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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구상 |
근현대 문화예술의 발산지이자 6·25 전쟁기 문화예술의 수도였던 대구, 그 찬란했던 기억들이 특히 중구에 많이 남아있다.
중구의 거리와 골목길 곳곳을 걷다 보면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도 든다. 특히 도시철도를 이용하거나 걸어서 여행을 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이에 중구는 '걷기 좋은 계절' 가을에 더욱 빛나는 여행지다. 여기다 문학, 음악, 역사의 흔적이 더해져 가을날 더욱 깊이 있는 여행을 즐길 수 있다. 대구역이 위치해 있어 타지 방문객들의 접근성도 좋다. 위클리 취재진이 찾아간 지난 8일에도 휴일을 맞아 시민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이 중구 종로와 동성로 등지에서 가을 나들이를 하고 있었다.
밀양에서 왔다는 한 40대 직장인은 "가족과 함께 대구 여행을 왔는데 골목골목을 걸으니 가을 분위기도 나고 몰랐던 대구의 역사도 알게 돼 좋았다"고 말했다.
중구에서는 다양한 투어 코스를 선보이고 있어 각자 취향에 맞게 가을 걷기 여행 코스를 선택할 수 있다.
우선 다섯 가지 코스의 '골목투어'가 있다. 제1코스는 '경상감영달성길'(A·B코스)로, 경상감영공원과 향촌문화관·대구문학관, 대구근대역사관, 종로초등(최제우 나무), 달성토성, 북성로 등을 거닐며 대구의 과거를 느껴보는 길이다. 제2코스는 근대문화의 발자취를 주제로 한 '근대문화골목' 코스로, 청라언덕과 3·1만세운동길, 계산성당, 이상화 고택, 서상돈 고택, 대구제일교회 기독교역사관, 진골목 등을 걸어볼 수 있다. 골목투어의 가장 인기 있는 코스 중 하나다.
이밖에 동성로와 남성로를 중심으로 한 제3코스인 '패션한방길'과 젊음과 예술의 거리를 주제로 한 제4코스 '삼덕봉산문화길', 이국적인 건축물과 다양한 종교 문화를 만날 수 있는 제5코스 '남산100년향수길'이 있다.
대구 중구 일대의 또 다른 여행 코스로 대구문학관의 '대구문학로드'가 있다. 대구의 근·현대문학과 문인들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프로그램이다.
△꽃자리 길 △향수 길 △수밀도 길 △구상과 이중섭 길 △독립과 사상의 길 △다방 길 △교과서 속 작가 길 △대구문학관 추천 길 등 총 8개의 코스가 있다.
'교과서 속 작가 길'은 우리가 교과서를 통해 배워 온 많은 작가들의 문학세계를 입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길이고, '구상과 이중섭 길'은 시인 구상과 화가 이중섭의 애틋한 우정을 따라가 보는 길이다. '다방 길'은 과거 단순히 차를 마시는 공간이 아니라 문인들의 집필실이자 출판기념회 등이 열리던 중요한 장소였던 향촌동 일대 다방을 테마로 걸어보는 길이다.
문학로드를 따라 걸으면서 이상화, 이장희, 현진건, 구상, 이중섭, 조지훈, 김춘수 등 대구에서 태어나거나 활동한 문학인과 화가의 흔적을 느끼며 문학 속으로 가을 여행을 떠나볼 수 있다. 길을 걷다가 다리가 아프면 가을이 찾아온 경상감영공원이나 대구예술발전소, 혹은 도심 곳곳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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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이중섭 |
중구는 음악을 테마로 한 가을 여행에도 적합한 여행지다. '전쟁의 폐허에서도 바흐의 음악이 들리던 곳' '유네스코 음악 창의 도시'라는 수식어가 있을 정도로 대구는 음악을 사랑하는 도시다. 그중에서도 중구에는 음악과 함께 여행을 할 만한 장소가 적지 않다.
대구역 바로 옆으로는 대구를 대표하는 클래식 공연장인 '대구콘서트하우스'가 있다. 올가을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피아니스트 조성진, 홍콩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등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와 연주자의 협연이 기다리고 있다.
대구콘서트하우스에서 큰길을 건너 향촌동 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1946년 문을 연 고전음악 감상실인 '녹향'도 만나볼 수 있다.
그리고 중구 방천시장 인근에는 '영원한 가객' 고(故) 김광석의 음악을 느낄 수 있는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이 있다. 김광석의 노래 중에는 유난히 가을, 그것도 쌀쌀해진 가을밤에 어울리는 곡이 많다.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가을의 쓸쓸함과 아름다움이 더욱 깊게 느껴진다.
날씨 좋은 가을날, 여러 테마의 걷기 코스를 따라 중구를 걷다 보면 대구라는 도시의 매력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굳이 경로를 정하지 않고서 발길 닿는 대로 걸어도 좋다. 중구는 워낙 역사와 문화가 집약된 곳이다 보니 계획에 없던 '우연한 만남'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종로에 있는 맥줏집과 대구 한 출판사의 인연처럼 말이다. 중구 종로에 있는 '몬스터즈 크래프트 비어'는 대구의 출판사인 학이사의 전신 이상사(理想社)가 1954년 창립한 곳이다. 그런 인연으로 몬스터즈 크래프트 비어에서는 '책과 맥주'를 테마로 학이사의 판매용 책과 이상사의 전시용 책을 진열하는 특별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문학과 출판문화가 꽃피었던 대구의 과거가 현재와 멋지게 공존하는 모습인 것이다.
노진실기자 know@yeongnam.com
사진=노진실기자 영남일보DB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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