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과 창] 병아리와 계란프라이

  • 박봉규 전 대구시 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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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1-29  |  수정 2023-12-11 15:47  |  발행일 2023-11-29 제26면
"기득권 양보있어야 개혁

스스로 달걀 껍질을 깨고

나오면 병아리가 되지만

힘으로 깨져 불판에 놓이면

계란프라이가 되고 말 것"

[시선과 창] 병아리와 계란프라이
박봉규 전 대구시 정무부시장

주역은 변화를 다루는 책이다.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 간다(窮則變 變則通 通則久)는 세상의 기본 이치를 담고 있다. 변화는 생명의 상징이다. 살아있는 것은 무릇 아메바나 바이러스와 같은 단세포 생물조차도 외부 여건에 적응하여 자기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진화한다. 외부의 자극에도 변하지 않고 있는 것은 오직 죽은 것뿐이다.

변화해야만 살아남는 원리는 비단 생명체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나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변화에 성공하면 흥하고 그렇지 못하면 망한다. 역사적 사례 또한 허다하다. 한반도의 변방에 위치하여 삼국 중 가장 약체였던 신라는 왕위를 이을 수 없었던 진골의 김춘추를 왕으로 삼고 김유신과 같은 가야 유민들을 받아들임으로써 삼국통일의 대업을 완수할 수 있었다. 반면 조선은 열강들이 제국주의의 깃발 아래 우리를 삼키려 밀려올 때에도 바깥세계의 정세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당파를 지어 상대를 적대시하면서 내 것 지키기에만 매달리다가 결국 나라를 남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변화와 개혁은 스스로 그 필요성을 느낀 내부 세력에 의해 추진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기득권 세력이 중심이 된 안으로부터의 개혁은 그 속도는 느릴 수 있을망정 개혁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모두의 힘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모으는 장점이 있다. 외부에서 강제된 개혁이 자칫 폭력과 무질서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는 사실과 대비된다. 역사의 고비마다 민란과 반란이 일어나면 심한 경우 왕조의 교체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내부로부터의 개혁은 두 가지 큰 장애를 극복해야만 한다. 체제 안에 머무르고 있으면 성공의 함정에 빠져 변화의 필요성을 자각하기가 어려운 것이 첫째요 더 큰 어려움은 설령 그 필요를 인식하더라도 극한의 상황에 내몰리지 않는 한 기존의 틀을 스스로 깨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개혁에는 기득권의 상당 부분을 내려놓는 희생이 요구되기 마련인데 그것이 쉽지 않다. 말로는 희생을 부르짖지만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만을 보면서 끝까지 기득권 지키기에 매달리게 되는 것이 사람이다. 외곽에서 제기된 압력에 밀려서야 마지못해 변화에 나서게 되지만 대개 때를 놓치기 마련이다.

다행히 과거와 비교하면 오늘은 각 분야에 뿌리내린 민주주의와 IT신기술 덕택에 과거에 비해 개혁을 추진하기가 수월해졌다. 각종 여론조사와 다양한 언론매체의 등장은 국민들이 어떤 변화를 원하고 있는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단서와 답을 제공해 준다. 세상을 향한 촉과 열린 마음만 있으면 가능한 일이다. 변하지 않은 것은 이를 수용하여 행동으로 옮길 의지와 실천력 여부이다.

우리 사회는 각 분야에서 경장이 요구되고 있다. 1987년 민주화체제와 97년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를 넘어선 새로운 비전이 필요하다. 그러나 당장 요구되는 개혁의 내용은 이러한 거대담론이 아니다. 이념도 아니다. 내 삶을 힘들게 하는 발등에 떨어진 문제에 대한 현실적 해결안을 제시하라는 것이요, 생활정치의 영역에서 성과를 내달라는 주문이다. 대체적으로 정치 경제사회의 각 분야에서 기득권의 양보와 희생이 있어야 가능한 것들이다. 쉽게 시행하기 어려운 일들이다. 그러나 안에서 스스로 달걀의 껍질을 깨고 나온 생명은 병아리가 되지만 밖의 힘에 의해 깨져 불판 위에 놓이면 계란프라이가 되고 만다.
박봉규 전 대구시 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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