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병은 아트리움 모리 큐레이터
초록빛 풀밭으로 가득한 지평선 너머로 푸른 하늘이 펼쳐진다. 곳곳에 우뚝 솟은 나무까지, 자연의 풍경을 배경으로 함에도 전혀 자연스러움이 느껴지지 않는 이곳은 어디인가. 선명한 분홍색, 파란색의 피부를 가진,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사람 같지 않은 이들은 누구인가. 미묘한 긴장감이 감도는 이곳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작가 김상덕의 회화는 그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한눈에 눈치채지 못하길 바라는 듯하다.
화면 속에 산발된 다수의 형태와 그것의 역동적인 움직임, 톡 쏘는 색감은 단번에 다수의 자극과 긴장을 만들어낸다. 색과 형태의 범람 속에 마침내 무엇인지 모를 존재에게 시선이 닿으면, 그 순간 관람자는 유쾌함과 기묘함 사이의 경계에 발을 딛는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경계의 지점에서 줄타기를 하는 이 작품의 균형감은 작가의 치밀한 계산 아래 구축된 구조일까? 혹은 그저 손이 가는 대로, 놀이하듯 만들어진 작가의 세상 그 자체가 어딘가 경계의 지점에 서 있는 것일까? 김상덕의 회화는 계획과 직관, 놀이와 설계의 경계를 모호하게 뒤섞으며 관객으로 하여금 스스로 그 해석의 책임을 떠안게 만든다.
그의 작품에서 발산되는 불안한 분위기는 화려한 색과 복잡하게 얽힌 형태가 만들어내는 긴장으로 인한 것인가? 관객은 사람인 듯 아닌듯한 이 낯선 존재들을 나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니면 낯선 색감과 형태로 비롯되는 불편함 감각에 밀려 타자로 경계지을 것인가?
작품의 분위기를 지배하는 전체적인 색감이 달랐다면, 같은 장면은 전혀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냈을까? 만약 그렇다면, 색채의 대비가 관람자에게 주는 정서적 경험은 무엇일까?
김상덕의 세계는 즐거운 듯 불안하고, 기괴한 듯 선명하다. 여러 질문들을 반복하고 나니, 작가의 작품이 만들어내는 이 감정들이 맥락 없는 혼종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감각의 구조 자체를 반영하는 듯하다. 모든 예술작품이 그러하듯, 김상덕의 회화 역시 정답 대신 수많은 질문을 우리에게 밀어 넣는다. 우리는 그 질문을 회피할 것인가, 혹은 기꺼이 그 감각의 경계에 머물 것인가. 작가가 만들어내는 불편하고도 유쾌한 아름다움은 오늘날 관객에게 어떤 감상을 남기며,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가?
지면에서 언급한 모든 작품은 김상덕 작가의 인스타그램 계정 @bbir0k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