만, 간단히 말하면 이렇다. '내 존재를 의심하는 것 자체가 나로부터 나온 생각이기에 내 존재가 증명된다'는 것이다. '생각=존재'라는 데카르트의 주장은 맞는 것일까. 철학자들 사이에서 많은 논쟁이 있었지만 명쾌한 결론은 없다. 이 문제는 앞으로도 미지의 영역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인공지능(AI) 시대가 도래하면서 결정적인 반론의 여지가 생겼다. 스스로 생각하는 AI는 인간 존재와 뭐가 다른지에 대한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어쩌면 앞으로는 인간 존재를 생각이 아닌 감정으로 규정하는 게 맞을 수도 있겠다. "느낀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로.

사실, 인간의 생각은 생각보다 대단치 않다. 생존을 위해 장착된 일종의 자동 프로그램이다. 때문에 생각은 인간 의지와 무관하게 하루에도 수만 번 저절로 떠올랐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그 증거는 지금 당장 찾을 수 있다. 단 10초만이라도 생각을 완전히 끊으려고 시도해 보면 된다. 물론 의도적, 창의적인 생각도 없진 않지만 드물다는 게 문제다. 보통 인간의 생각은 긍정보다 부정성이 훨씬 강하다. 인간 무의식에 뿌리박힌 두려움과 죄의식에서 파생된 생각의 내용물은 주로 쓸데없는 것들이다. 과거에 대한 후회와 집착, 미래에 대한 불안 따위가 대부분이다. 인간 특성상 '생각의 감옥'에서 탈출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고통을 덜 받는 방법은 있다. 생각에 이리저리 끌려다니지 말고 한 발 떨어져 지켜보는 게 핵심이다. 그러다 보면 생각이 내가 아니라는 사실을 눈치챌 수도 있다.

허석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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