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아프지 않은 사람이 없다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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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9-07 06:50  |  수정 2023-09-07 06:50  |  발행일 2023-09-07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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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경북부장

요즘 마트를 가면 농산물 사기가 겁난다. 상추, 배추 등 채소는 물론 과일 가격도 너무 치솟아 필요한 최소한의 양만 산다. 지난 7월 경북 예천, 영주 등에서 인명피해까지 불러온 폭우에 연이은 폭염으로 농산물 가격이 폭등했다. 장을 보러 갈 때마다 저절로 손이 오그라든다. 하지만 인명, 재산 피해가 난 이들을 생각하면 이를 푸념할 일이 전혀 아니다. 생때 같은 자식을, 배우자를 잃었던 이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일 것이다. 그 아픔 속에서 일상을 견디고 있다.

지난 7월 폭우의 상처가 가시기도 전에 찾아온 태풍 '카눈'으로 말 못 하고 속앓이를 하는 이들도 있다. 폭우로 인해 경북도 전체가 초상집이 되면서 경북지역에서 열릴 예정이던 여름 축제들이 줄줄이 취소되거나 축소됐다. 봉화은어축제, 영덕황금은어축제, 안동 수(水)페스타, 영주 시원(ONE) 축제 등이 취소됐다. 개막식을 취소하거나 행사 규모를 축소한 축제도 많다. 기록적인 폭우로 인근 지자체에 큰 피해가 발생함에 따라 수재민과 아픔을 나누려는 조치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태풍 '카눈'이 다시 경북지역 대형 행사나 축제를 멈추게 했다. 울릉의 '섬의 날' 행사, 포항의 전국해양스포츠제전이 태풍 영향으로 취소됐다. 축제 취소로 볼거리가 줄어든 시민의 아쉬움이 크지만, 소상공인은 당장 재정적 어려움에 부닥쳤다. 경기 침체, 물가 상승 등으로 소비심리가 얼어붙어 소비자의 씀씀이가 줄고 있는 데다 고금리 부담, 임대료 상승 등으로 이래저래 힘든데 반짝 손님을 기대했던 축제 개최지의 상인들은 말도 못 하고 속앓이를 하고 있다.

올봄부터 시작된 이상저온, 우박에 이어 폭우와 폭염, 태풍으로 농민도 한숨만 쉬고 있다. 특히 전국 최대 재배 규모를 자랑하는 사과를 비롯해 자두, 복숭아 등 과실 피해가 크다. 앞으로 올 가을 태풍까지 생각하니 더 걱정이라는 그들의 한숨 어린 말에 듣는 이의 마음도 무거워진다.

지난달 24일 해양 방류를 시작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로 인해 동해안 어민과 수산물 판매상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들이 대대적인 소비 촉진 행사를 벌이고 있지만, 매출 감소가 현실화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크다. 이래저래 아프지 않고 불편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마음 한쪽이 무거워진다. 그래도 아직 따뜻한 마음이 온기를 지펴주고 있어 희망이 보인다. 집중호우 피해를 겪는 지역에 한걸음에 달려와 폭염 속에서도 내 일처럼 아파하고 도와주는 사람들의 온정이 우선 고맙다. 또 축제를 위해 준비했던 음식 재료를 아낌없이 구매해준 일화도 잔잔한 감동을 준다.

봉화군은 수해로 취소한 봉화은어축제를 위해 준비했던 15t가량의 은어를 전량 소진했다. 저렴한 가격으로 할인 판매하면서 은어를 구매하려는 소비자의 발길이 이어졌다. 경북도청, 경북도 각 시·군, 공기관, 공기업에서의 대량 구매도 잇따랐다. 그래서 힘들지만, 세상을 늘 살 만하다. 아픔은 대개 슬픔을 낳고 그것을 나눔으로써 치유될 수 있다.

시인 바이런은 "행복은 불행과 쌍둥이로 태어난다"고 했다. 기나긴 인생에 여러 파고가 온다. 그래도 신은 우리에게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고통을 준다고 하지 않았는가. 바이런의 말을 다시 해석하면 불행 역시 행복과 함께 온다는 말이리라.

김수영 경북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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