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병은 아트리움 모리 큐레이터
푸르스름한 기운과 함께 희미하게 번져오는 빛이 가득하다가, 이내 시선을 압도한다. 그 빛은 대상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본래의 역할에 충실하기보다 오히려 색과 형태를 덮어버리며 화면을 하얗게 물들인다. 작가 신준민의 회화 속 빛은 무언가를 비추거나 배경이 되는 조연의 역할이 아니라 주체이자 핵심 사건으로 등장한다. 강한 빛이 사물을 지우고, 남은 빈 여백이 오히려 사물의 존재를 환기시키는 아이러니가 그의 회화 전면에 깔려 있다. 관객은 화면 속 장면을 본다기보다, 장면이 사라지는 과정을 목격한다.
빛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는가. 너무 강렬한 빛으로 눈 앞의 모든 형태가 사라지는 순간, 우리는 사물의 본질을 더 잘 보게 되는걸까, 혹은 완전히 잃어버리는 걸까? 신준민의 회화에서 강렬한 빛에 잠식된 백색 공간은 사물과 배경을 가려버리지만, 그 속에서도 구체적인 형태의 실루엣은 여전히 남아있다. 이 구체성과 부재가 동시에 놓인 장면은 여러 경계의 의미들을 만들어낸다. 작가는 빛을 통해 현실을 비추는 것일까? 아니면 감각만을 남기고자 하는 것일까?
무언가를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존재하던 빛이 스스로를 드러내기 위해 화면의 전면에 나선다면, 그것은 단순한 시각적 효과를 넘어 미학적 선언이 되는 것이 아닌가? 신준민의 화면 속 빛은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의 경험을 요청하고 있지 않은가? 작가의 회화가 관객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은 푸른 풍경일까, 빛이 만들어낸 감각의 장인 것일까?
물결 위에 부서지는 윤슬처럼 은은하게 자리한 빛을 담은 2021년도의 작품들과 전광판의 강렬한 플래시, 스포트라이트의 눈부심처럼 압도적인 빛을 담은 최근의 작업에 이르기까지 부드러운 반짝임에서 폭발적인 발광으로의 전환의 과정에는 어떤 계기가 존재했던 것일까? 빛이 부드럽게 배경 속에 스며들 때와, 전면에 나서 관객의 시선을 강탈할 때, 관객은 각기 어떤 방식으로 빛을 인식하게 될까? 작가는 하나임에도 다양하게 변화하는 빛의 속성을 실험하며, 그 안에 잠재된 상반된 얼굴을 동시에 드러내려고 하는 것일까?
신준민의 회화 속 빛은 배경과 주인공의 역할을 넘나들며, 사라짐과 드러남을 오가는 미묘한 긴장을 끝없이 지속시킨다. 작가의 작품은 인스타그램 계정(@shinjunmae)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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