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 경북 청도 유천마을, 지금도 영사기 돌아가는 60년대 극장…그때 그 시절로 시간여행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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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3-21  |  수정 2025-03-21 08:41  |  발행일 2025-03-21 제17면
[주말&여행] 경북 청도 유천마을, 지금도 영사기 돌아가는 60년대 극장…그때 그 시절로 시간여행
유천극장, 옛 양조장, 영신정미소가 나란히 자리한다. 문 닫은 소리사는 50년 넘게 장사를 했고 영업 중인 식당은 35년 전통이다. 극장 맞은편에 시인의 집이 위치한다.
[주말&여행] 경북 청도 유천마을, 지금도 영사기 돌아가는 60년대 극장…그때 그 시절로 시간여행
시조시인 이호우·이영도 남매의 생가. 감나무 아래에 생가 표석이 있다. 1910년경 지어진 집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지금은 나무지저귀 향이 날 듯 새것의 모습이다.
정미소 검은 벨트가 굉음을 내며 돌아간다. 보자기처럼 덮여 있던 얇은 먼지가 어둠속의 빛처럼 흩어진다. 건물은 금세 폭삭 내려앉을 듯 낡았지만, 어느 날 최후로 균형을 잡고 선 이후 그대로 굳어버린 듯하다. 연세를 알 수 없는 노인은 벽감에 놓인 조상처럼 가만히 기계의 일을 바라보다가, 이내 몽당 빗자루를 쥐고는 허리 굽혀 바닥을 쓸어낸다. 18년 전의 그분일까? 생각을 하다가 그분이다! 라고 확신한다. 강산이 두 번
바뀌기직전에 다시 찾은 청도 유천이다.

시조시인 이호우·이영도 남매 출생지
1967년 건립 유천극장 2023년 재개관
日강점기 지은 정미소 여전히 '현역'
번성했던 옛 양조장·적산가옥도 남아
청도군, 유천길 정비 문화마을 조성

◆ 역이 있던 마을, 유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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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천극장은 1967년에 건립되어 당시 청도읍의 청도극장·중앙극장 등과 어깨를 견줄 정도로 명성이 높았다. 문 닫은 채로 있다가 2023년 12월에 재개관했다.
동창천과 청도천이 만나는 자리다. 두 천이 만나 이룬 삼각의 큰 호반을 교집합으로 두고 동창천변에 내호리가, 청도천변에 유호리가 자리한다. 호반 안쪽에 있다고 해서 내호(內湖), 천변에 느릅나무가 번성했다고 유호(楡湖)다. 그러나 그저 유천이라 부른다. 고려 때부터 유천역이 있어서라는데, 두 천이 만나 엉기어 응천(凝川)이 되고 밀양으로 흘러 들어가 유천(流川)이라 한 것이 유천(楡川)으로 쓰였다고도 한다. 예전에는 "유호, 내호, 사촌… 이 주변 11개 동네를 다 합해서 통칭 유천"이라 했다. 지금은 내호와 유호만 합해 유천이라 하는 듯하다. 내호리와 유호리는 정확한 구분이 어렵다. "저기 저 키스 당구장 너머는 내호리, 이쪽은 유호리"였지만 이제 키스 당구장은 없다. 그저 나는 느릅내 유천이 좋다.

[주말&여행] 경북 청도 유천마을, 지금도 영사기 돌아가는 60년대 극장…그때 그 시절로 시간여행
재현된 유천역, 오른쪽 건물은 보건지소다. 역은 원래 청도천 건너에 있었다. 21세기가 시작되면서 철길은 직선화되었고 '유천역'이란 이름도 사라졌다.
고려 때부터 있던 역의 기능은 일제강점기 유천역으로 이어졌다. 유천역은 사람과 함께 물자가 모여 이동하는 교통의 요지였다. 그래서 일제강점기 때부터 경찰관 주재소와 우체국이 있었고 경북도에서 처음으로 사립학교가 생겼다. 농사를 지을 땅이 많지 않아 주민 대부분은 상업으로 생활했다. 3일과 8일마다 열리는 유천장은 청도와 밀양에서 알아주는 대목장이었다. 그 시절 밀양장이나 청도장보다 이곳 유천장의 규모가 더 컸고, 항일 운동이 거세게 일어난 역사적 장소이기도 했다. 이곳에서 1912년 시조 시인 이호우가, 1916년에 이영도 남매가 태어났다. 닫혀 있으나 잠기지 않은 대문을 열고 들어가 감나무 아래에 놓인 두 시인의 생가 표석을 본다. 1910년경 지어진 그들의 집은 지금 나무지저귀 향이 날 듯 새것의 모습이다. 그들이 세상을 떠난 지 오래 되었고 많은 것이 변했다. 21세기가 시작되면서 철길은 직선화되었고 '유천역'이란 이름도 사라졌다. 그러나 유천은 지금도 보건지소, 우체국, 농협, 초등학교 등이 있는 일대의 중심이다.

◆ 유천문화마을

[주말&여행] 경북 청도 유천마을, 지금도 영사기 돌아가는 60년대 극장…그때 그 시절로 시간여행
사료판매소 간판이 걸린 건물은 원래 양조장이었고, 그 옆의 영신정미소는 일제강점기에 지어져 지금도 현역이다.
마을 안쪽 도랑이 흐르던 길이 반듯하다. 물건이 꽤나 들어찬 슈퍼가 두엇, 영업하는 식당이 서넛쯤 된다. 식당 앞 평상에 앉은 남자가 소리를 지르고 있다. 사용하지 않아 녹이 슨 것 같은 목소리다. 동그란 등이 어쩐지 쓸쓸하다. '영업중'이라는 문패를 걸어 놓은 다방이 하나, 청도천을 내다보는 창이 있던 다방은 문을 닫았다. 문 닫은 약방 간판이 두엇, 적산가옥도 두엇 눈에 띈다. 문 닫은 중앙소리사는 이곳에서 50년 넘게 장사를 했다고 한다. 흐린 유리문 안쪽에 오래된 집기와 물건들이 보인다. 친절봉사, 일류유행 유호이발관 간판은 그림이고, 만원식당은 35년 전통이다. 가게들은 대개 수십 년 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영화롭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곳곳의 벽화들이 생생하다. 소달구지를 타는 아이들, 가마니를 지고 나르는 여인들, 군고구마를 먹으며 TV앞에 모여 앉은 가족, 파마 중인 할머니들이 있고, 양과점, 포차, 양장점, 정육점 등 옛 상점들이 반세기 전의 일상을 보여준다.

마을의 동쪽 끝자락에 중앙고속도로가 남북으로 걸려 있다. 서쪽 끝인 청도천에는 물길 따라 국도 25호선이 굽이쳐 지나간다. 그 사이 동서로 뻗은 마을 안길이 유천길이다. 청도군은 유천길 600m 정도를 정비해 '유천문화마을'을 조성했다. 길을 닦고 시인의 생가를 복원하는 등의 인프라는 2024년 즈음 끝냈다. 지금은 좀 더 세밀한 작업들을 해나가고 있는 중이다. 단층의 붉은 벽돌집에 '로컬푸드 1호점 탄생 축하'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낮은 돌담으로 둘러싸인 텃밭은 신축 화장실 예정지다.

얼마 전까지 영업을 했다는 대양철공소에는 '유천대장간 설치 예정'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맞은편 빈 점포는 농특산물 판매장이 예정되어 있고 로컬점빵 2호점이 리모델링 중이다. 번듯하게 남아 있는 적산가옥은 '유천다원 예정지'란다. 지금 공사 중이어서 백년 묵은 먼지들이 뻥 뚫린 창밖으로 풀풀 날린다. 장터가 있던 곳은 이제 주차장이다. 바로 옆 주점이었던 가게는 유천에서 유명한 식당이다. "밀양, 경산, 대구서 많이 와. 일주일 채소 값이 100만 원이야." "우린 대구서 밥 먹으러 왔어."

◆ 영화로운 시절의 3대장, 극장·양조장·정미소

유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은 유천극장이다. 1967년에 건립되었는데 당시 청도읍의 청도극장과 중앙극장 등과 어깨를 견줄 정도로 명성이 높았다. 전성기에는 200여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규모가 컸지만 이후 TV보급으로 점차 관객이 줄어들다가 문 닫은 채로 오래 이 자리에 서 있었다. 안타깝게도 2008년 12월에 불이나 내부와 지붕이 타버렸지만 현재는 재건되어 간판까지 걸려 있다. 건물 외형은 옛날과 똑같아 보인다. 2023년 12월에 재개관해 22일과 23일 영화를 상영했다고 한다. 연말 크리스마스 즈음의 낭만이 눈앞에 그려진다. 월2회 정기상영을 하고 청도군내 공연단이나 주민합창단의 연습과 공연 장소로 활용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오늘 극장 문은 잠겨있고 일단의 안내는 보이지 않는다.

바로 옆 '사료판매소' 간판이 걸린 박공지붕 건물은 원래 양조장이었다. 유천이 교통의 요지다 보니 함께 번성한 것이 양조장이다. 일제강점기인 1910년부터 1940년까지 약 30년 동안 이곳 유천에는 총독부 허가를 받은 양조장이 6개나 있었다고 한다. 유천소주도 유명했는데 고려시대 때부터 빚었던 술이라 전한다. 유천주변 30리 안의 100여 호가 소주를 생산했고 전국적으로 거래해 한때 소주의 대명사로 불렸다. 해방이후 당국의 단속으로 생산이 위축되었고, 다만 허가받은 유천소주양조장이 설립되어 종업원 10여명이 하루 30말 정도를 생산했다고 한다. 그러다 1966년 '전국 양곡 양조 금지령'에 의해 유천소주는 지금의 '금복주'에 합병되어 쌀로 빚은 증류 소주의 명맥은 끊어지고 말았다. 해방 전후까지 이어져 오던 전통 술 제조 기법은 이제 불분명하고 다만 일제강점기 유천소주 양조법만 알려져 있다고.

또 바로 옆의 영신정미소는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것이다. 녹슨 함석지붕과 낡은 판자문이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놀라운 건 이 정미소가 여전히 현역이라는 점이다. 도정이 끝났는지 기계는 멈춰 있고 노인은 보이지 않는다. 두부를 파는 젊은이의 빨간 승용차가 구성진 외침을 흘리며 천천히 지나간다. 조그만 노란 버스가 저 끝에서 조용히 다가온다. 소리치던 남자는 여전히 동그랗게 앉아 있다. 무엇에도 영향 받지 않고, 고요하고, 괴팍하고, 쓸쓸하게. 머리 위에는 어제보다도 그제보다도 맑고 깨끗한 하늘이 소문처럼 퍼져 있고 담벼락에는 이호우의 시가 적혀 있다. '꽃이 피네 한 잎 한 잎 한 하늘이 열리고 있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 Tip

청도읍에서 25번 국도를 타고 밀양방향으로 간다. 신도터널 지나 초현교차로에서 12시 방향으로 나가 직진, 옥산교차로에서 좌회전해 유천교를 건너면 내호리 표석이 보인다. 모텔 옆길로 들어가면 유천문화마을의 유천길 중간 정도 된다. 왼쪽으로 가면 유천역, 오른쪽으로 가면 유천복합체육센터가 있고 두 곳 모두에 넉넉한 주차장이 있다. 유천역 가기 전 금나무식당 옆 옛 장터자리에도 작은 규모의 주차장이 있다. 모두 무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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