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은의 천일영화] 묫자리를 파내는 행위에 관하여, '파묘'

  • 윤성은 영화평론가
  • |
  • 입력 2024-03-15 06:53  |  수정 2024-03-17 15:48  |  발행일 2024-03-15 제26면
마니아층 장르 오컬트영화
천만관객 눈앞에 둔 '파묘'
영화 흥행이 정치 공방까지
불러일으키기도 했었지만
파묘, 새로운 시도이자 도전

2024031401000466800019481
윤성은 영화평론가

*영화의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마니아층의 장르로 분류되어 왔던 오컬트 영화가 천만 관객을 바라보는 흥행작으로 등극했다. 이번 주말이면 9부 능선을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파묘'(감독 장재현)가 그 주인공이다. 코로나 이후 종잡을 수 없게 된 관객들의 성향이 '파묘'의 흥행에도 한몫을 하고 있는 것일까. 개봉 당시만 해도 할리우드 대작인 '듄: 파트2'(감독 드니 빌뇌브)와의 2파전이 예상되었지만, '듄: 파트2'가 예상외로 부진한 가운데 '파묘'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파묘'의 성공에는 먼저 장재현 감독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그의 장편 데뷔작인 '검은 사제들'(2015)은 한국형 엑소시즘 영화로 550만명의 관객을 불러모았고 두 번째 장편인 '사바하'(2018)는 다층적 서사의 난해함 때문인지 그 절반 정도의 관객 수에 그쳤지만 소수의 열혈팬들을 확보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철학적 깊이나 만듦새에 있어서는 호평이 압도적이었다. 그런 감독이 신작으로 무당과 지관에 관한 영화를 내놓자 언론에서는 그를 이 장르의 장인으로 부르기 시작했고, 관객들의 기대감도 사전예매량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파묘'는 3일 만에 100만, 7일 만에 300만 관객을 돌파하더니 입소문을 타고 파죽지세로 순항하는 중이다.

'파묘'는 대중적 요소와 마니아적 요소가 혼합되어 있다는 점에서 장재현 감독 전작들의 장점을 두루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파묘' 자체만 보면 새로운 시도이자 도전이었다. '파묘'는 두 개의 이야기를 이어놓은 것처럼 전반부와 후반부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는 서사를 구축했다. 전반부가 무당들과 지관, 장의사 등이 조상의 묫자리를 잘못 써서 비극을 맞게 된 가족을 구하는 이야기라면, 후반부에는 그들이 그 묫자리에 일제 강점기의 쇠말뚝이 박혀 있음을 알게 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무서운 장면 없이도 섬뜩한 전반부에 빠져 있던 관객들 중 일부는 일본 도깨비 '오니'의 실체가 드러나는 장면부터 이질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공포를 드러내는 방식 자체는 다를지라도, '기생충'(감독 봉준호)이 그랬던 것처럼 '파묘'의 앞부분과 뒷부분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전반부에서 조상의 친일행위가 다음 세대를 밑도 끝도 없는 부자로 만들기도 하고 병들게도 했다는 사실이 다 드러나기는 하지만, 후반부에는 일제의 침략이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 미치고 있는 영향력을 보다 광범위하게 짚어준다. 말하자면 전반부를 후반부의 대유(代喩)처럼 사용한 내러티브다. 두 부분의 연결고리를 강화하기 위해 감독은 수많은 복선을 깔아놓았고, 그 치밀함은 관객들이 자발적으로 '파묘'의 숨겨진 코드에 대해 파고들게 만들었다.

영화의 흥행이 불필요한 정치적 공방까지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장재현 감독은 무당과 지관에 대한 영화를 준비하다가 쇠말뚝과 항일운동 이야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우리 세대의 병(病)을 고치기 위해 조상의 묫자리를 파내는 행위와 우리 사회의 고질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는 행위는 분명 유사한 데가 있다. 아니 어쩌면 창작가에게 당연한 귀결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다이묘 정령은 사물이 혼 자체로 진화해 실체화된 존재'라는 대사는 결론처럼 다가온다. 부지불식간에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악령들, 그것들이 인간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해오는 것만 한 공포도 없으니, 경계가 필요하다.
윤성은 영화평론가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