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다시 만나는…왕가위의 '화양연화'…내 인생의 '화양연화'

  • 노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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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1-17 07:57  |  수정 2023-11-17 08:55  |  발행일 2023-11-17 제12면
영화, 재개봉…추억, 재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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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2046' 포스터. <엔케이컨텐츠 제공>
"10년 전엔 몰랐던 영화의 감동, 다시 보니 느껴져"
"추억의 영화 보면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해"
"인생영화 만추 볼 때마다 새로워"
"볼 만한 영화 없어 명작 찾게 돼"

◆올해도 돌아온 '추억의 영화들'

'만추' '냉정과 열정사이' '샤인'…. 누구라도 한번쯤 들어봤을 만한 영화 제목일 것이다. 어떤 이들에게는 그야말로 '인생 영화'의 제목이다.

추억의 그 영화들이 최근 극장가에 다시 돌아왔다. 과거 개봉했던 영화들이 극장에서 재상영되는 사례가 올해도 잇따르고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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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만추'의 한 장면. 영남일보 DB
극장가에 따르면, 우선 김태용 감독의 영화 '만추' 리마스터링 버전이 이달 재개봉했다. 2011년 첫 개봉을 한 영화 만추에는 탕웨이와 현빈이 출연해 '만추의 시간'만큼 짧고 쓸쓸한 이야기를 보여준다.

11월 재개봉 극장가는 어느 때보다 풍성하다.

영화 '샤인' 역시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이달 다시 관객을 찾아온다.

1997년 개봉했던 이 영화는 호주 출신의 천재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헬프갓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등 영화의 OST도 유명하다.

또 한때 많은 이들의 이탈리아 피렌체 행을 이끌었던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도 다음 달 재상영 소식을 알렸다. 개봉 20주년을 기념한 특별 상영이다.

영화에는 한때 연인이었다가 헤어진 '아오이'와 '준세이'가 등장한다. 일본 작가 에쿠니 가오리와 츠지 히토나리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우리나라에선 2003년 개봉했다. 클래식 멜로 영화의 대표 격인 영화로, 아름다운 배우들이 보여주는 섬세한 연기와 명대사가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

이달 재개봉되는 또 하나의 영화가 있다. 2008년 개봉 이후 15년 만에 재개봉을 확정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다. 고담시를 배경으로 배트맨과 그의 숙적 조커의 대결을 그린 작품으로, 요절한 영화배우 히스 레저를 기억하는 이들에겐 의미가 남다른 영화다. 그가 이 영화에서 조커를 연기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다.

◆불안했던 팬데믹 기간, 다시 돌아온 왕가위 명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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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화양연화' 포스터.<엔케이컨텐츠 제공>
힘들고 불안했던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한 영화 감독의 작품들이 연이어 재개봉되며 큰 관심을 받았다. 바로 홍콩 영화계를 대표하는 왕가위 감독의 영화들이다.

그 시작을 알린 것은 2020년 크리스마스 이브(12월24일)에 재개봉한 '화양연화'다. 2000년 개봉했던 화양연화를 리마스터링해 극장에서 다시 선보인 것이다. '花樣年華 '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찬란했던 시절을 일컫는다. 내내 숨 죽였던 '첸 부인'과 '차우'의 관계처럼 영화도 절제의 미학을 잘 살린다. 이 영화가 오랜 세월의 흐름에도 여전히 감각적으로 보이는 것은 절제된 연출과 연기 때문은 아닐까. 꽃이 지고 나서야 봄이 왔었음을 깨닫듯 인생의 눈부신 순간들도 그때가 지나서야 깨닫기 마련이다. 과거엔 미처 영화 화양연화를 보지 못했거나, 그 매력을 발견하지 못한 이들이 20년 만에 다시 찾아온 화양연화를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2021년에는 국내 일부 극장에서 왕가위 특별전이 진행됐는데, 감독의 또 다른 영화들인 '해피투게더'와 '중경삼림' '타락천사' '2046'이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재상영됐다. 그중 '2046'은 화양연화 그 이후를 보여주는 듯한 영화다. 영화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화양연화의 조각들은 끝을 보지 못한 사랑의 흔적처럼 애처롭다.

이들 영화를 개봉 당시에 접했던 이들은 재상영을 통해 옛 기억을 되살리는 기회를 가졌다. 또 개봉 당시엔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거나 너무 어려 영화를 못 봤던 젊은 세대들은 과거의 명작들을 보면서 그때의 감정을 느껴보기도 했다.

혹자들은 왕가위 감독의 영화들이 팬데믹이 한창이던 시기에 재상영된 것을 두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그의 영화들은 남녀의 사랑과 이별을 넘어 '홍콩'을 은유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미지의 세계로 가는 기차에 탄 사람들'처럼 큰 변화를 앞둔 사람들의 혼란과 불안, 우울 같은 것을 섬세하게 그려내기 때문이다. '시간'에 대한 안타까움과 함께. 팬데믹으로 인해 사람들이 그 어느 때보다 혼란하고 우울할 때 찾아온 왕가위의 영화들은 세월을 넘어 다시 한번 공감과 위로를 건넸다.

◆재개봉 잇따른 이유, 왜?

극장가에서 재개봉이 잇따르는 이유는 뭘까.

패션이 일정 주기로 돌고 도는 것처럼, 영화에도 그런 주기가 있는 걸까. 아니면,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명작의 가치와 매력 때문일까. 혹은 극장가 비수기의 틈새 전략일까.

실제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신작 영화들의 개봉이 무기한 연기되는 등 영화계에 큰 위기가 찾아왔을 때 재개봉 영화들이 구원투수로 등장한 바 있다. 때로는 특정 주제나 배우의 이슈에 맞춰 이벤트성 재개봉이 이뤄지기도 한다.

여러 분석이 있지만 이유를 하나로 단정 짓기는 어렵다. 영화 재개봉은 복합적인 상황이 만들어낸 일종의 문화일 수도 있다.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에겐 명작의 재개봉이 어떤 의미일까.

최근 리마스터링 버전 '만추'를 봤다는 직장인 최모(36·대구 남구)씨는 "개인적으로 '만추'가 인생 영화다. 지금까지 10번은 봤을 것이다. 여백이 많은 영화이다 보니 10여 년 전 처음 봤을 땐 주인공의 감정이나 영화의 깊이에 대해 많은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매년 다시보기를 하니 정말 기가 막히게 잘 만든 작품이라고 느껴졌다"며 "극장 스크린을 통해 다시 한번 영화를 보고 싶었는데, 때마침 재개봉을 해 기쁜 마음으로 보고 왔다. 10년 전으로 되돌아간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고 했다.

또 다른 시네필(영화 애호가) 직장인 서모(49·대구 달서구)씨는 "영화를 정말 좋아해서 많이 봤는데, 취향 때문인지 내가 나이가 든 탓인지 요즘 굳이 극장까지 가서 볼만한 영화가 없는 것 같다"라며 "그래서 예전에 재미있게 봤거나, 혹은 바빠서 놓쳐버린 명작 재개봉에 오히려 더 관심이 간다. (재개봉 영화들은)이미 작품성은 검증받은 영화들이지 않나. 재개봉을 통해 짧게 보고 묵히기에 아까운 명작을 다시 조명하고 그 가치를 재발견해보는 것도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노진실기자 know@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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