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누구라도 타인에게 헌신과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다

  • 박순진 대구대 총장
  • |
  • 입력 2024-03-11 07:05  |  수정 2024-03-11 07:05  |  발행일 2024-03-11 제22면
특정 집단과 개인 지목해서
시비 가리고 비난 생각없어
역지사지, 세상인심은 변해
정부와 의료계 갈등을 보며
건강한 공동체 생각해본다

2024031001000289900012001
박순진 대구대 총장

당연한 말이지만 인간은 서로 신뢰하며 공존하는 사회적 존재다. 지금처럼 고도로 분업화된 사회에서는 누구라도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힘만으로 생존과 번영을 누릴 수는 없다.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우리의 삶과 복지는 공동체 및 다른 사람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국가와 사회를 위해 아무리 크게 헌신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공동체의 노력과 협력으로 만든 재화와 서비스 없이는 잘 살 수 없다. 누구라도 자기 입장만 앞세우며 살 수 없고 세상만사가 뜻대로만 되지도 않는다. 상호의존은 필수적이고 불가결하다.

세상에서 당연시해온 일이 사라지고 사회를 지탱하는 신뢰가 무너지는 순간이 있다. 평온한 일상이 큰 탈 없이 유지되는 것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누군가 자리를 지키며 수고하고 헌신하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공동체를 구성하는 일부가 제몫의 역할을 해내지 못하거나 맡은 일을 의도적으로 게으르게 하면 문제가 생긴다. 일이 뜻대로 안 될 때 사람들은 사안의 경과를 분석하고 책임을 묻고 상황을 개선하려 한다. 누군가의 잘못을 지목하거나 남을 탓하기도 한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 유난히 이런 일이 잦아 걱정스럽다.

사회와 국가를 위해 꼭 필요한 과업들이 제대로 수행되지 않고 당연히 제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들이 현장을 이탈하는 일이 속출하는 현실을 보면서 국민은 불안하고 위태로움을 느낀다. 일반인들은 사회지도층이 소명으로 헌신하며 모범을 보이기를 기대한다. 사회에서 받은 것이 많고 더 많이 누리는 사람일수록 더 많이 기여하고 베풀어야 한다. 좋은 사회는 누가 강요하지 않더라도 그런 일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좋은 사회는 그렇게 유지된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사회의 사회정치적 관심사를 둘러싼 요즈음의 세상인심이 무척 사납다.

문제가 심각해질수록 조바심이 앞선다. 정부가 앞장서 일부 국민의 희생을 당연한 듯 강요한다. 대중은 소리 높여 특정 집단 또는 개인의 헌신을 마치 빚 받아내듯 독촉하고 있다. 누군가의 갑질에는 분노하면서도 다른 갑질에는 박수로 응원하는 일도 다반사다. 사람들은 자신은 절대 희생과 헌신을 강요당하지 않을 듯이 행동한다. 하지만 윽박지른다고 일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일이 급해도 누구라도 타인의 헌신과 희생을 요구할 권리는 없다.

화무십일홍이라 했다. 세상만사는 돌고 돈다. 오늘은 내가 타인에게 강요하며 거칠게 몰아가지만 내일은 내가 되레 험하게 비난받고 책임을 추궁당할 수도 있다. 비난하던 사람이 비난받는 위치가 되기도 하고 헌신을 요구하던 사람이 희생을 강요받는 자리에 내몰리기도 한다. 요즘처럼 번잡하고 말 많은 현실에 굳이 논쟁을 보태고 싶지는 않다. 시비를 가리고 누군가를 비난할 생각도 없다. 다만 역지사지를 말하고 싶다. 환호하는 대중과 손가락질하는 대중은 다른 부류가 아니고 같은 사람이다. 세상인심은 쉽게 변한다.

특정 집단이나 개인을 지목해서 잘못을 들추고 비난하고 조롱하고 심지어 적대의 대상으로 만드는 일이 일상화된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정치 지도자와 고위 관료가 앞장서고 언론이 당파성을 노골화하며 일반 국민마저 편을 나눠 혐오를 양산하는 현실이 우리를 지치고 힘들게 만든다. 계층, 성별, 세대 갈등과 균열, 수도권 초집중과 지역 불균형, 역대급 저출산과 국가소멸 우려, 공동체의 근간을 흔드는 혐오와 적대 등 산적한 난제에 더해 최근 의료인력 증원으로 촉발된 갈등을 보며 건강한 공동체에 대해 새삼 생각해보게 된다.

박순진 대구대 총장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