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 산책하듯 떠나자! 대구 달성토성마을…시간 멈춘 동네 미로 같은 골목길 정다운 사람·사람들이 자꾸만 발길을 끌어당긴다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 |
  • 입력 2024-01-12 08:03  |  수정 2024-01-19 08:00  |  발행일 2024-01-12 제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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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토성의 바깥쪽 저 낮은 아래로는 마을이 펼쳐져 있다. '달성토성마을'이라 부른다.


달성공원의 그 큰 '시민의 문'이 활짝 열려 있다. 광대가 쓰윽 오른다. 문 앞에 자전거와 오토바이가 잔뜩 서 있다. 넓디넓은 공원을 쓰윽 훑어 여기저기 숨은 듯한 사람들의 실루엣을 찾아낸다. 오랜만에 온 달성공원은 어딘가 사람을 으쓱하게 하는 구석이 있다. 정면으로 가로지르면 곧장 서문에 닿는다. 오른쪽으로 가면 관풍루가 있는 성곽길이고 왼쪽으로 가면 사자사가 내려다보이는 길이다. 암사자가 수사자를 쫓는다. 젊은 연인이 연못을 지나 사자사로 향하는 계단을 오른다. 성곽길을 걷는 여인이 나를 앞질러 먼저 서문을 지난다. 서문 아래 물개들이 배 미끄럼을 타며 논다. 장난감도 하나 없는데 참 신나게 논다. 까르르 소리 들리는 듯하다.

6·25전쟁때 피란민 몰려 생긴 마을
달성토성 1963년 사적 지정된 이후
개발과 멀어지고 젊은이들은 떠나
주민이 조성한 길과 길을 잇는 정원
관계가 좋아지고 매년 축제도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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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으로 나가면 마을의 가운데쯤 된다. 안내판과 마을지도, 그리고 '청어샘' 벽화가 있다.


◆달성토성마을

달성토성의 안쪽에선 물개가 놀고 바깥쪽의 저 낮은 아래로는 마을이 펼쳐져 있다. 산이 날아왔다는 비산동, 그 가운데 2동과 3동이다. 지금은 '달성토성마을'이라 부른다. 서문으로 나가면 마을의 가운데쯤 된다. 왼쪽으로는 시나브로 내리막길, 오른쪽으로는 종종걸음의 오르막이 이어져 성을 한 바퀴 에워싼다. 마을 안쪽은 미로다. 서문 앞 골목 입구에 '달성토성마을 다락방 160m'라는 안내판과 마을지도, 그리고 '청어샘' 벽화가 있다. 옛날에는 달서천이 달성공원 앞을 지나 금호강으로 흘렀다고 한다. 낙동강과 금호강을 거슬러 바다고기까지 오는 맑은 천이었다 한다. 그 달서천 부근에 청어샘이 있었다. 귀한 손님이 오면 두레박 속에 청어가 담겨 올라오는 샘이었다고 한다. 천이 흐르고 샘이 솟고 청어도 얻을 수 있었으니 사람이 살기에 참 좋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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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롱 어린이집의 작은 '초롱정원'과 터널정원이 이어진다.

마을은 자연적으로 생겨났다. 6·25전쟁 때는 피란민들이 몰려들어 판잣집을 짓고 살았다. 1960~1970년대 섬유산업의 발전으로 대구가 한창 잘나가던 시절, 마을은 산업단지의 배후 주거지로 많은 이들의 터전이었다. 달성토성이 1963년에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62호로 지정되면서 마을은 그와 개발 제한이라는 운명 공동체로 묶였다. 시내 곳곳에서 재개발이 이뤄지고 높고 반짝거리는 빌딩들이 세워지는 동안 마을은 정체됐고 낡아갔다. 젊은이들은 변하지 않는 마을을 등졌고 떠나지 못하거나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은 골목에 남았다. 청어샘 벽화 옆 좁은 골목에 '골목정원'이 흐른다. 그 옆에 서 있는 커다란 아저씨는 '키다리아저씨'다. 달성공원의 입구를 지키던 키다리 아저씨는 지금 서문 앞에서, 달성토성마을 앞에서, 활짝 웃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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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정원의 시작은 2015년경이다. 골목정원 만드는 일에 참여하는 집이 지금은 90가구가 넘는다고 한다.

◆정원에서 정원으로 이어지는 골목길

골목은 대개 좁다. 어깨를 부딪치지 않고서는 오갈 수 없는 좁은 골목도 있고 모로 걸어야 하는 통로도 있다. 마을 지도를 따르는 것은 힘들다. 여기저기서 자꾸만 골목들이 끌어당긴다. 그 모든 골목이 정원이다. 좁은 화단, 넉넉한 화단, 크고 작은 화분들, 넝쿨식물들의 터널과 이름이 없는 쌈지 정원과 이름을 가진 정원들이 이어진다. 꽃핀 채로, 봉오리 진 채로, 얼어버린 동백꽃들도 있고 여전히 윤나는 잎들도 있고 뽁뽁이나 은박 단열재로 감싸인 아이들도 있다. 유월의 찬란한 모습을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지만 부드럽고 커다란 침묵 속에서 쌕쌕거리며 잠든 겨울 정원은 낭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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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핀 채로, 봉오리 진 채로, 얼어버린 동백꽃들 속에 나비 포토존이 숨어있다.

골목정원의 시작은 2015년경이다. 꽃 화분이 많던 한 주민이 집 앞 골목길에 화분을 내놓았다. 혹여 도둑맞지 않을까 걱정도 됐지만 곧 집 안 가득 있던 화분을 골목에 다 내놨다. 그러자 옆집에서도 앞집에서도 화분을 내놨다. 그렇게 네 집이 골목정원을 시작했다. 오가며 쳐다만 보던 주민들이 하나둘 동참하기 시작하더니 1년 사이에 60가구가 넘는 집이 골목정원 만드는 일에 참여했다. 골목에는 수선화, 튤립, 맨드라미, 산수국, 마리골드 등 각양각색의 꽃들이 넘쳐났다. 골목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벽화도 그려 넣고 항아리며 바람개비로 장식도 했다. 해바라기정원, 인동초정원, 터널정원, 비밀의정원 등 제각각 이름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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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화분들의 정원과 말타기 놀이 조형 벽화.


'1호 정원'에는 골목정원을 시작한 서경숙, 김일조, 김동진, 이향자 네 분의 이름이 적혀 있다. '율이정원'에는 정갈한 화분들이 조르라니 늘어서 있다. 율이는 이 댁 아이의 이름일까. '해바라기 정원'에는 이 골목에 사는 대학생이 그린 해바라기 그림이 있다. 초롱 어린이집의 작은 정원은 '초롱정원'이다. 30년 된 '사랑의 포도나무' 아래에는 바람 불면 떠나갈 종이배 하나가 놓여 있다. '물레방아정원'은 화재로 흉물이 되어버린 자투리 공간에 조성한 수공간이다. '인동초정원'의 인동초는 1964년에 심어진, 이 마을에서 가장 나이 많은 나무다. 겨울을 견딘다는 인동초가 씩씩하게 겨울을 나고 있다. '복례정원' 앞에서 생각한다. 복례씨와 콩나물을 다듬으며 진한 믹스커피를 한 잔 하는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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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중심부에는 마을의 공동 온실이 있다.


◆따로 또 같이

골목정원이 생기면서 주민들의 관계가 좋아졌다고 한다. 꽃이라는 공통의 관심사가 있으니 대화도 많아졌다. 예쁜 꽃이 있으면 서로 나누고 남의 집 꽃이라도 아픈 놈이 보이면 돌봐준다고 한다. 마을 방송국과 공방도 있고, '함성'이라는 공동 부엌도 있다. 마을 사람들이 모이는 사랑방은 '달성토성마을 다락방'이다. 작은 도서관도 있고 반려식물 체험장과 도시재생지원센터, 카페 등이 들어서 있다. '다락방' 뒤편에는 정원예술작가 레지던시인 비오톱(Biotope)이 있다. 파란색 옥탑방이 있는 2층 건물로 생태조경학자, 생태학자 등 정원을 소재로 작업을 하는 예술가들이 산다. 마을에서는 2016년부터 축제를 열고 있다. 2020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는 '지역문화 대표브랜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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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토성마을다락방. 마을의 사랑방이고 회의장이며 카페와 도서관 등이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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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인근의 역사문화마당. 달성토성을 형상화한 쉼터와 누워 하늘을 보라고 걸어놓은 그물과 달성토성의 옛 모습을 보여주는 터널형 야외전시장이 있다.

놀이터에 한 여인이 깃털 낚싯대를 들고 고양이들과 놀고 있다. 골목 정원을 누비는 동안 놀이터를 세 개나 보았다. 더 있을지도 모른다. 큼직한 어린이집을 두 곳 보았다. 창밖으로 짜랑짜랑한 소리가 새어 나온다. 어느 집 대문에 '길고양이의 집은 길입니다' '길고양이를 사랑으로 대해주세요'라는 안내장이 붙어 있다. 깃털 낚싯대를 든 여인의 집일지도 모른다. 아는지 모르는지 맞은편 집의 지붕에 길고양이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본다. 달성토성을 형상화한 마을쉼터에 노인들이 앉아 계신다. 마을 중심부에는 마을의 공동 온실이 있다. 겨울을 나기 어려운 화분들이 모두 이곳에 들어앉아 있다. 계절 모르고 피어난 종 모양의 꽃부리들이 댕그렁댕그렁 소리를 낸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 Tip

대구도시철도 3호선 달성공원역과 가깝다. 달성공원을 가로질러 서문으로 나가면 된다. 방탄소년단 뷔가 다녔다는 대성초등학교 맞은편에 남쪽 입구가 있다. 국채보상로 417(소리샘보청기) 옆 골목으로 들어가면 달성토성둘레길이다. 북쪽 입구는 인동촌 아나고 골목 근처 달성토성마을 놀이터(국채보상로 417)다. 자가 운전해 간다면 서문 앞에 있는 달성토성공영주차장(서구 비산동 130-1)을 이용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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