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저도 동생을 갖고 싶어요"

  • 홍석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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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2-28 07:02  |  수정 2024-02-28 07:04  |  발행일 2024-02-28 제26면
한 세대 전 인구정책 대성공
인구 소멸 위기의 부메랑 돼
"흑사병 능가할 위험" 지적
마을단위 공동체 육아 등
이철우의 혁신에 기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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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천 경북부장

평범한 소시민이었던 선친은 약주만 드시면 자랑 삼아 하시던 말씀이 있었다.'딸·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정부의 인구정책의 선구자라는 것이다. 은근히 자식 욕심 있으셨지만 슬하에 1녀1남만 둔 것을 두고 '나라보다 먼저 가족계획을 실천했다'는 자기 위안을 하신 것이다.

가족계획의 필요성이 처음 제기됐던 1960년대 인구 위기는 지금과는 반대 상황이었다. GNP 196위에 불과했던 당시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6.2명이었다. 전쟁 이후 폐허 상태에서의 인구증가는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다. 오죽했으면 당시 가족계획의 첫 표어가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라는 자극적인 문구였을까.

가족계획사업을 시작한 지 불과 20여 년 만에 출산율은 2.83명으로 떨어졌다. 또 2000년까지로 예정됐던 '인구증가율 1%대' 목표를 1988년에 조기 달성했으니 이 정책은 대성공을 거둔 셈이다.

하지만 정부 정책의 큰 성공은 정책 전환의 적기(適期)를 놓치는 결과를 낳았다. '좁은 국토에 많은 인구'라는 유통기한 지난 고정관념에 발목 잡혀 급변하는 상황을 인식 하지 못한 것이다.

지난해 합계 출산율이 0.7명으로 떨어졌다. 국가 소멸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로 공포스러운 수치다. 인구 폭발을 막았다고 샴페인을 터트리기도 전에 역풍을 맞고 있는 것이다. "저도 동생을 갖고 싶어요"라는 표어가 더 이상 우스갯소리가 아니게 됐다.

이런 상황을 보는 외부의 눈길도 우려의 연속이다. 지난해 말 뉴욕타임스는 한국의 인구 감소가 14세기 유럽 인구의 절반 가까이 소멸시켰던 흑사병을 능가할 것이라 우려한 '한국이 사라지는가(disappearing)?' 칼럼을 게재했다.

또 미국의 한 대학교수는 공중파 방송에 나와 대한민국의 합계 출산율을 두고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 와! 그 정도로 낮은 수치의 출산율은 들어본 적도 없어요"라는 반응을 보였다. 물론 이 교수의 반응에 더 놀란 건 우리였다.

전문가라기보다 인플루언서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고 있긴 하지만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도 한국의 저출산 추세가 계속되면 한 세대가 지나면서 매번 인구가 반 토막 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처럼 인구 문제는 중장기적으로 대한민국의 존립을 좌우할 가장 중요한 변수로 떠올랐다. 한 나라의 국력은 경제력에서 나오고, 경제력은 일정 규모의 인구가 뒷받침이 돼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헝가리에서 4명 이상의 자녀를 가진 사람은 평생 소득세를 면제해 준다. 이탈리아는 2명 이상의 자녀를 낳으면 세금을 모두 면제해 주는 방안을 심각하게 검토 중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혁신이 가능할까. 대답은 경북의 저출산 대책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완전 돌봄과 안심 주거, 일·생활 균형, 양성평등을 핵심으로 하는 정책을 내놨다. 육아와 돌봄 부담을 줄이고 아이와 부모가 함께하는 시간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출산율을 올리기 위해서 삶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결혼과 출산 이후에도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과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꺼내든 마을 단위 공동체 육아와 24시간 돌봄이 혁신적인 이유다.

홍석천 경북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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