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만진의 문학 향기] 콜리마와 제주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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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7-25 06:00  |  발행일 2025-07-24
정만진 소설가

정만진 소설가

1907년 7월25일 '20세기의 도스토옙스키' 바를람 샬라모프가 타계했다. 그의 대표작 '콜리마 이야기'에는 "다른 죄수의 옷을 노름 담보로 삼기 위해 그를 태연히 살해한다" "죽은 동료의 속옷을 가지려고 무덤에서 시체를 꺼낸다" 식 내용들이 즐비하다.


'콜리마 이야기'는 의미상 콜리마 강제노동 수용소의 이야기라는 뜻이다. 저자는 이곳에서 17년 동안 강제노동을 했다. 직접 겪고 본 실화들을 제재로 한 까닭에 소설은 마치 다큐멘터리나 역사서 같은 느낌을 준다. 말 그대로 체험적 사실주의 작품이다.


샬라모프는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전달만 할 뿐 독자에게 주제나 해석을 강요하는 법이 없다. 스토리를 펼쳐놓은 후 거기서 문제의식을 도출해내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톨스토이와 솔제니친이 낚시를 한다면 샬라모프는 통발을 쓴다.


샬라모프의 그러한 작법은 세계를 응시하는 자신의 남다른 가치관이 낳은 독특한 창작 기술의 발현이다. 다음은 샬라모프가 남긴 말이다. "수용소는 지옥과 천국의 대립이 아니라 우리 삶의 재현이다. 수용소는 바깥 세계와 유사하다."


현실세계는 어떠한가. 운명론에 빠져들거나, 권력자에게 저주를 퍼붓거나, 격정을 폭발시킨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공간이 아니다. 철학적이거나 형이상학적 허세도 물론 무용지물이다. 단순한 회고록이나 체험담 발표로 개선되는 것은 없다.


샬라모프는 솔제니친에게 보낸 서한에서 말했다. "수용소라는 곳은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누구에게나 부정적인 학교입니다. 사람은 그가 관리든 수인이든 수용소를 볼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일단 보았다면 아무리 무섭더라도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나는 남은 삶을 이 진실에 바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샬라모프는 진실을 말하는 가장 유효한 작법을 찾으려 진력을 다했고, 그 결과 날마다 벌어지는 수용소의 죽음을 이야기하면서도 오직 담담하게 기술하는 것만이 해답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샬라모프가 기록해낸 수용소는 전체주의 사회의 축소판이다. 처참하고 잔혹하고 음험한 그곳의 현실을 작자가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 그 다음은 독자의 몫이다. 전율하고 분노하는 독자도 있고, 작자의 창작의도를 의심하는 독자도 있다.


한강 소설도 있는 그대로 묘사한다. 겪은 당사자조차 증언을 거부하는 비인간적 인간세계를 생생하게 되살려낸다. 샬라모프와 한강은 다른 '콜리마'를 보여주지만, 수용소와 다름없는 현실세계에서 허우적대는 인간 삶을 재현한다는 점에서는 서로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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