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 경북 영덕 경정리…500년 향나무에 소원 빌고, BTS 뮤비 촬영지 인생샷 찍고…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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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12-22 07:55  |  수정 2023-12-22 07:55  |  발행일 2023-12-22 제15면
500년전 안동김씨 오매마을 일궈
둔덕 위 당산나무 영험함 소문 나
해안 중생대 퇴적지형 풍경 독특
차유마을엔 영덕 대게 원조 비석
왕건 들러 대게 먹었다고 전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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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정3리 오매마을 포구. 포구에 배들이 많고 온갖 어구들도 잔뜩 널려 있다. '○○수산'이라는 간판이 한 집 건너 하나 보일 만큼 확고한 어촌이다.



오매, 오매. 눈높이를 넘어서는 바다는 언제나 놀랍다. 그래서 오매, 오매, 하며 영랑의 시를 흉내 내어 외쳐본다. 그는 오메, 하고 탄하였지만 나는 오매, 하고 부른다. 오매는 동해의 갯마을, 그곳에 사람들이 소원을 빈다는 향나무가 있다고 했다. 이웃한 백불마을에서는 젊은 케이팝 스타들이 화양연화를 외쳤다 했고, 또 그 이웃인 차유마을에서는 고려의 왕건이 대게를 먹었다고 한다. 오매, 백불, 차유, 이 세 마을을 합쳐 경정(景汀)이라 한다. 경정은, 참으로 아름답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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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되었다는 오매향나무. 향나무는 여러 그루가 아니라 한그루라 하며 마을사람들이 동신바위라 부르는 둔덕 전체를 감싸 안고 있다.


◆경정3리 오매

바닷가의 좁고 가파른 땅에 집들이 차곡차곡 자리한 마을이다. '○○수산'이라는 간판이 한 집 건너 하나 보일 만큼 확고한 어촌이다. 포구에 배들이 많다. 온갖 어구들도 잔뜩 널려 있다. 어수선한 물량장 한쪽에 깡통로봇을 닮은 큼직한 난로가 서 있고 소주 한 병, 물 한 통, 캔 커피 하나, 사과 반쪽 따위가 난로 곁을 지킨다. 바람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차가워 오매, 소리마저 얼어버렸다. 경정리 오매마을은 약 500년 전에 안동김씨가 처음 들어와 마을을 일구었고 이어 김해김씨가 들어와 함께 살았다고 한다. 어느 날 풍수지리에 밝은 한 지관(地官)이 지나다 남쪽에 오두산(烏頭山)이 있고 마을 앞에 매화산(梅花山)이 있으니 마을 이름을 오매라고 부르는 게 좋겠다고 했단다. 그때부터 오매다. 까마귀가 열매를 물고 들어오는 형세라 오매라고도 하고 한때는 까마귀가 춤을 추며 들어오는 지세라 오무(烏舞)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마을의 남쪽 끄트머리에서 좁은 골목길을 빠져나가면 몹시 아름다운 암석해안이 나타난다. 골목길에는 바위 같은 둔덕에 비바람 피하듯 몸을 안착시킨 동신당이 있는데 당집의 지붕 위로 향나무 가지가 소복하다. 500년 되었다는 마을의 당산나무다. 향나무는 여러 그루가 아니라 한 그루라 하며. 마을사람들이 동신바위라 부르는 둔덕 전체를 감싸 안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나무에 소원을 빌고 해마다 동제를 지낸다. 인근에까지 나무의 영험함이 널리 알려지면서 소원을 빌러 드나드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 나무를 '오매 향나무'라 부른다. 오매향나무가 바라다보이는 암석해안의 커다란 입석에 수많은 돌들이 층층으로 쌓여 있다. 수많은 소원들은 바위의 수많은 생채기를 메우고 있고, 그들은 하나 되어 저 바닷바람에도 끄떡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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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정리는 해안을 따라 붉은 이암의 지층이 넓게 분포하는데 중생대 백악기의 범람원에 형성된 퇴적지형이다. 풍수적으로 '기 받기 좋은 곳'이라 한다.

◆경정1리 백불

하얀 등대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경정1리로 들어선다. 방파제 끝에서부터 세 사내가 걸어오고 있다. 그들은 방파제 남쪽의 모래밭에 들어서더니 어떤 모의도, 1초의 준비도 없이 '요이 땅'을 외치곤 달리기 시작한다. 왜 순간적으로 충격을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의 뒷모습을 오래 지켜보았다. 정말 최선을 다해 달리던 그들은 한 사람이 휘청하자 달리기를 멈추고는 걸어 걸어 점으로 사라졌다. 모래밭은 500m 정도 된다. 흰 모래밭이 청명한 날이면 금빛이 된다 하여 마을은 백불(白沙)이라 불렸다. 사내들이 사라진 모래밭의 먼 끝에 출입이 금지된 절벽이 자그마한 갑을 이루고 있다. 저곳에서 방탄소년단(BTS)의 화양연화 프롤로그 뮤직비디오를 촬영했다고 한다. 절벽 너머로 오매마을이 희미하게 보인다. 오매에서 절벽은 보다 가깝고 선명하게 보이지만 백불에서 보는 절벽은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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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의 화양연화 촬영지는 경정3리 오매마을에서 보다 가깝고 선명하다. 절벽 뒤편으로 백불마을이 희미하게 보인다.


백불마을은 세종 때인 1449년에 반남박씨가 마을을 열었고 영해박씨와 김해김씨 등이 들어와 함께 큰 마을로 개척했다고 한다. 1425년에 편찬된 '경상도지리지'에 경정포(景汀浦)라는 지명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 마을이 생기기 전부터 경정과 백불이라는 명칭이 두루 쓰인 듯하다. 결국, 아름다움은 오래되었다. 여기저기 청어를 널어 말리는 모습이 보인다. 아무리 보아도 꽁치 같지 않으니 청어일 것이다. '우리만의 별미'로 소용될 만한 양이다. 깨끗하게 배를 가른 커다란 물고기도 서넛 보인다. 마을 정자 옆에 설치해놓은 텐트가 조용히 흥겹다. 텐트를 고정시켜 놓은 줄에도 청어가 널려 있다. 슬쩍 열린 틈으로 술잔들과 청어가 보인다.

항구를 빠져나와 잠시 언덕진 길을 달리면 '경북 동해안 국가지질공원' 안내판을 보게 된다. 몇 개의 파고라와 화장실이 있는 쉼터와 함께 해안으로 내려가는 오솔길이 조성되어 있다. 바닷가는 붉다. 붉은 것은 입자 고운 이암이다. 사이사이 밝게 보이는 것은 모래와 자갈로 이루어진 사암이다. 경정리는 해안을 따라 붉은 지층이 넓게 분포하는데 중생대 백악기의 범람원에 형성된 퇴적지형으로 파도에 깎여 평탄하게 펼쳐진 독특한 풍경을 보여준다. 이곳은 '기 받기 좋은 곳' 또는 '기 바위'라 불린다. 내륙으로 뻗어 오르는 청룡과 바다로 내려온 백호가 어우러져 있는 풍수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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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정2리 차유마을. 영덕대게 원조마을이라 한다. 축산항의 죽도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경정2리 차유

붉은 갯바위 지대 너머가 곧장 경정2리다. 바다로 미끄러지는 땅에 집들이 들어선 모습이 오매마을과 비슷한데 좀 더 급하고 빼곡하다. 마을의 이름은 차유(車踰)다. 고려 충목왕 2년인 1345년에 영해부사 정방필이 마을 순시를 하면서 우마차(車)를 타고 고개를 넘어왔다(踰)고 해서 생긴 이름이라 한다. 축산항의 죽도산이 손에 잡힐 듯 환히 가깝다. 마을 앞바다는 온통 갯바위고 방파제는 6개나 된다. 짧은 것, 길고 넓은 것, 굽은 것, 꺾인 것, 삐딱한 것, 곧은 것 등 모양도 제각각이다. 가장 남쪽 작은 곶 안쪽에 방파제로 둘러싸인 선양장이 있다. 처음 보는 가파른 기울기다. 끌어올려진 배들은 용케 미끄러지지 않고 편안하게 버티고 있다. 곶 위에는 차유마을이 영덕 대게의 원조임을 알리는 비석이 있다. 930년 고려의 왕건이 영덕과 영해를 거쳐 경주로 가는 도중에 이 마을에서 영덕 대게를 처음 먹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영덕 대게는 조선시대까지 임금님의 수라상에 오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비석에는 죽도산이 보이는 이곳에서 잡은 게의 다리 모양이 대나무와 비슷해서 대게라 불렀다고 새겨져 있다.

마을 중턱의 작은 집이 수리 중이라 간간이 기계음이 들린다. 마을 공동 작업장의 박공지붕은 갈매기들의 쉼터다. 문득 골목으로 사람들이 사라진다. 갯바위에도 방파제에도 사람이 있다가 없고, 없다가 또 있다. 잠잠한 가운데 어떤 박동이 있는 마을이다. 죽도산이 가까이 보이는 마을 북쪽에 가장 큰 방파제가 바다를 향해 슬쩍 굽이치며 뻗어 있다. 테트라포드 무리들이 주변을 둘러싼 넓고 긴 활주로 같은 장소다. 짧고 하얀 새의 깃털만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을 뿐 바람도 없이 텅 비어 마치 신성한 제단 같다. 방파제 끝 테트라포드 너머로 수평선에 가볍게 착지한 배들이 보인다. 서서히 발바닥에 열기가 느껴졌고, 공기적인 가벼움으로 비상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서두르지 말고 차분하게.'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 Tip

55번 중앙고속도로 안동방향으로 가다 안동 분기점에서 상주영덕고속도로 영덕방향으로 간다. 영덕IC로 나가 7번국도 영덕 울진방향으로 직진, 약 11㎞ 정도 달리다 경정리 20번 지방도 이정표에서 빠져나간다. 낮은 산등성이를 구불구불 넘다 보면 눈높이보다 높은 동해를 맞닥뜨리고, 도로에 내려서자마자 바로 경정 3리 오매마을을 만난다. 20번 도로를 타고 북향해 가면 경정1리, 경정2리가 차례로 나타난다. 포항으로 가 7번 국도를 타고 북향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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