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뉴스- 시민기자 세상보기] 딸의 유치원 교사생활

  • 박태칠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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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10-30  |  수정 2024-10-29 13:39  |  발행일 2024-10-30 제24면
[동네뉴스- 시민기자 세상보기] 딸의 유치원 교사생활

딸이 오랜만에 집에 왔다. 모처럼 밝은 모습에 안심이 됐다. 그러자 지난 세월 어두웠던 일들이 생각났다. 아이는 유아교육학과를 졸업해서 임용 고시를 치른 후 공립 유치원 교사 발령을 받았다. 그때 아이는 정말 행복해 보였다. 어린 원생들을 가르치며 보람과 즐거움으로 가득 찬 모습이었다.

그런데 5년쯤 지나면서 아이의 얼굴이 점차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학부모들의 민원으로 힘들다는 것이다. 사연을 들어보니 어이가 없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현장 체험학습을 다녀왔는데 한 아이가 넘어져 무릎에 상처가 나서 치료하고 학부모에게 전화를 해줬단다. 그런데 집에 온 아이가 허벅지에도 멍이 들어 있는 것을 본 부모가 "왜 그 부분은 이야기를 해주지 않느냐"고 전화를 하더란다.

그뿐이 아니었다. 모기에 물린 아이가 있었는데 그것을 본 학부모가 "교사는 도대체 뭘 하는 사람이냐"고 거칠게 항의했다. 이렇게 되니 딸애는 현장체험학습이 두렵다고 했다.

다른 일도 많았다. 아이들의 습성은 복도에서도 뛰고 달리는 것인데 그러다가 넘어져서 다치면 "그때 선생은 뭘 하고 있었느냐"고 하고, 어쩌다가 얘들끼리 부딪쳐서 다치면 상대 유치원생을 가해자로 지칭하며 가해자 부모가 왜 사과하지 않느냐고 교사에게 따진다. 시간에 맞춰 아이에게 비타민을 먹여달라는 학부모가 있고 바깥에 나갈 때 자기 애만큼은 마스크를 꼭 쓰게 해달라는 학부모도 있단다.

듣고 보니 교사는 동네북이었다. 어찌 넘어져서 한번 다쳐 보지도 않고 자라는 아이가 있으며, 모기에게 한 번 물려보지도 않고 자라는 아이가 있을까.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나중에 생존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 버틸 의지나 면역력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 둘을 키우면서 어린이집부터 대학까지 운동회나 졸업식 외에는 학교에 가보거나 전화해 본 적 없는 우리 부부로서는 그런 모습들이 기이하기만 했다.

그렇게 힘들어하던 딸의 얼굴이 요즘 좀 편안하게 보여 교육계에 무슨 변화의 바람이 일어났는가 해서 물어봤더니, 계속 전화로 민원을 넣던 학부모의 아이가 다른 곳으로 전원을 했단다. 그 말을 들으니 웃음보다는 서글픔이 앞섰다. 최근 전국 교직원 설문 조사에서 사직을 고민한 교사가 63%가 넘고 교권 회복 4법 이후 학교의 근무여건이 좋아지고 있다고 생각한 교사는 4.1%밖에 안된다고 한다. 교사가 긍지를 가지고 교육에 전념할 시기가 오기는 하는 걸까.

박태칠 시민기자 palgongsan72@kaka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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