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대구에 청룡이 살았다

  • 이정웅 전 달구벌 얼 찾는 모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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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1-30 08:06  |  수정 2024-01-30 08:07  |  발행일 2024-01-30 제21면

이정웅
이정웅〈전 달구벌 얼 찾는 모임 대표〉

2024년 갑진년(甲辰年)은 청룡의 해다. 예로부터 청룡은 비와 물을 다스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 다산과 농경의 중요한 상징으로 행운과 성공, 번영을 촉진하는 강력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런 영험한 청룡이 대구에 살았다.

대구 달서구 달비골 입구에서 임휴사 입구를 지나 평안동산 못 가서 왼쪽에 앞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 있고 더 올라가면 원기사가 나온다. 이 절 안에 황룡이 살았다는 황룡굴이 있다. 높이 4m, 길이 12m 정도로 안으로 들어갈수록 좁다. 천장에서 떨어지고 벽면에서 새어 나오는 물맛이 좋아 한때 한국의 100대 명수 중 한 곳으로 꼽히기도 했다. 황룡굴의 전설은 이렇다.

"신라 때 이 굴에 한 스님이 수도(修道)에 정진하고 있었다. 그때 시봉(侍奉)은 남해에 사는 숫 황룡으로 스님을 받들며 함께 수행하고 있었다. 이 사실을 서해의 암 청룡이 알고 함께 굴속에서 수도하기를 원했지만, 스님이 크게 꾸짖자 반대편 산골짜기 굴속에 머물고 있었다.

그즈음 7년이나 가뭄이 들고 모든 곡식이 타들어 가자 백성들은 굶주릴 수밖에 없었고, 질병마저 돌아 생활이 처참했다. 이때 스님이 청룡을 불러 어려움을 해결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청룡이 비를 내리게 하고 질병을 멈추게 했다. 이 일을 두고 옥황상제가 자연의 이치를 거슬러 함부로 도술(道術)을 부렸다고 하여 크게 화를 내면서 청룡을 벌하기 위해 하늘에서 사자(使者)를 내려보냈다. 그러자 황룡굴에 수도하던 스님이 꾸짖으며 돌려보냈다.

그러나 그냥 돌아가면 혼날 것 같았던 사자는 청룡이 살던 굴에 벼락을 내려쳤다. 이때 청룡굴에 함께 있던 황룡과 청룡은 모두 죽고 굴은 크게 파괴되어 규모가 줄어들고 파석(破石)이 주변에 흩어져 있으나 황룡이 살던 굴은 그대로 온전했다."

청룡산의 이름도 이 전설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대구에는 이외에도 용과 관련된 지명이 많다. 서구와 달서구, 달성군 3개 자치단체에 걸쳐 똬리를 틀고 있는 용의 모습에서 유래된 와룡산(臥龍山), 용이 승천할 때 꼬리를 끈 흔적이 남아 있어 불리는 하빈면의 용재산(龍蹄山), 여섯 마리의 용이 살았다는 가창 주리의 육용소(六龍沼), 신천의 물을 마시는 형상의 남구 봉덕동 용두산(龍頭山), 아주 오랜 옛날 가뭄이 심해 농사짓기 어려울 때 천둥이 치고 비가 내리자 땅속에 있던 용이 승천하면서 갈라진 용소(龍沼)와 그때 용이 떨어트린 비늘을 묻어 준 용비늘무덤의 전설을 아우른 마을 용동(龍洞) 등이다.

청룡산 청룡굴에 살았던 청룡(靑龍)이 지혜로운 선택을 하여 만백성을 기아와 질병으로부터 구제해 주었듯이 갑진년에는 그 청룡의 기운을 받아 시민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지고 각자의 소망이 이루어지며, 4월에 치러지는 선거에는 국회의원을 잘 뽑아 국태민안(國泰民安)하게 하고, 대구 굴기의 정책이 더욱더 알차게 추진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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