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일의 방방곡곡 길을 걷다] 양평 용문사 트레킹, 나라가 위태로울 때마다 쇠울음…인고의 세월 견딘 천년목

  • 김찬일 시인·방방곡곡 트레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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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2-15 08:17  |  수정 2023-12-15 08:18  |  발행일 2023-12-15 제14면
신라 신덕왕 때 대경대사 창건한 절
1100살 추정 은행나무 '천왕목' 눈길
전쟁 등 화 피해간 신령스러운 거목
대웅전 우측엔 '금동관음보살좌상'
집착 버리고 자비를 베풀라는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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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사 1천100년 은행나무

매일 바람이 불었다. 수많은 은행잎이 팔랑거리고, 그때마다 거대한 은행나무는 무녀의 춤처럼 관자놀이를 떨리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이테가 1천100년이 넘는다는 은행나무는 넋을 잃고 바라보는 신령스러운 거목이다. 날마다 바라보던 나무는 풍경 속에서 의미를 찾지만, 이 거목은 중생대 쥐라기 후기에서 날아온 시조새처럼 나에게 새로운 현실의 감정을 부어주곤 했다. 그 참에 애증이 홀연 사라지고 순간순간이 명백해지는 지금 여기 용문사 은행나무가 있다. 아울러 눈 위, 아득하게 올려다보이는 눈 위에, 1천100년의 나뭇가지가 있고, 이따금 바람이 불 때마다 푸닥거리하는 은행잎의 실루엣 전설이 있다.

김부식이 만든 삼국사기보다 더 까마득한 신라 말기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麻衣太子)가 나라를 잃은 비탄의 걸음으로 금강산을 가다가 이곳에 심었다는 은행나무, 저 우주보다 더 무궁무진하다는 화엄의 세계를 210자 법성게에 담아낸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고 갔는데 그것이 자랐다는 은행나무. 그러므로 이 은행나무는 탄생부터가 미궁이다. 그나저나 1962년 12월7일에 천연기념물 제30호로 지정되었다. 높이 42m, 가슴높이 줄기 둘레 14m, 가지는 동서로 28m, 남북으로 29m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나무다.

고생대 때의 모습과 유사한 생물 종(種)의 하나인 은행나무는 '살아있는 화석'이다. 고작 100년을 넘기기 어려운 사람의 일생에도 이야기 할머니가 다 풀 수 없는 보따리가 있는데, 하물며 1천100년의 비바람을 견딘 은행나무에서 길어 올리는 이야기 두레박이 왜 없겠는가. 이미 600년 전 조선 세종 때 이 나무에 당상 직첩 벼슬을 내렸다 한다. 어느 옛날, 이 나무를 베고자 톱을 대었을 때, 톱 자리에 피가 흐르고 마른하늘에 천둥 번개가 쳐 작업을 중단했다 하기도 하고, 1907년 정미 7조약으로 군대 해산 및 고종 퇴위에 반발하여 전국적으로 일어난 정미의병 때, 일본군이 용문사를 애면글면 불살라 버렸으나 은행나무만은 불타지 않았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나라에 큰 변고가 생길 때마다 기이한 소리가 들렸다. 8·15광복, 6·25사변에도 1천100년의 은행나무는 그때마다 침묵의 소리를 내었다. 그 소리는 마치 잠언처럼 듣는 사람의 귀를 바늘로 찌르는 쇠 울림이 되었다.

신생대 에오세에 번성하였던 나무. 우둘투둘한 껍질에 방화벽을 만들어 아득한 세월에도 불타지 않고 살아남아 용문사 입구를 지키고 있다 하여, '천왕목(天王木)'이라고 불린다. 열 아름도 넘어 보이는 둥치는 1천100년 동안 성찬이 된 용문사 독경을 끼니로 한 탓이리라. 한갓지게 바람이 다시 불었다. 찾아온 탐방객에게 불꽃처럼 영감을 터트리던, 가장 먼 여행이었던 은행나무. 그 어느 때보다 의아한 수수께끼 얼굴을 하고 그곳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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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사 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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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사 대웅전 삼존불

숲길을 걸어 지척의 용문사로 간다. 절로 가는 길은 자신의 내면으로 걷는 길이다. 대웅전에 도착하고 오른편 금동관음보살좌상을 살펴본다. 14세기에 제작된 보물 제1790호로 앉아 있는 관음보살상이다. 중생의 고통을 보고 그 고통을 없애주는 보살이다. 그러나 누구라도 보살이 될 수 있다. 제 모습을 읽어 내고 자기 자신을 바로 알면 보살이 되는 것이다. 보살(菩薩)을, 뜻글자로 보면 각유정(覺有情)이다. 속세의 정(情)을 가지고 그 바다에 살면서도 깨달은 사람이다. 깨달음은 순간순간 곰비임비 제 모습을 쳐다보는 것이다. 올바른 제 모습 즉 자아는 공(空)이다. 그러므로 보살은 나라는 생각, 너라는 생각, 존재에 대한 집착을 일으키면 이미 보살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리고 보살은 어떤 형상에 사로잡히거나, 무엇인가에 매달려 보시를 해서는 안 된다. 이를테면 금전이나 물질을 바라면서 보시해서는 안 된다. 맛이나 냄새 그리고 소리, 즉 감각에 접촉되거나 마음의 환각에 사로잡혀 보시해서는 안 된다. 보살은 고(苦)의 원인이 되는 집착(執着)을 버려야 한다. 그게 무아(無我)를 척추로 하는 보살도다.

그 옆에 석가모니불, 부처님이 계신다. 우리는 그 아무라도 역시 부처님이 될 수 있다. 부처는 추방된 신이 아니고, 깨달은 사람을 말한다. 우리는 석가모니와 부처를 동의어로 쓰고 있지만, 아무려나 깨달으면 부처가 되는 것이다. 그럼 처음의 각자(覺者), 석가모니가 깨달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분이 출현하여 해결한 것은 생로병사의 4고(4苦)에 시달리고 있는 인생 문제를 치유하여, 이고득락(離苦得樂) 즉 고(苦)를 떠나 낙(樂)을 얻도록 한 것이다. 고(苦)는 흔히 인생은 고해(苦海)다. 즉 '인생은 괴로움의 바다'라고 하는 그 고(苦)다. 여기서 키워드가 되는 고(苦)는 인간 마음이 잘못 만들어 내는 판타지를 말한다. 이를테면 우주의 물질계는 잠시도 쉬지 않고 어떤 무형의 법에 따라 변한다. 물질계는 성주괴공(成住壞空)하여 불멸도 없고, 영원도 없다. 그러므로 물질의 이합집산인 몸에 집착해 자아를 만들고, 불멸의 영혼까지 만들어 믿는 것부터 잘못된 판타지이고, 이런 집착에서 고(苦)가 생긴다고 말한다. 이렇게 우주도 인간도 그 실상이 공(空)임을 터득하면 고(苦)를 떠나 낙(樂)을 얻는다는 것이다. 이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현상학적 해석이다. 그분의 법문은 팔만 사천의 대장경에 수록되어 있어 다 헤아릴 수는 없다.

그러나 중국의 영가(永嘉·665~713) 대사는 증도가에서 '무명실성즉불성(無明實性卽佛性) 환화공신즉법신(幻化空身卽法身) 우리가 버려야 한다고 여기는 어리석음이 바로 부처의 성품이며, 헛것이고 판타지라서 허망하다고 한 내 몸이 바로 법의 몸이구나' 하였다. 그리고 금강경의 제일 사구게(四句偈)를 보면 '불(佛)이 고 수보리 하사대, 범소유상(凡所有相)이 개시허망(皆是虛妄)이고,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想)이면, 즉견여래(卽見如來)라' 하였다. 이 게송(偈頌, 詩)을 풀이하면 '부처님이 수보리에게 말씀하시었다. 무릇 형상이 있는 것은 모두가 다 허망하니라. 만약 모든 형상을 형상이 아닌 것으로 보면 곧 여래를 보리라'고 설했다. 이를테면 모든 형상이 있는 것은, 다 허망하다. 금은보배라 할지라도, 결국은 허망하다. 그 이유는 상(相)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존재는 상이 없는 공(空)이다. 형상은 인연의 법칙에 따라 잠시 나타났다 흩어지고 마는 것이다. 우리가 애지중지하는 몸도 마찬가지로 잠시 나타났다 흩어지는 것이다. 만약에 우리가 형상이 허망한 것을 허망하다고 볼 수 있으면 바로 여래를 보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누구라도 부처님이 되고, 나와 너 존재의 참모습이 드러나 비로소 만물일화(萬物一花) 동체대비(同體大悲), 즉 우주가 하나의 꽃, 하나의 큰 자비가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지혜의 삶, 보살의 삶, 부처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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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사 관음전

다음으로 관음전 산령각, 종각을 탐방한다. 그리고 '정지국사 부도'가 알려져 있다 하여 들러본다. 용문사는 신라 신덕왕 2년(913) 대경 대사가 창건하였다. 고려 우왕 때 지천 대사가 개풍 경천사의 대장경을 옮겨 봉안하였고, 1447년 조선 시대 수양대군이 모후인 소헌왕후 심씨의 원찰(願刹)로 정하면서 보전을 다시 지었다. 일제 치하 의병들이 용문사 일대를 근거지로 무력 항일운동을 하면서, 일본군에 의해 용문사가 대부분 불타 없어졌다. 그 후 중수하였으나 다시 6·25 사변 때 일부 파괴되었고, 1982년 중건하여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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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일 (시인·방방곡곡 트레킹 회장)

절 문을 나서는 마음에 꽃이 만발한다. 저 꽃이 나의 생명에서 피고, 내가 몰랐던 나만의 꽃이었다는 사실에, 그리고 우주가 모두 꽃이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리고 내가 아닌 나를 만나고, 내 안의 수많은 나를, 또 우주를 만나면서, 그것이 모두 꽃이고 즐거움이란 사실에, 찬탄하고 놀랐다.

글=김찬일〈시인·방방곡곡 트레킹 회장〉kc12taegu@hanmail.net
사진=유판도 여행사진작가

☞문의 : 경기도 남양주시 문화관광과 (031)590-4760

☞네비주소 :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신점리 626-1

☞트레킹 코스 : 주차장-용문사 은행나무-용문사-정지국사 부도

☞인근의 볼거리 : 자연휴양림, 수종사, 두물머리 생태학교, 마재 성지, 황토마당, 조류생태습지, 아조타농원, 세지원, 대가농원, 정약용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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