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중독시대

  • 허석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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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9-11 06:53  |  수정 2023-09-11 06:53  |  발행일 2023-09-11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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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석윤 논설위원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쾌락주의자로 유명하다. "행복은 쾌락이며, 쾌락은 유일한 선(善)"이라는 게 그의 신조였다. 말로만 그치지 않았다. 에피쿠로스는 아테네 인근의 한 정원을 구입해 '쾌락 공동체'를 만들었다. 그곳에 몰려든 사람들은 주로 하층민이었다. 노예와 창녀도 있었다니 난잡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공동체는 음식과 술을 극도로 절제하는 금욕주의 집단에 가까웠다. 쾌락을 추구한다면서 금욕을 했다니 선뜻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다. 에피쿠로스 철학이 많은 오해를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제대로 이해를 하려면 에피쿠로스가 추구한 '쾌락'을 물질적·육체적 욕구와 혼동해선 안 된다. 그보다는 소박한 생활을 통한 정신적 만족, 혹은 마음의 평화를 진정한 쾌락으로 여겼다.

하지만 에피쿠로스식 쾌락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은 더 그렇다. 현대사회에서 에피쿠로스의 후예는 씨가 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금기시한 감각적 쾌락을 한껏 부추기는 게 현대문명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현대인의 일상은 즉각적인 즐거움을 찾는 것으로 채워진다. 눈 뜨자마자 TV나 스마트폰을 켜고 인터넷, SNS, 유튜브, 넷플릭스를 보며 하루를 보낸다. 디지털 매체와 잠시라도 분리돼 있으면 불안감까지 느끼기에 강박적으로 접속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음식, 쇼핑, 게임, 도박, 술, 담배, 마약 등 말초적 쾌락을 자극하는 유혹들도 넘쳐난다. 하지만 이 같은 욕구에 탐닉하다가는 '중독'이라는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

현대의학의 눈부신 진보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적으로 우울증을 비롯한 각종 질병이 급증하고 있다. 세상은 물질적 풍요로 가득하지만 되레 더 불행하다는 사람도 많다. 이는 '과잉 쾌락' 시대의 대표적인 중독 부작용이다. 현대사회 중독의 이유를 '변연계 자본주의'의 승리에서 찾은 분석(데이비드 코트라이트 미국 노스플로리다대학 교수)은 타당하다. 사실 충동적·본능적 감정을 관장하는 인간 뇌의 변연계는 온갖 종류의 쾌락을 제공하는 자본주의 제품과 서비스에 길든 지 오래다. 돈벌이에 혈안이 된 기업들은 점점 더 강한 자극으로 사람들을 쾌락에 중독시키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중독이 나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잘 벗어나지 못한다. 당장의 쾌락에 굴복당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관여하는 건 뇌신경 세포의 흥분전달 물질인 '도파민'이다. 즉 기분을 좋게 하는 '쾌락 호르몬'으로, 적당한 양이면 아무 탈이 없다. 행복감을 높이는 필수 장치다. 하지만 현대인은 너무나 쉽게, 빠르게, 과다하게 도파민을 생성한다는 게 문제다. 이는 애초에 설계된 생명의 특성을 거스르는 것이어서 사람 역시 망치게 돼 있다.

중독 의학 권위자 애나 램키는 중독 원리에 관한 흥미로운 사실을 알려준다. '쾌락과 고통의 저울 법칙'이 그것이다. 요약하면 이렇다. 쾌락 쪽으로 기운 저울은 반작용으로 수평 상태가 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쾌락 범위 이상으로 고통 쪽으로 기운다. 사람들은 이 같은 고통(금단증상)을 피하려고 더 강한 자극에 매달리지만 헛수고다. 도파민 내성 때문에 갈수록 쾌락을 못 느낀다. 결국 중독이란 게 행복 추구가 아니라 고통받지 않으려는 몸부림인 셈이다. 중독을 벗어나는 해결책은 특별한 게 없다. 고통이 사라질 환상임을 믿고 고통에 맞서는 게 최선이다.

허석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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