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사자성어로 본 새만금 잼버리

  • 허석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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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8-14 06:54  |  수정 2023-08-14 06:53  |  발행일 2023-08-14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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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석윤 논설위원

#풍비박산(風飛雹散)

대한민국의 자존심이 무너졌다. 제25회 세계스카우트 새만금 잼버리가 역대 최악의 오명을 남겼다. 6년간 준비했다는 행사가 어떻게 이 지경이 됐을까. 폭염·태풍 탓할 게 없다. 차라리 다행이다. 뒤늦게나마 대회 준비가 그토록 부실했음을 알게 됐으니. 외신들의 질타는 당연했다. 비싼 돈 내고 자녀를 보낸 해외 학부모들은 분노했다. 홍보·경제 효과는커녕 국격만 훼손됐다.

#백공천창(百孔千瘡)

한마디로 엉망진창. 150여 개국에서 온 4만3천여 명에게 '지옥훈련'이라도 시킬 셈이었나. 애초에 대회 장소부터 부적절했다. 한여름 땡볕에 나무 한 그루 없는 뻘밭이라니. 이에 대한 우려가 많았음에도 별다른 보완 대책이 없었다. 아무리 폭염이라지만 온열질환자가 속출한 건 명백한 인재(人災)였다. 야영지 시설도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화장실·샤워실은 더러운 데다 턱없이 모자랐고, 곰팡이 달걀, 바가지, 해충 피해 등 온갖 문제가 속출했다.

#무사안일(無事安逸)

새만금 잼버리 유치가 결정된 건 2017년이었다. 오랜 준비 기간 동안 뭘 했는지가 미스터리다. 부지·도로 등 기반 시설 공사가 2022년 6월에 완료됐다지만 여전히 부실투성이다. 배수가 잘 안 되고 습기·악취에 취약한 상태다. 운영 준비 과정에서의 무사안일은 더 심각하다. 처참한 실패를 피할 수 있었던 기회를 다 놓쳤다. 무엇보다 2015년 7월 일본 야마구치현 잼버리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했다. 그때도 '폭염 속 간척지'에서 치러져 환자가 속출하는 등 큰 곤혹을 치렀기 때문이다. 또 2019년 정부보고서에도 새만금 매립지가 태풍·폭염·위생 등에 취약하다는 점이 적시돼 있었다. 하지만 누구 하나 나서서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새만금의 악몽'은 이미 예견돼 있었던 셈이다.

#본말전도(本末顚倒)

전북도는 잼버리를 미끼 삼아 나랏돈 빼먹기에만 골몰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실제로 새만금 고속도로와 국제공항 등 SOC(사회간접자본) 사업에 수조 원의 국비를 챙겼다. 그럼에도 정작 잼버리 야영장 시설은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 말 그대로 '염불보다 잿밥'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 직접적인 대회 준비에 투입한 1천100억여 원의 용처도 납득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시설비 예산이 130억원인데 조직위 운영비·사업비가 870억원? 잼버리를 핑계로 한 공무원들의 외유성 출장도 '흥청망청'에 다름없다. 이래저래 배보다 배꼽이 더 컸다.

#책임전가(責任轉嫁)

잼버리 파행에 대한 '네 탓 공방'이 점입가경이다. 여당은 문재인 정부와 전북도 잘못으로 몰고 간다. 물론 잼버리 사전 준비에서부터 운영에 이르기까지 일말의 책임을 묻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현 정부의 남 탓 역시 자가당착이다. 1년 3개월이면 예상되는 문제를 방지하기에 충분했다. 관건은 시간이 아니라 관심과 노력 부족이었다. 잼버리 주관 부처인 여성가족부 장관은 몇 차례나 "완벽하게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걸 어찌 일개 장관의 거짓말로만 볼 수 있을까. 새만금 잼버리가 시작보다는 끝이 나았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그렇지만 실패를 되돌릴 순 없다. 낙장불입이다. 만시지탄이지만 같은 과오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
허석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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