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진정한 선진국'을 향한 열망 또는 열등감

  • 최시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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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0-30 06:55  |  수정 2023-10-30 06:55  |  발행일 2023-10-30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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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시웅기자〈정경부〉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올라선 첫 사례'. 2021년 한국은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설립 이래 지위 격상을 이뤄낸 전무후무한 국가가 됐다. 위상이 오르면서 책임도 늘었다. 하지만 국민들은 여전히 한국이 정말 선진국이 맞느냐고 반문한다.

최근 영남일보 CEO아카데미에서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가 생성형 인공지능(AI)을 주제로 강연을 했다. 김 교수는 '선진국 자격'은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이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을 통해 얻는다고 했다. 시행착오를 감수하고 먼저 부딪혀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한국의 국제적 지위가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올라서는 동안 수많은 다른 선진국이 쌓아둔 '오답노트'를 참고할 수 있었다. 덕분에 어느 국가보다 빠르고 효율적인 성장을 이뤄냈다. 이젠 더 따라잡을 대상이 없다. 경제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한국은 세계를 선도할 수 있는 위치에 올랐다.

'진정한 선진국'을 향한 열망 또는 열등감에서 벗어나는 길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탈출이다. 우리가 반드시 세상을 끌어가야 하는지는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는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란 꼬리표를 떼어내고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렇지만 삼성처럼 거대한 기업의 체질 개선은 쉽지 않다. 일각에선 차라리 지금 가장 잘하는 것에 집중하라고 조언한다.

다른 하나는 김 교수의 말처럼 실패를 각오하는 길이다. 바닥에서부터 쉼 없이 부딪히고 깨지면서 그 안에 숨겨진 혁신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생성형 AI, 초전도체, 양자컴퓨터 등 이전과 완전히 다른 세상이 열리고 있는 터라 그 실패의 가치는 크다. 그런데 정부는 내년도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을 16%가량 삭감키로 했다. 특히, 중소벤처기업부는 25.4%나 줄였다. 나눌 수 있는 파이가 줄어든 만큼 '될 것 같은' 연구개발이 더 인정받는 구도가 예상된다. 국내 국가 연구개발 성공률이 무려 99%에 달한다는 낯 부끄러운 현실이 이어질까 두렵다.

경영계·학계의 변화도 요구된다. '99%'를 만든 건 결국 이들 자신이기도 하다. 취재를 하다 보면 예산·비용에 쪼들려 정부 과제를 따내는 일 자체에 집착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자주 목격한다.

카이스트는 지난 23일부터 다음 달 3일까지 2주간을 '실패주간'으로 지정했다. '카이스트 실패연구소'는 '망한 과제'를 자랑하고, '실패세미나'를 연다. 이런 시도가 우리 사회 각계각층으로 스며들 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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