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박제가 돼버린 천재'를 아시오

  • 이경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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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1-31 08:01  |  수정 2024-01-31 08:01  |  발행일 2024-01-31 제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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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란 소설가

경복궁역에서 만나 지하터널 쪽으로 걸었다. 조금 가다가 왼쪽 길로 들어서니 이상의 집이 있었다. 길잡이를 맡은 선배 작가 외에는 모두 처음이었다. 나도 오가며 보기만 했던 곳이었다. 나는 게을러서 그렇다 치고 제법 많은 수의 사람들이 서울 시내 한복판에 있는 유서 깊은 명소를 몰랐거나, 알고도 못 간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우리 일행은 인원이 많아 밖에서 잠시 기다렸다가 입장했다. 일행 중에는 그런 곳에 익숙지 않은 사람도 많았지만 이상이라는 작가의 흔적을 확인하는 데에는 아무도 인색하지 않았다. 얇은 서랍 형태로 보관된 작품을 꺼내서 읽어 보기도 했고 초상화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인쇄물을 받아 주의 깊게 들여다보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그의 소설 '날개'의 주인공이 미쓰코시 백화점 옥상에서 그랬듯 삶의 현기증에 주저앉았던 기억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수필 '권태'의 한 장면처럼 도무지 희망이 보이지 않던 시간, 하릴없었던 날들을 생각했을지도. 그도 아니면 13인의 아해가 막다른 골목길을 질주하듯 절망했던 순간을 소환했을 수도 있고.

일행 중 한 사람이 문을 나서며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가만 보니 여기 내가 미장한 집이네요." 미장 일로 평생을 보낸 이였다. 이상의 집으로 명명된 건 미장이 끝나고도 얼마간 후였을 테니 안팎을 미끈하게 마무리하면서도 집의 용도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하물며 훗날 문학기행을 와서 그때 그 집을 다시 만날 줄 알았을까.

열심이던 인생의 증거물을 맞닥뜨린 그날, 문학기행 참가자는 모두 자활센터에서 숨을 고르던 이들이었다. 노숙인이었거나 파산했거나 그로 인해 가정을 잃고 자식과 소식이 돈절되었거나 한 이들. 그의 감회는 순식간에 일행 모두를 복잡한 감정에 들게 했다. 자부심과 회한과 놀라움이 뒤섞인 상태로 우리는 숙연하게 웃었다.

발길은 윤동주가 잠시 살았던 하숙집을 지나 겸재의 인왕제색도에 나오는 수성동 계곡으로 향했다. 계곡 초입 공터에서 잠시 다리를 쉬며 동주의 시를 낭송하기도 했다. 그러나 내 머릿속에서는 흙손을 쥐고 바닥과 벽면에 시멘트를 바르는 그의 모습이 떠나지 않았다. 지금보다 훨씬 젊었으나 지금만큼 깊어지기 전이었을 것이다. 그가 살아오고 노동해온 시간이 박제처럼 굳어버리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날 '날개'의 마지막 문장을 함께 외쳐볼 걸 그랬다. 내게도 필요한 그 문장.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이경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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