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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
혼돈으로 통용되는 카오스(chaos)는 그리스인들의 우주개벽설에 기원한다. '입을 벌리다(chainein)'는 뜻의 동사가 명사화해 '캄캄한 공간'을 의미하게 됐다. 우주 탄생 이전의 무질서하고 원시적인 상태를 일컫는다. 즉 '태초의 혼돈'이다. 불규칙하고 예측 불가능한 상황도 카오스로 표현한다. 그런가 하면, 러시아 대문호 도스토옙스키는 자전적 소설 '죽음의 집의 기록'에서 인간에 내재된 야만성을 '인간 심연의 선과 악의 카오스'로 묘사했다.
4·10 총선은 야권에 192석의 의회권력을 안겼다. 집권 후반기 여소야대는 권력 중심축의 이동을 의미하며 정치판의 카오스를 예고한다. 총선 후 상징적 장면 하나. 윤석열 대통령이 범죄자, 피의자로 멸칭하던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영수회담을 제안했다. 정치권에선 권력의 역학구도가 반전됐다는 시그널로 해석하기도 한다. '여의도 대통령'이란 조어는 순식간에 관용어로 굳어질 기세다.
그렇다고 윤 대통령이 근본적으로 달라질까. 5·9 기자회견에 답이 있다. "제가 부족했다"며 연신 몸을 낮췄지만 정책기조 전환이나 국정쇄신 의지를 밝히진 않았다. 채 상병 특검법, 김건희 여사 특검법엔 거부권을 행사할 뜻을 분명히 했다. 김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에 대해선 "문재인 정부서 2년 반 동안 치열하게 수사했다"는 일방적이고 진부한 클리셰로 눙쳤다. 당시 검찰총장이 윤 대통령이었고, 단 한 번의 압수수색도 없었으며, 김 여사는 대선 전 검찰의 소환 요구에 불응했다.
여소야대의 카오스는 채 상병 특검법 재의결 과정에서 분출될 전망이다. 국민의힘 113석 중 15명이 이탈하면 대통령의 거부권은 무력화된다. 불출마·낙선·낙천 의원 58명의 의중(意中)이 변수다. 안전핀이 8석에 불과한 22대 국회는 더 아슬아슬하다. 함성득-임혁백 비선 가동을 대통령 권력 누수에 따른 위기관리로 보기도 한다. 모종의 딜을 위한 '밀당 라인'이라는 시각이다. 한국일보에 보도된 함성득 경기대 교수의 전언이 사실이라면 향후 정국은 '불규칙하고 예측 불가능한 상황'으로 빠져들 게 분명하다.
검찰의 김건희 여사 수사와 소환 방침이 특검 회피용 '약속 대련'이 아니라면 이 또한 집권 후반기 여소야대의 카오스다. 수사를 마냥 뭉개려면 직무유기 부담을 떠안아야 할 터. 감사원 역시 직권남용 위험을 감수하며 정권 초기처럼 좌충우돌할 리 없다. 그 연장선상에서 민정수석 부활이 사정기관에 대한 그립을 쥐려는 포석이란 지적이 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 13일 검찰 인사에서 김 여사 수사 지휘라인이 전원 교체됐다.
22대 국회의 김건희 여사 특검법 통과 여부는 카오스 현상의 분수령이 될 것이다. MBC 사장 임면권을 가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들의 임기가 끝나는 8월도 변수다. KBS와 YTN을 장악한 윤 정권이 MBC도 꿇릴 수 있을까. 야권은 재입법을 예고한 방송3법으로 이를 막을 수 있을까. 행정권력과 입법권력의 충돌은 어떻게 귀결될까. 고작 50쪽의 김건희 여사 석사 논문 표절 심사를 2년간 질질 끌어온 숙명여대의 끈기(?)도 대단하다. 이번엔 결론 낼 수 있을까.
여론의 향배도 무시할 수 없다. 윤 대통령 지지율은 24%, 취임 2주년 역대 대통령 최저치다(한국갤럽). 채 상병·김 여사 특검법엔 국민 60% 이상이 찬성한다. 특검을 "정치 행위"로 치부하는 대통령실과 여당의 주장이 생경한 이유다.논설위원

박규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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