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프로구단과 연고지

  • 홍석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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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9-06 07:01  |  수정 2023-09-06 07:01  |  발행일 2023-09-06 제26면
프로구단 KCC 떠난 전주
오리온스에 버림받은 대구
두 도시 팬들 동병상련 느껴
프로팀은 단순한 이익 아닌
문화서비스라는 공공재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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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천 체육부장 겸 NFT 팀장

KCC는 전주에서 정규리그 2회 우승과 챔피언결정전 3회 우승을 거두며 '농구 명가'의 위상을 드높였다. 최근에도 성적과 인기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구단으로 명성이 높다. 이런 KCC가 최근 연고지를 부산으로 옮기기로 했다. 2001년 대전 현대를 인수하면서 전주로 건너간 KCC는 창단 22년 만에 전주를 떠나는 것이다. 연고지 이전의 원인으로 새 체육관 건립 문제로 발생한 구단과 지자체의 감정싸움이 꼽히고 있다. 구단은 전주시가 약속을 이행할 의지가 없다는 입장이고, 전주시는 구단 이전이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주장이다. 이 과정에서 소외된 전주시민들과 팬들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대구에도 비슷한 상처가 있다. 이제는 먼 기억 속의 이름인 대구 동양이 그 주인공이다. 대구 동양은 전국 3대 도시라는 지역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만년 꼴찌'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프로농구 출범 직후 2시즌 연속 4강에 진출하기도 했지만, 1998∼1999시즌에는 바닥까지 떨어졌다. 주전들의 군 입대와 외국인 선수의 야반도주로 인해 충격의 32연패를 당하며 KBL 최다연패의 불명예를 안았다. 2000년대 초반 김승현과 힉스라는 걸출한 스타플레이어의 등장으로 통합우승을 차지하는 등 잠깐 반짝하기도 했지만, 어설픈 구단 운영으로 인해 팀이 끝없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당시 구단의 잦은 감독 경질 등 지나친 간섭, 선수 연봉을 둘러싼 끝없는 잡음 등 주먹구구식 운영과 맞물려 '구단 매각'이라는 루머까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동양의 선택은 구단 매각이 아닌 연고지 이전이었다. 32연패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에도 응원을 거두지 않았던 대구 팬들의 함성이 대답 없는 메아리가 되는 순간이었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명문 뉴욕 양키스는 양키스타디움을 새로 지으면서 부지를 공짜로 제공받았다. 또한 양키스는 뉴욕시에 40년 동안 연간 10달러, 총 400달러라는 상징적 이용료만 내고 있다. 물론 뉴욕이라는 연고지를 떠나지 않는다는 조건이 붙어 있지만, 이 같은 뉴욕시 결단의 배경에는 단순히 시의 재정이라는 산수적 계산이 아니라 스포츠 산업이 가지는 지역경제와 지역민에 대한 문화 서비스라는 고차 방정식을 감안한 것이다.

실제로 프로구단은 그 자체로 지역 경제의 큰 축이 되기도 한다. 일본 프로야구 히로시마 카프는 2009년부터 새로운 홈구장 사용료로 매년 60억원을 내고 있다.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신축 구장 효과로 관중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사용료의 200배가 넘는 매출을 올리고 있다. 스포츠산업의 하나인 프로야구단이 지역경제를 이끌고 있는 것이다.

프로스포츠 비즈니스의 특성상 구단, 연고지 변경은 불가피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연고지 팀이란 그 지역에 애정을 가지고 지역 팬들과 함께 호흡을 하며 사랑을 받아야 한다. 말만 연고지라면서 사정이 조금만 여의치 않으면 옮겨 버릴 생각을 하고 있는 한 진정한 팬들의 사랑을 받을 수가 없다.

짧은 지식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큰 프로스포츠 시장 중 하나인 유럽에서는 프로 팀의 연고지 이전은 극히 생소한 단어다. 프로축구단 중 간혹 클럽 재정 문제로 새 인수자가 나타나도 연고지는 물론 클럽 이름조차 바뀌지 않는다. 웬만한 축구팀 역사가 100년을 훌쩍 넘길 수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프로구단 자체가 성취와 실패, 환희와 슬픔을 함께해 온 지역의 역사이자 문화이기 때문일 것이다.

홍석천 체육부장 겸 NFT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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