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수 (경북문화재단 콘텐츠진흥원장·파리5대학 사회학 박사) |
지난 11일은 빼빼로 데이였다. 전형적인 데이 마케팅 중 하나다. 이전에 탄생한 밸런타인 데이, 화이트 데이 수요를 추월해 국내 편의점에서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고 한다.
조금 생소하겠지만 11일은 농업인의 날, 서점의 날이기도 하다. 필자는 최근 지역 서점 활성화 행사를 진행하면서 서점의 날에 주목하게 됐다. 2016년 한국서점조합연합회에서 이 날이 책장에 꽂힌 책(冊)과 책을 읽기 위해 서점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연상케 한다고 정했다. 이후 매년 국립중앙도서관에서 기념식과 시민들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올해 9회째 서점의 날을 맞이한 지역 서점의 현주소는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전히 초라하다. 경북도가 지난달 25일 안동, 26일 영주에서 '지역서점 Book+버스킹' 프로그램을 진행한 것도 을씨년스러운 지역 서점에 조금이라도 온기를 불어 넣어보려는 시도였다.
25일 행사가 열린 안동 교학사는 백년가게로 선정될 만큼 60년 전통을 자랑하는 서점이다. 1980년대엔 안동 시내에서 약속 장소를 정할 때 "조흥은행이나 교학사에서 만나자"고 할 정도로 '핫플'이었다. 세태를 반영하듯 발걸음이 줄어든 이 공간을 하늘호 밴드가 아름다운 선율로 채웠다.
이어 26일에는 영주 스쿨서점을 찾았다. 1957년 문을 연 경북에서 최고 오래된 서점이다. 서점의 현대화를 이끌며 지역에서 인문학의 명맥을 잇고 있는 보물 같은 곳이다. 이곳에서 여름밤잔디 밴드가 버스킹을 실시했다. 두 곳 모두 경북도 북부의 대표적 서점인데 갈수록 경영이 어려워져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런 지역 서점을 활성화하는 방안은 다양하다. 전문가들은 이중가격제 해소를 우선 과제로 꼽는다. 현행 도서정가제는 정가의 10% 이내 할인과 5% 마일리지 적립을 허용한다. 온라인 서점은 이를 활용할 수 있는 데 견줘 지역 서점은 불가능에 가까운 규정이다. 그래서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불티나게 팔리는 한강 작가의 작품 판매도 지역 서점엔 '그림의 떡'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의 결실이 지역 서점으로 많이 이어지지 않는다"는 손진걸 교학사 대표의 말은 신산한 현실을 잘 보여준다.
다음으로 유통 방안 합리화. 도서 유통은 노벨문학상 수상작 공급 과정에서 취약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소매와 도매를 겸하고 있는 교보문고에서 한동안 소매로 자사에만 독점 공급하면서 물의를 일으켰다. 나중에 소매 공급을 중단하면서 급한 불은 꺼졌지만 도서 유통구조의 민낯을 잘 보여줬다.
무엇보다 지역 서점을 활성화하려면 이 공간이 지역 주민들의 일상에 녹아들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책을 가까이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프랑스가 독서를 확산하기 위해 2017년부터 개최하고 있는 '독서의 밤 (Les Nuits de la lecture)' 행사도 참고할 만하다. 문화통신부 산하 국립도서센터가 주최하는 이 행사는 매년 1월에 나흘 동안 열린다. 도서관, 서점 외 박물관, 극장, 학교, 대학, 교도소, 의료기관, 문화 시설 등에 시민들을 초대, 작가와의 만남 등 책 읽는 즐거움과 중요성을 나누는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서점은 물론 많은 공공기관이 책과 관련된 주제를 항유하는 문화 공간으로 변신해서 독서가 익숙해지는 토대를 만드는 것이다.
소설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독서 열풍이 불고 있다. 그 과정에 나타난 지역 서점의 '풍요 속 빈곤'을 잘 정리하면 문제에 대한 해법이 보일 수 있다. 그에 필요한 정책적 방안을 마련해서 지역 서점을 활성화할 수 있는 지혜를 찾는 게 시급하다.
이종수 (경북문화재단 콘텐츠진흥원장·파리5대학 사회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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