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혁신의 리그

  • 최시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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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4-08 07:00  |  수정 2024-04-08 07:00  |  발행일 2024-04-08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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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시웅기자〈정경부〉

기업인 A씨는 미국 'CES(Consumer Electronics Show)'에 마련된 '한국관'을 마뜩잖게 여겼다. 그는 "수천만 원 들여 먼 곳까지 갔는데, 한국기업끼리 따로 논다. 참여 자체, 혁신상 수상에 매달린 그들만의 리그"라며 혀를 끌끌 찼다.

기자는 아쉽게도 아직까지 CES를 방문할 기회가 없었다. 직접 현장을 겪은 A씨 뜻을 온전히 이해할 순 없지만 나름 결론은 내렸다.

올해 CES엔 역대 최대 규모 통합한국관이 꾸려졌다. 32개 기관, 443개 기업이 참여했다. 혁신상 수상 기업도 역대 최다 수준이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전 세계 29개 분야 362개사가 혁신상을 받았는데, 국내기업이 150개사(41.4%)다.

거대한 박람회장 중심에 삼성, LG 부스가 서고, 화려한 콘텐츠가 전시됐다. 기술 경쟁력을 인정받은 중소기업들이 한국관을 가득 채웠다. 수치만 보면 그들만의 리그란 평가는 틀렸다. 그래도 A씨 말에 동의한 부분은 '리더'의 역할에서 떠올릴 수 있었다.

CES 성공 요인은 크게 3가지다. 혁신적 트렌드, 새로운 콘텐츠 그리고 이것을 가능케 하는 '리더'가 있다. 국내기업들은 세계 최고 박람회에 참가할 수준으로 트렌드를 좇고, 신기술 제품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다만, 글로벌 경제를 이끌어갈 트렌드를 제시하고, 미래 기술 방향성을 설정할 힘이 있는 리더는 부족하다. 조금 더 강하게 말하면, 국내기업은 CES와 수평적이기보단 종속적이다.

최근 대구시가 내놓은 'FIX(미래혁신기술박람회)' 청사진을 보면서 불현듯 A씨와 그 덕에 가능했던 고심의 결론이 떠올랐다.

FIX는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3개 박람회를 하나로 합쳤다. 파급효과가 커지겠지만, 동시에 리스크도 높아졌다. 충분한 혜택을 제공하고 꾸준히 노력한다면 연사, 참여기업 면면은 분명 점차 우수해진다. 하지만 단순히 제품 전시, 성과 공유형 박람회에 머무르지 않으려면 독창적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대구시 스스로 리더가 돼 미래를 고민해야 한다. 대기업, 유명인 섭외에 멈출 게 아니라 우리나라 산업계 바닥에서부터 함께 새로운 어젠다를 설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혹자는 '테슬라가 없는데도 테슬라가 보이는' CES 2024였다고 한다. 테슬라가 10년 전 그려둔 '바퀴 달린 스마트폰' 세상에서 굴지의 글로벌 기업들이 SDV(소프트웨어 중심 차량) 경쟁을 펼치고 있다. 테슬라는 이들을 뒤로하고 다시 한번 새로운 전장(戰場)을 개척하고 있다. 테슬라의 발자취에 힌트가 있다.최시웅기자〈정경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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