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학의 시와 함께] 진은영 '서른 살'

  • 송재학 시인
  • |
  • 입력 2024-03-04 07:11  |  수정 2024-03-04 07:11  |  발행일 2024-03-04 제21면

어두운 복도 끝에서 괘종시계 치는 소리

1시와 2시 사이에도

11시와 12시 사이에도

똑같이 한 번만 울리는 것

그것은 뜻하지 않은 환기 소득 없는 각성

몇 시와 몇 시의 중간 지대를 지나고 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단지 무언가의 절반만큼 네가 왔다는 것

돌아가든 나아가든 모든 것은 너의 결정에 달렸다는 듯

지금부터 저지른 악덕은

죽을 때까지 기억난다

진은영 '서른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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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서른 살 무렵은 이념보다 정념에 더 몰두하는 나이, 정념은 넘치고 서툴지만 이념은 손쉽게 앞장서려고 한다. 하지만 시인은 정념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지금부터 저지른 악덕은 죽을 때까지 기억난다"는 말을 건넨다. 악덕이 악몽이 될 수 있다는 충고 때문에 서른이 지난 사람은 생의 어떤 후회를 짚어보거나, 서른에 도달 못한 사람은 악몽이 낯설기만 하다.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한 번만 지나가기에 소중하다는 서른 살이다. 서른은 인생의 터닝 포인트. 두려운 것은 '똑같이 한 번'만 울리고, '뜻하지 않은 환기와 소득 없는 각성'을 지니고 있으며 더 두려운 것은 '몇 시와 몇 시의 중간 지대를 지나고 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생은 돌이켜보면 공감할 수 있지만 앞날은 짐작하고 예단하기 어려운 신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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