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컬 창] 2024년 의료 대란에 대한 단상

  • 김경호 대구시의사회 부회장·대경영상의학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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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3-01 07:00  |  수정 2024-03-01 07:01  |  발행일 2024-03-01 제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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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호 (대구시의사회 부회장·대경영상의학과 원장)

필수 의료 부족, 지방의 의료 공백, 의대생 2천명 증원, 전공의 사직, 의대생 휴학 등 문자 그대로 의료 대란이다. 책임공방, 원색적 비난과 괴소문이 난무하여 뒤숭숭한 가운데 마땅한 해결책은 보이지 않고 안타까운 시간만 흘러간다. 일개 범부에게 속 시원한 쾌도난마의 지혜가 있으랴마는 답답한 심정으로 아는 바 몇 가지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첫째, 정부가 의사 부족의 가장 중요한 근거로 내세우는 국민 1천명당 의사 수 2.6명,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라는 통계, 이것은 팩트가 맞다. 그러나 이건 단순한 숫자에 불과하다. 국민 1천명당 의사 수가 6.3명으로 우리의 두 배가 넘는 그리스는 우리보다 두 배로 의료가 편할까? 현실은 정 반대다. 그리스의 지방 도시와 공공병원, 의료취약지에는 의사가 부족해서 난리다. 지표상 최하위권인 우리나라는 당일 의사 진료가 상식일 정도로 진료가 쉬운 반면, 최상위권인 그리스의 의료가 엉망인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나라는 의사 1명당 진료 건수가 아주 높다. 의사는 일을 많이 하고 의료비는 저렴하니 국민이 부담 없이 병원을 쉽게 방문할 수 있다. 1인당 연간 외래 진료횟수는 15.7회로 OECD 평균 5.9회보다 2.6배 많다. 종합적으로 한국의 의료서비스는 평균 다른 나라에 비해 2.6배 잘 공급되고 있다. 국민 1천명당 의사 숫자는 그 나라의 의료가 편하고 좋다는 것을 반영하는 최종 결과지가 아니며, 별 큰 의미 없는 통계상의 숫자에 불과할 뿐이다.

둘째, 필수 의료 대란과 지방 의료 공백의 원인이 의사 부족 때문이라는 정부의 진단은 오진이다. 이것은 의료자원의 총량 부족이 아니라 배분의 문제다. 물통에 구멍이 뚫려 물이 새면 구멍을 막는 것이 우선이지 물을 붓는 게 먼저가 아니다. 구멍을 막고, 물의 양을 확인한 후 부족하면 그때 물을 부어야 한다. 물이 충분한데도 확인하지 않고 성급하게 물도 같이 붓게 되면 오히려 물이 넘쳐 흘러 엉망이 되는 낭패를 보게 될 것이다. 의료자원이 넘치는 곳(대도시, 피부·비만·미용과)은 넘치고 모자란 곳(지방 소도시, 필수 의료과)은 모자라니 먼저 의료시스템의 구멍을 막아 의료자원의 배분을 제대로 한 후에 의료자원의 부족을 평가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가 아닐까.

셋째, 2025년 의대 신입생 2천명 증원? 현재 3천명에서 갑자기 66% 뻥튀기가 가능할까? 교수진과 실습 기자재, 실습 병상이 하늘에서 뚝 떨어질 리가 없는데, 실습 위주의 의과대학 교육 환경을 1~2년 사이에 2배 가까이 늘린다는 것이 쉬울까. 지난 2월29일 전국의대 학장 협의회에서도 '2천명 증원은 의대 교육 여건상 불가능하고 350명 증원이 적절하다'라고 발표한 바 있다. 뜬금없이 튀어나온 2천명 증원은 근거도 빈약하지만, 교육적인 측면에서 보아도 현실을 도외시한 무리수이다.

정부가 강조하는 국민 1천명당 의사 숫자가 최하위권이라는 통계는 의미 없는 숫자 놀음에 불과하다. 의대증원 문제는 우리의 미래 의료를 결정하는 중차대한 문제다. 포퓰리즘과 탁상공론의 강행은 결국 큰 재앙으로 돌아온다. 정부와 의료계의 열린 대화와 국민의 현명한 판단으로 이 의료 대란이 빨리 끝나길 바랄 뿐이다.

김경호 (대구시의사회 부회장·대경영상의학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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