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도로에서 바라본 관음도 외경.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지만 2012년 다리가 놓여 도보로 탐방할 수 있게 됐다. 〈게티이미지뱅크〉 그래픽=장수현기자 |
봄이 다가오지만 아직 설국(雪國)인 곳이 있다. 전국에서 눈이 가장 많이 내리는 울릉도다. 울릉도는 약 140만년 전부터 1만년 전까지 다섯 단계의 화산활동을 거치며 탄생한 섬으로, 포항에서 북동쪽으로 직선거리 210㎞ 떨어져 있다. 지난 7~9일 찾은 울릉도는 3월인데도 시시때때로 눈이 내렸다.
◆도착 전부터 놀 거리 가득 '울릉크루즈'
울릉도에 가기 위해선 배편을 이용해야 하는데, 기자는 포항 영일만항에서 울릉크루즈를 타고 떠나기로 했다. 느린 대신 흔들림이 적어 멀미 부담이 덜하기 때문이다. 출항은 밤 11시30분. 도착까지는 7시간 정도 소요돼 아침 7시쯤 도착하는 일정이다. 크루즈 안엔 식당, 카페, 편의점, 오락실, 노래방 등 없는 게 없어 심심하지 않았다. 밤 11시쯤 식당에선 선상공연이 한창이었는데,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보니 그제야 울릉도에 가는 것이 실감됐다. 크루즈 안을 둘러보다 취침을 위해 객실로 올라갔다. 기자가 이용한 객실은 작은 창문이 딸린 4인실이었다. 침대, 소파, TV, 화장실 등을 갖춘 방으로 작은 숙소 같았다. 몇 시간 뒤 차가운 공기에 눈을 떴는데, 목적지에 도착할 참이었다. 일출을 보러 갑판으로 나가니 섬의 모습도 보였다. 뾰족한 산꼭대기와 해안 절벽이 화산섬이라는 걸 알 수 있게 했다.
크루즈서 내려 아침을 먹기 위해 나섰다. 저동항 인근에 아침 식사가 가능한 식당이 있다 하여 해안길을 따라갔다. 육지에선 볼 수 없었던 맑지만 짙은 푸른색의 바다가 보였다. 제주도 바다와는 또 다른 매력을 만끽하며 달리던 중 웅장한 바위가 눈에 들어왔다. 바위의 이름은 '거북바위'. 새끼 거북을 업고 있는 거북의 모습을 닮아 명명됐다고 한다.
식사 후 봉래폭포를 보기 위해 나섰다. 울릉도의 최고봉인 성인봉으로 오르는 길목인 주삿길 안쪽에 있다. 수량이 풍부해 1년 내내 폭포의 장관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입구 앞에 도착하니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럴수가. 기상악화로 출입이 통제됐다는 방송이 나온다. 다음 코스로 생각해둔 관음도로 출발했다. 울릉 3경 중 하나로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지만 2012년 다리가 놓여 도보로 탐방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그런데 웬걸. 관음도에 도착하니 사람이 나밖에 없다. 불길한 마음으로 매표소에 물어보니 관음도도 출입이 통제됐다고 한다. 두 번째 허탕.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외경만 카메라에 담고 떠났다. 이때 느낀 건 겨울의 울릉도 날씨는 변화무쌍하기 때문에 단단히 채비해야 한다는 것.
독도전망대에서 바라본 독도 방향 바다. |
◆3월의 크리스마스 '나리분지'
그렇게 겨우 찾은 세 번째 코스는 '나리분지'. 울릉도 내에서 눈이 가장 많이 내리는 곳으로 눈꽃 여행의 중심지라고 한다. 나리분지는 해발 약 500m에 위치한 평원으로 섬 내 유일한 평지다. 동서 1.5㎞, 남북 2㎞로 면적이 198만㎡에 이른다. 1만5천~2만년 전에 일어난 울릉도 화산 폭발때 중앙의 분화구가 함몰돼 형성된 칼데라 분지로 성인봉 아래 해발 700~987m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분지에 들어가기 전 전망대에 올라가 마을을 한눈에 담았는데, 절경이었다. 소설 '설국'의 배경을 표현한다면 아마 이런 풍경이 아닐까. 눈 이불을 덮은 듯한 마을 전체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어 감탄을 금치 못했다. 마을 사방을 눈으로 덮인 설산이 감싸고 있었는데, 어떤 설경을 내놓아도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 2월부터 4월까지 이어지는 겨울철에 3∼4m 이상의 폭설이 자주 내린다고 하는데, 3월에 이런 눈을 즐길 수 있다니. 한겨울에도 눈을 찾아보기 힘든 곳에서 자란 기자에겐 행운이었다.
본격적으로 설국(雪國)을 즐기기 시작했다. 소복이 쌓인 눈을 밟으며 마을에 내려가니 총 4구간의 탐방로에 들어갈 수 있었다. 탐방로 인근엔 산채비빔밥 등 울릉도에서만 나는 산나물로 구성된 음식들을 파는 식당들이 모여 있었는데, 관광객이 자주 찾는 명소라 식당도 많은 듯했다. 성인봉 등산로 트레킹 코스도 있었는데, 시간 관계로 2구간까지만 걷기로 했다. 1구간엔 어린이 놀이시설과 휴게쉼터가 있어 눈사람을 만드는 어린이들을 볼 수 있었다. 2구간엔 다목적 잔디광장과 산책로 등이 조성돼 있었는데, 고즈넉한 분위기를 즐기며 걷기 좋았다.
독도전망대 입구. 이곳 오른쪽은 해안 전망대, 왼쪽은 시가지 전망대로 가는 길이다. |
◆'대풍감 전망대' 탁 트인 바다 한눈에
다음 날 울릉도 시내 부근에 위치한 '독도전망대'에 방문했다. 이날도 역시 눈이 내렸다. 전망대로 가기 위해선 케이블카를 이용해야 하는데, 15분 간격으로 운영된다. 2분 정도 타고 올라가니 시가지 전망대와 해안 전망대로 가는 길이 있었다. 해안 전망대는 출입이 막혀 있었다. 시가지 전망대에 도착했을 땐 독도 방향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있었는데, 전망대로부터 87.4㎞였다. 날씨가 좋은 날엔 독도도 육안으로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이날도 눈이 내리고 조금 흐린 탓에 인근에 위치한 도동항과 마을 전경만 볼 수 있었다.
전망대 인근에도 볼거리가 가득했다. 전망대 매표소 옆에 자리한 '독도박물관'에서는 독도와 관련된 다양한 전시를 진행 중이었다. 관람료는 무료. 독도박물관·한국사진작가협회 사진전 '울릉도·독도 동해를 품다', 독도박물관, 국립호남권생물자원관, 경북대 울릉도·독도연구소 공동기획전 '울릉도' 등을 선보였다.
나리분지 탐방로 입구. |
저녁이 다가올때 쯤에는 일몰을 보기 위해 '대한민국 10대 비경' 중 한 곳으로 떠났다. 독도전망대만큼 유명한 전망대인 '대풍감 전망대'다. 대풍감은 '바람을 기다리던 절벽'이란 의미로, 과거 돛단배가 항해를 위해 바람을 기다리던 곳이었다고 한다. 대풍감 전망대까지는 약 6분 정도 소요되는 태하항목관광모노레일을 이용해 올라가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기자는 매표 시간을 놓쳐 1시간40분 걸리는 트레킹 코스로 올라갔다. 태하해안산책로를 지나 전망대까지 올라가는 길은 '등산 초보'인 기자에겐 다소 무섭고 위험하게 느껴졌는데, 이동 중 바다와 산을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점은 매력이었다.
전망대에 도착하니 오후 6시였다. 이날 울릉도의 일몰 시간은 6시15분이었으니 딱 시기적절하게 잘 도착한 것. 해지는 붉은 하늘을 보며 사방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어딜 봐도 경이로웠다. 파도에 맞서는 듯 늠름하게 서 있는 해안 절벽과 탁 트인 바다…. 울릉도의 마지막 여행 코스를 이곳으로 잡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만큼 장관이었다. 옛적 바람을 기다리던 이들은 어떻게 두 눈으로만 이 풍경을 담을 수 있었을까 하며 카메라 셔터를 몇 번이고 눌렀다. 이 섬에 올 때 크루즈에서 본 일출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넋을 놓고 바라봤다.
글·사진=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조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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