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 경산 하양읍 도리마을 하양무학로교회, 새 성전 짓는데 벽돌회사·스님 동참…아름다운 인연으로 교회 완성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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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1-05 07:56  |  수정 2024-01-19 08:01  |  발행일 2024-01-05 제15면
옛 예배당 옆 벽돌 건물 우뚝…건축가 승효상 작품
낮은 담장이 말해주는 듯 세월·종교 어우러진 곳
천장없는 기도실은 하늘과 사람이 완성하는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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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무학로교회. 1986년의 옛 성전과 2019년에 신축한 새 성전 사이로 까치가 집을 올린 은행나무가 높다.

음악소리 들린다. 에프엠클래식라디오인가.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아무도 없지만 낮은 담과 마주한 골목집의 부산함이 훌쩍 넘나들어 교회는 쓸쓸하지 않다. 높은 종탑이 있는 단층의 슬래브 건물은 옛 성전이다. 옆으로 야외예배당이 펼쳐지고 그 너머로 묵직한 상승감을 가진 새 성전이 서 있다. 옛 성전과 새 성전 사이로 까치가 집을 올린 은행나무가 높다. 옛 성전 종탑의 십자가와 새 성전 꼭대기의 가느다란 절개선에 들어찬 빛은 하나의 형상으로 보아도 좋겠다. 새들은 출타하였나, 그들이 저 십자가 사이로 날아드는 모습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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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성전과 새 성전 사이에 느티나무가 있는 야외 예배당이 자리한다. 채도 낮은 갈색 벽돌로 조적된 크고 작은 선과 면에 눈이 편하다.

◆하양무학로교회

바닥도 담도 야외예배당의 의자와 설교대도 새 성전도 모두 벽돌이다. 채도 낮은 갈색 벽돌로 조적된 크고 작은 선과 면에 눈이 편하다. 이 교회는 조원경 목사가 1986년에 개척했다고 한다. 옛 이름은 기독교 대한감리회 하양예배당, 성도는 30여 명이다. 개척 후 사랑의 집, 낙육학사, 아동센터, 목요 국수나누기 등 좋은 일을 많이 했다고 한다. 바닥의 리드 선을 따라 새 예배당과 옛 예배당 사이로 들어간다. 은행나무가 높다랗게 선 너른 마당이 펼쳐지고 오래된 집 두 채가 'ㄱ'자로 위치해 있다. 오른쪽 것은 1936년에 지어진 건물로 현재 식당으로 사용하고 있고 왼쪽 것은 1960년대에 누에를 치던 공간이었는데 지금은 교회 사무실 겸 화장실이다. 다양한 시간이 하나의 이름으로 공존하고 있다.

새 성전의 입구에는 두 개의 수반이 있다. 조그마한 것 하나와 큼직한 것 하나, 그 사이에 다리 같은 길이 있다. 요르단 강 건너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가듯 한다. 좁은 통로를 따라 들어가면 곧 까만 철문의 차가운 질감이 느껴진다. 무거운 문을 온 몸으로 밀고 들어선다. 어둡고 좁고 물속처럼 고요하다. 가로세로 약 7.5m 크기의 공간이다. 한쪽 벽면의 천장에서부터 흘러내리는 빛이 내부 물체들의 윗면에 고여 있다. 빛의 벽에는 '2023년 축 송구영신예배'라 먹으로 쓴 쪼글쪼글한 한지 한 장이 붙어 있고 그 옆으로 가느다란 십자가 하나가 걸려 있다. 설교대와 신도석은 단 차이가 없다. 설교대 옆의 원통형 구조물은 창세기에 나오는 '야곱의 사다리'를 형상화한 것으로 천국으로 가는 사다리다. 성냥팔이 소녀가 춥고 어두운 골목에서 성냥에 불을 붙이던 순간이 떠오른다.

조원경 목사는 개척 30주년이 되었을 때 새 성전을 짓고자 건축가 승효상을 찾아갔다고 한다. 예산은 7천만원, 건축가는 덜컥 하겠다고 답했다. 이 소식에 대구의 벽돌회사에서 벽돌을 제공하기로 했다. 4천장 정도로 예상한 벽돌을 10만장이나 썼다. 은해사의 돈관 주지스님과 영천 대각사 묘청 스님도 힘을 보탰다. 새 성전은 2019년에 완공됐다. 새로운 이름은 '하양 무학로 교회', 교회가 들어선 길 이름을 땄다. 무학로는 하양과 와촌을 감싸고 있는 무학산을 향하고 있는 도로다. 기념 감사 예배에는 개신교 목사와 신도들은 물론 스님들, 천주교 신부님과 수녀님들, 지역의 유학자들 등이 대거 참석했다. 참 즐거운 이 장면은 조원경 목사가 일구어 온 생과 인연의 궤적을 좇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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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세로 약 7.5m 크기의 예배실은 어둡고 좁고 물속처럼 고요하다. 한쪽 벽면의 천장에서부터 흘러내리는 빛이 내부 물체들의 윗면에 고여 있다.

예배실 옆으로 난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개인 묵상 기도실이 있다. 삼면이 벽으로 둘러싸인 좁은 공간, 하늘이 열려 오히려 끝없이 침잠되는 공간이다. 외부에서 보았던 꼭대기의 가느다란 절개선을 이곳에서 보다 가깝게 마주한다. 그것은 하늘과 기도하는 자가 완성하는 십자가다. 옥상에서는 교회가 보이지 않는다. 다만 교회를 둘러싼 세계가 보인다. 오래된 낮은 집들, 새롭게 쑥쑥 오르고 있는 건물들, 언덕 위 수목으로 둘러싸인 학교, 보행기를 밀며 천천히 멀어지는 할머니. 야외 예배당에 잘생긴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그 아래 은해사 돈관 스님의 이름으로 된 표지석에 이렇게 새겨져 있다. '조 목사님과의 아름다운 인연 영원히 이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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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가 높다랗게 선 너른 마당이 펼쳐지고 오래된 집 두 채가 ㄱ자로 위치해 있다. 오른쪽 것은 1936년에 지어진 한옥, 왼쪽 것은 1960년대에 누에를 치던 공간이었다.

◆다방 물볕과 도리마을

느티나무 너머로 보이는 낮은 벽돌 건물은 '다방 물볕'이다. 하양무학로교회 장로님이 주인으로 처음에는 교회에 필요한 어떤 부속시설을 만들기를 희망했다고 한다. 지금 다방 물볕은 카페와 책방, 갤러리로 구성돼 있고 점차 하나의 문화시설로 발전해 나가기를 희망하고 있다. 건축가는 승효상의 아들인 승지후다. 카페는 층고를 높이고 경사지붕 끝에 서쪽으로 난 큰 창을 설치해 오후의 빛이 내부로 쏟아지도록 했다. 책방은 천창을 두어 자연광 아래에서 책을 읽도록 했고 갤러리는 1960년대 지은 집을 새로운 기능을 할 수 있을 정도로만 고치고 벽면 등 시간의 흔적을 최대한 살렸다. 이 성형된 공간들은 안마당, 책 마당, 뒷마당, 사이마당, 골목마당으로 이름 붙여진 5개의 오픈공간과 이어져 있다. 마당들은 건물 내부를 확장하는 외부공간이면서 건물 밖과 연결되는 통로이기도 하다. 중정의 수반에서 물소리가 들린다. '물볕'은 '하양'의 순우리말이다. 물에 내린 햇빛, 냇물에 빛이 넉넉히 내리는 풍경이 그려진다. 하양도 예쁜데 '물볕'도 예쁘다. '물볕' 이름은 승효상이 지었다.

교회와 다방이 들어서 있는 곳은 하양의 도리마을이다. 평지가 대부분인 전형적인 농촌 마을로 북쪽은 하양의 진산인 무학산이 감싸고 마을 앞으로 조산천(造山川)이 흐른다. 홍수가 나면 조산천이 범람하여 여러 갈래의 물줄기가 마을을 에워쌌다는데, 그 모습이 섬과 같아 '섬마' 또는 '섬마을'로 불리다가 도리(島里)가 되었다. 교회 입구에서 동쪽으로 뻗어가는 한적한 길은 도리리의 메인 스트리트다. 벽화가 이어지는 길 따라 마을회관이 있고, 도리리 쉼터가 있고, 불빛이 없는 '도리수퍼'와 시대이용소가 있고, 마을 어르신들이 그렸다는 타일 벽화가 있다. 도리 사과나무, 수양버드나무, 우리집 명자 꽃, 내 손주 아가 때 등. 어르신들의 도리리는 천변에 수양버들이 늘어지고 사과나무가 있고 꽃이 많이 피어나는 마을인가 보다. 손주는 훌쩍 컸을 테고. 다방 물볕의 뒤편에서 골목마당을 만들던 오래된 집들은 사라졌다. 메인 스트리트로 이어지던 골목이 없으니 어딘가 섭섭하다. 섬 같은 물볕을 빙글빙글 돌다 텅 빈 대지에 선다. 이곳엔 무엇이 들어설까.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 Tip

대구지하철 안심역을 기점으로 4번국도 대경로를 타고 하양으로 간다. 대구가톨릭대학 시계탑이 있는 금락삼거리에서 11시 방향으로 좌회전해 하양읍내로 진입한다. 약 260m 앞 첫 번째 삼거리에서 하양읍행정복지센터 쪽으로 좌회전해 직진, 무학교 건너 로터리에서 3시 방향으로 나간다. 천변을 따라 150m 정도 가다 하양 동신타운 옆길로 좌회전해 들어간다. 동신타운 바로 옆에 '다방 물볕'이 위치하고 그 맞은편에 '하양무학로교회'가 자리한다. 교회 입구에서 동쪽으로 뻗어 나가는 길이 도리마을의 메인 스트리트다. 마을회관, 도리슈퍼, 제일이용소, 도리리쉼터, 마을 어르신들의 타일벽화 작품 등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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