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지금의 평화와 번영이 지속되기를 소망하며

  • 박순진 대구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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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2-05 06:53  |  수정 2024-02-05 06:54  |  발행일 2024-02-05 제22면
"통일을 기대하던 남북 냉각
국제사회 일각 전쟁 전망도
전쟁역사 되풀이될까 두려워
영웅 위인이 필요하지 않은
평화가 더 오래 지속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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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진 대구대 총장

우리 세대는 어릴 적에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고대사를 읽으며 신화에 푹 빠져 상상의 나래를 펴기도 하고 중세 시대 영웅호걸의 모험과 서사에 마음 졸이며 여정을 함께 하기도 했다. 세계를 개척하고 제패하며 시대를 이끌어간 근현대 위인의 전기에는 심금을 울리는 감동이 있었다. 어린 마음에는 인류의 역사가 늘 분쟁이 잦고 전쟁은 길게 지속되는 데 반해 평화는 힘들게 찾아오고 짧게 끝난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때마다 영웅과 호걸과 위인이 오랜 노력 끝에 만들어낸 아슬아슬한 평화에 안도하곤 했다.

동양의 역사를 볼 때마다 일이백 년 사이 흥망을 거듭하는 왕조의 역사 속에 백성이 겪었을 고달픔이 못내 안타까웠다. 우리 역사에도 왕조는 1천년 또는 오백 년을 이어가도 평화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오백 년 역사를 자랑하는 조선도 왜와 청의 침략으로 국토가 초토화되는 등 전란이 끊이지 않았다. 십자군 전쟁과 백년전쟁 등에서 보듯 서양에도 전쟁이 때때로 세기를 넘어 계속되었다. 오랜 전란의 소용돌이가 휩쓸 때면 일상이 파괴되고 피폐해진 세상 속에 생명은 헛되이 사라지고 고통은 심대하였다.

연이은 전쟁 사이에 불안한 평화가 잠시 찾아오는 것이 우리 인간의 역사라는 생각은 필자가 우리 사회의 눈부신 발전을 직접 목도하면서 점차 바뀌게 되었다.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우리 세대는 전쟁을 직접 경험하지 않았다. 할아버지 세대가 일제시대를 견뎌왔고 아버지 세대가 6·25전쟁을 이겨낸 덕분이다. 6·25전쟁이 끝난 지 칠십 년이 지났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떨쳐 일어난 우리나라의 눈부신 발전을 직접 경험하고 보니 백 년이면 얼마나 더 풍요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은근히 기대하게 된다.

인류의 역사에서 평화 시대가 백 년을 이어가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인류 전체가 존망을 걸고 벌인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끝난 지 채 백 년이 되지 않았다. 이차대전 이후 인류가 이룩한 문명은 눈부시다. 파괴적인 세계대전을 일으킨 인류가 지금 누리는 풍요와 평화는 놀랄 만하다. 백 년도 안 된 세월에 우리 대한민국이 만든 발전을 보면 더욱 경이로울 따름이다. 한반도에 인간이 거주한 이래 가장 번영을 누리는 때가 지금이고 현존하는 우리가 가장 잘사는 사람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세계 속에 당당한 선진국이다.

하지만 세상이 마냥 오늘 같지만은 않다. 세계정세가 무섭게 요동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이스라엘의 가자 공습 등은 공들여 일군 일상과 평화가 언제든 쉽게 깨질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다. 국제 사회에서 분쟁은 항상 존재해왔다. 국가마다 너나없이 자국 이익을 노골화하며 블록화되는 경향이 뚜렷하고 군비 확장과 재무장으로 나아가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걱정되는 일은 전쟁을 경험한 세대가 사라지면서 그런 시대의 고통과 비정함이 점점 잊히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때 통일을 기대하던 남한과 북한의 관계가 빠르게 냉각되고 있다. 국제 사회 일각에서는 고조되는 긴장이 전쟁으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전망까지 하고 있다. 자칫 평화는 짧고 전쟁은 긴 역사가 되풀이될까 두렵다. 우리 세대는 다행히 번영된 세상을 일구고 누릴 수 있었다. 다음 세대에 풍요로운 세상을 이어줄 책무가 우리에게 있다. 어린 시절 열광하던 영웅과 위인은 전쟁이나 난세를 배경으로 등장하였다. 그런 영웅과 위인이 필요하지 않은 평화와 일상이 백 년을 넘어 더 오래 지속되기를 소망해본다.

박순진 (대구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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