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그대들의 피와 땀 잊지 않겠습니다

  • 이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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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4-14  |  수정 2025-04-14 07:12  |  발행일 2025-04-14 제23면
[월요칼럼] 그대들의 피와 땀 잊지 않겠습니다
이창호 (경북본사 본부장)
한 후배 기자의 경북 '괴물 산불' 취재 후일담이다. 그는 지난달 25일 오후 안동 길안면에서 산불 현장을 취재 중이었다. 불이 청송으로 번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차량 핸들을 돌려 진보면 쪽으로 달려갔다. 오후 4시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칠흑같이 어둡고 태풍에 버금가는 강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청송 가랫재 터널을 빠져나온 순간, 그는 아연실색했다. 산등성마다 속절없이 불타고 있는 광경을 두 눈으로 목격해서다. 저녁답에 그는 전화통화에서 "불똥이 차량으로 날아와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공포를 느꼈다"고 했다. 다급한 상황 속에서도 그는 차 안에서 기사를 송고했다.

알토란같은 산림과 주택, 인명을 집어삼킨 이번 초대형 산불을 지켜보면서 영화 한 편이 오버랩됐다. 몇 해 전 VOD로 본 할리우드 영화 '온리 더 브레이브(Only the Brave·2017년 개봉)'. 2013년 발생한 미국 애리조나주 '야넬 힐 대형 산불'을 소재로 했다. 이 영화는 애리조나주 프레스콧시 소속 산불진압부대인 '그래니트 마운틴 핫샷' 팀이 산불 진화 중 겪는 비극적 상황과 그들의 용기, 희생, 동료애를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그들이 마주한 야넬 힐 산불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번졌다. 그 과정에서 핫샷팀원 20명 가운데 19명이 화마에 목숨을 잃었다. 영화는 이들이 마지막 순간까지도 주민을 지키려는 사명감을 애틋하게 담아냈다. 이들은 미국인들 사이에서 산불 진화의 상징이자 영웅적 희생의 아이콘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번 경북 산불은 사상 최악의 피해를 냈다. 자연 재난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를 다시 한번 실감케 했다. 그런 와중에 조금이라도 피해를 줄이기 위해 화마와 사투를 벌인 소방관과 산불진화대원들의 헌신과 노고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First in, Last out(화재 현장에 제일 먼저 들어가서 가장 마지막에 나온다)'. 미국 소방관들의 복무 신조다. 이번 경북 산불 진화에 나선 우리 대원들의 자세도 결코 다르지 않았다. 재난 속에서 빛난 K-영웅들이다.

불길이 번지자 마을 이장·청년회장은 물론 외국인 근로자도 연기에 휩싸인 동네를 뛰어다니며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업고 대피시켰다. 모두 크게 격려하고 칭찬해야 할 의인(義人)들이다. 산불 이재민을 위로하고 보살핀 경북도 및 시·군 공무원과 자원봉사자의 노고도 빼놓을 수 없다.

미국·호주에선 산불이 났다 하면 초대형이다. 그네들 말로 '메가파이어(Megafire)'다. 산불에는 아주 이골이 났다. 이들 나라에선 담수량이 넉넉한 소방 항공기와 고도로 훈련된(군대처럼 조직화된) 전문 진화대를 동시에 투입, 초기에 산불을 잡는다. 산불 발생 후 30분 내 진압 여부가 피해 규모를 가늠하는 점에 비춰 우리 산불 진화·구조 시스템 및 장비도 산지 특성에 맞는 획기적 개선이 절실하다. 그래야 안타까운 인명·재산 피해를 막을 수 있지 않겠나. 산불에 맞서 자신의 생명을 걸고 국민 안전을 지키려 한 이들의 피와 땀을 잊어선 안 된다. 그들이 보다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국가적 지원과 관심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그들의 노고를 단지 기억하는 데 그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사족 하나, 모두(冒頭)에서 소개한 우리 기자들에게도 안전(방독면·방화복 착용 등)이 담보된 재난 취재 환경이 하루빨리 마련되길 간절히 바란다.

이창호 (경북본사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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