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병은 아트리움 모리 큐레이터
작가의 세계가 응축된 하나의 작품에는 다층적인 상징과 의미가 내재되어 있다. 그러나 복합적인 의미 중 관람객에게 인지되고 해석되는 부분은 극히 일부에 불과할지 모른다. 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세계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작품 속에 소위 '힌트'를 어느 정도로 명시할지에 대해 고민한다. 그것은 이미지 안에 시각적인 형태로 드러나기도, 제목이나 재료와 같은 작품의 정보로 드러나기도 한다. 지나치게 직설적인 암시는 작품을 감각적으로 해석하기보다는 정답을 추론하는 대상으로 환원시킬 위험이 있으며, 또한 너무 모호한 힌트는 작가의 의도나 감정의 중심에 관람자가 다가서는 길 자체를 차단시킨다.
이러한 지점에서 작가 모유진의 작업은 직접적이지 않은, 다양한 층위의 암시와 상징을 통해 관객에게 다가서는 것으로 보여진다. 한국화를 전공한 작가는 한지의 물성을 활용해 레이어의 중첩과 오려냄이라는 기법으로 사라진 것들의 흔적을 담아낸다. 미묘한 색감의 차이와 덧붙여진 한지의 경계로 드러나는 이질적인 지점이 화면 곳곳에서 등장한다. 우리의 예상대로, 작품을 훑어보던 관객들은 그 어긋난 지점에서 시선을 멈추게 될까? '이 부분, 뭔가 이상한데?'라는 시각적 불편함을 시작으로 다양한 의문들을 가지다가, 마침내 작가의 의도대로 있었지만 없는, 부재하는 것들의 흔적과 형상을 찾을 수 있게 될까? 숨겨진 형상들을 찾지 못한다면, 그 이후 그들의 감상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까? 이 부분을 염려하듯, 작가의 작품은 평면 회화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디스플레이 된다. 일반적으로는 노출되지 않는 작품의 뒷면을 전면적으로 드러내는 행잉 방식에서부터, 그림을 병풍처럼 자립시켜 양면 모두를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한 설치 형식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작품의 전·후면을 모두 노출시키는 방식으로 관객과의 거리 사이에 작은 틈을 열어둔다.
모유진의 작품 속 힌트는 과도하게 구체적이지 않으면서도, 결코 무형적이지 않은 중간 지점을 지향한다. '있었던 것', 그러니까 현재에는 '없는 것', 보이지 않는 것을 시각화하기 위해 작가는 어떤 고민을 해왔을까? 잔향의 구현을 넘어서 부재와 상실이 남기는 감각, 기억과 감정이 오묘하게 교차되는 지점의 혼란스러움과 같은 복합적인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작품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까? 부재를 감각하게 만드는 회화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기려는 것일까? 지면에서 언급한 모든 작품은 모유진 작가의 인스타그램 계정(@moeugene0407)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태병은 <아트리움 모리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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