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착한 적자

  • 이승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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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4-22 07:00  |  수정 2024-04-22 09:04  |  발행일 2024-04-22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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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기자<사회부>

'혈세 먹는 하마'. 지방자치단체 혹은 공공기관에서 추진한 사업이 낮은 경제성을 보이거나 부실한 관리로 적자가 누적될 때 쓰는 관용적인 표현이다. 그간 대중교통 적자를 바라보는 언론의 시선이 딱 그랬다. 대중교통 적자 보전을 위한 대구시 재정지원은 매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2006년 시내버스 준공영제 시행 당시 413억원 수준이던 재정지원금은 지난해 2천296억원에 이르렀다. 대구도시철도 재정지원금도 지난해 처음으로 3천억원을 넘어섰다. 대구시의 대중교통 재정지원금은 2년 연속 5천억원대를 기록했다. 대구시 한 해 살림살이가 10조원가량임을 감안하면 결코 적잖은 액수다. 이 정도면 하마도 보통 하마가 아니다.

어느 순간부터 대중교통 적자에 대한 언론의 비판 수위는 많이 낮아졌다. 이는 대중교통 적자를 바라보는 관점이 변화한 덕분일 게다. 대중은 더 이상 대중교통 적자에 주목하지 않는다. 피부에 와닿지 않는 기후 대응이나 건강 증진 효과 등은 차치하고 단순히 요금적 측면으로만 봐도 그렇다. 지난해 대구시가 발주한 대중교통 요금인상 용역 결과, 시내버스 1인당 운송원가는 2천800원으로 나왔다. 도시철도 1인당 운송원가는 3천800원이었다. 결과를 받아본 대구시의 선택은 기존 요금(1천250원)에서 고작 250원을 인상하는 안이었다. 장기 불황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서민의 호주머니 사정을 외면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만약 민간에서 이 같은 인류애적 결정을 했다면, 결정권자는 다음 주주총회에서 쫓겨났을 게 틀림없다.

기회비용 측면에서도 대중교통 적자는 긍정적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 대구 대중교통은 흔히 하루 100만 통행량을 소화한다고 한다. 만약 대구에 대중교통이 없다면 하루 50만대가량의 승용차가 더 나오게 되는데, 이로 인한 교통 적체 및 사고 등 사회적 비용 증가는 가늠하기 힘든 수준이다. 이 때문에 대중교통 적자를 '착한 적자'로 부르기도 한다. 대중교통 적자가 기관의 생존을 위태롭게 하는 수준이 아니라면, 적정한 적자는 오히려 시민에게 이득으로 돌아올 수 있다.

물론 적자를 줄이기 위한 노력은 필요하다. 착한 적자 논리가 방만한 경영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되어선 곤란하다. 대중교통 운송원가 대부분은 인건비인데, 인건비를 제외하고 나머지를 줄이는 것은 한계가 있다. 운영비는 아무리 허리띠를 졸라매도 5년간 300억원을 줄이기 힘들다. 결국 이용객을 늘리는 방안을 찾아야 하는데, 이는 시장 상황 등을 고려했을 때 꽤 오랜 시간이 걸릴 듯하다. 하지만 충분히 기다려줄 수 있다. 지방공공기관의 존재 이유는 '경제적 효율성'이 아닌 '사회적 효과성'이기 때문이다. 착한 적자에 너그러워지는 이유다.이승엽기자<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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