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버스기사는 왜 찬 겨울 간이화장실서 죽음을 맞았나"

  • 이승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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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1-30 17:19  |  수정 2024-01-30 21:47  |  발행일 2024-01-31 제2면
■도남동 버스회차지 사망사고와 버스기사 근무환경
26일 간이화장실 덮친 차량에 60대 기사 숨져
74개 버스회차지 중 34곳 별도 휴게공간 없어
간이화장실은 10개소…날씨 및 악취 취약
대구시 전수 조사 후 시설 개선에 나설 방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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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대구 북구의 한 버스회차지에서 차량이 간이화장실을 덮쳐 용변을 보던 버스기사가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30일 오전 폴리스라인이 쳐진 도남동 버스회차지의 모습.

30일 오전 대구 북구 도남동의 한 버스 회차지. 도남지구와 검단지구를 오가는 북구 1번 버스의 기종점인 이곳에서 4일 전 운전 미숙 차량이 이동식 간이화장실을 덮쳤다. 이 사고로 간이화장실 안에 있던 60대 버스 기사가 숨졌다. 폴리스라인에 둘러싸인 회차지는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곳곳에 널브러진 스티로폼 조각과 차량의 파편들은 그날의 끔찍한 참상을 말해주는 듯했다. 이날 만난 주민 A씨는 "안타까운 사고다. 버스 기사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무슨 일이 벌어지는 줄 몰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끔찍한 사고로 대구 버스 기사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이 재조명되고 있다. 특히 버스 운행 후 잠시 쉬면서 재충전을 하는 공간인 회차지 화장실의 열악한 실태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대구시는 전수 조사 후 시설 개선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30일 대구시에 따르면, 현재 74개 버스 회차지 중 절반 가량인 34곳(46%)이 별도의 휴게시설이 마련돼 있지 않은 노상에 위치해 있다. 이 중 10곳은 도남동 회차지처럼 재래식(배설물이 정화조에 저장되는 방식) 간이화장실 형태다. 

 

버스 기사가 용변도 안심하고 보기 쉽지 않은 실정이다.


단열재가 없는 이동식 간이화장실은 악취와 더위·추위에 노출돼 있다. 여름철에는 지독한 악취와 구더기, 겨울철엔 얼어붙어 탑처럼 올라오는 용변과 한바탕 전쟁을 치러야 한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지원예산은 턱없이 부족하다. 대구시는 올해 시내버스 휴게 공간 정비 예산으로 4천500만원을 책정했다. 휴게 공간 개선은 물론, 수세식 간이화장실 1개를 설치하기에도 벅찬 수준이다.

김종웅 대구시내버스노동조합 사무처장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구더기가 득실거리는 화장실이 말이나 되느냐"며 "최소한의 근로환경 보장을 위해 재래식 간이화장실을 수세식 간이화장실로 교체해 달라고 요청한 게 벌써 5년이나 됐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구시는 내달 버스 회차지 및 차고지의 휴게시설 일제 점검에 착수할 예정이다. 간이화장실 10곳에 대해선 조사 후 안전한 곳으로 옮기고, 여의치 않은 곳은 안전 펜스를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나채운 대구시 버스운영과장은 "현장 점검을 통해 버스 기사들의 목소리를 청취하고, 필요한 부분부터 점진적으로 개선해 나가려고 한다"며 "우선 버스조합 예산을 투입해 시설 개선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글·사진=이승엽기자 sylee@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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