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권력유한

  • 이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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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9-06 06:57  |  수정 2023-09-06 06:52  |  발행일 2023-09-06 제27면

1975년으로 기억한다. 새벽부터 우체국 앞에서 줄을 선 날이 있었다. 아프리카 가봉의 오마르 봉고 온딤바 대통령 방한 기념 우표를 사기 위해서였다. 안타깝게도 훗날 이사를 가면서 우표를 잃어버렸다. 휘귀본은 아니지만 지금은 나름 값어치를 할 게다. 그가 2007년에도 방한해 노무현 대통령에게 "한국의 봉고 승합차 이름은 내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했다. 그럴듯한 얘기 같지만, 사실 이 차명(車名)은 일본 마쓰다의 '봉고'를 그대로 차용한 것이다. 어쨌든 봉고 대통령의 이런 자찬성(自讚性) 멘트는 한국과의 각별한 인연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42년간의 독재 집권 동안 모두 4차례 한국을 방문한 친한파였다. 첫 방한 땐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카 퍼레이드도 하는 등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큰 화제를 모은 탓인지 그가 한국에서 여배우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가짜뉴스도 나돌았다.

2009년 오마르 봉고가 세상을 떠난 뒤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이는 다름 아닌 그의 아들 알리 봉고 온딤바였다. '공화국' 가봉이 사실상 '세습 왕조국가'가 된 것. 아들도 친한파다. 다섯 차례나 방한했다. 지난해 7월엔 윤석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과거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에도 출연했다. 그런 그가 최근 쿠데타에 의해 축출됐다. 최근 치러진 대선에서 3연임이 확정되자 군부가 들고 일어선 것. 그는 올해로 14년째 재임 중이었다. 부자(父子) 합쳐 56년. '권력유한(權力有限)'을 다시금 느끼지만, 또 다른 독재의 서막인 것 같아 씁쓸하다. 그나저나 북한의 세습 통치는 언제쯤 끝이 날까. 3대(代) 도합 75년째다. 이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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