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의 영화 심장소리] 슬픔의 강을 건너는 법
언제부턴가 눈물이 잘 나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영화를 봐도 좀처럼 울지 않는다. 근데 이 영화를 보고는 눈물이 쏟아졌다. 두 번 봤는데 두 번 다 울었다. 죽음에 관한, 상실과 슬픔에 관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돌아가신, 친정엄마가 생각난 것이다. 영화 '햄넷'은 셰익스피어가 아들을 잃은 실화에 바탕을 둔 이야기로, 매기 오페럴의 소설이 원작이다. '노매드랜드'(2021)의 클로이 자오 감독이 원작자와 함께 각본을 쓰고 연출했다. 셰익스피어가 아들을 잃은 후 '햄릿'을 쓰게 된다는 줄거리지만, 진짜 주인공은 부인 아녜스다. 홀로 숲을 쏘다니며, 약초를 만들고, 매를 키우는 아녜스와 가난한 라틴어 교사 윌은 단숨에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한다. 이후 세 아이가 태어나지만, 아들 햄넷이 11살에 흑사병으로 사망한다. 뒤늦게 도착한 윌은 아들의 죽음을 보지 못한다. 슬픔에 울부짖는 자신과 달리 덤덤하게 런던으로 떠나버리는 윌을 아녜스는 이해하지 못한다. 부부 사이는 차갑게 식는다. 시간이 흐른 뒤, 아녜스는 아들 이름의 연극이 공연된다는 소식을 듣고 런던에 온다. 원망에 젖은 채 연극을 보던 아녜스는, 서서히 윌의 아픔과 슬픔을 이해하게 된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빛나는 제시 버클리의 아녜스는 강인하고 아름답다. 강함과 여림이 공존하는 폴 메스칼의 윌도 매력적이다. 영화 전체는 감독 클로이 자오의 색채로 가득하다. 강렬하고 신비롭다. 조금 지루하다는 소감을 어디선가 봤다. 그럴지도 모른다. 좋은 영화는 약간의 지루함을 동반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침내 끝을 봤을 때의 감동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윌이 검은 강물 앞에서 죽음을 고민하며, "To be, or not to be"를 중얼거리는 장면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햄릿' 연극을 보던 아녜스가 무대 위로 손을 내밀고, 관객들이 함께 손을 모으는 장면도 잊을 수 없다. 예술이 우리를 치유한다고, 예술의 힘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어느 인터뷰에서 감독은 '아녜스는 자연과 연결된, 감성적인 사람'이고 '윌은 문명과 연결된, 떠나거나 도망치는 사람'이라 설명했다. 단숨에 사랑에 빠졌지만, 둘은 너무나 다르다. 애도의 방식도 다를 수밖에 없다. 아녜스는 자신과 달리, 작품을 통해 절절한 슬픔을 토해내는 윌을 뒤늦게 이해한다. 그러니 아녜스가 연극으로, 예술로 위로받은 것은 아니었다. 윌 역시 자신처럼 고통스럽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리를 위로하는 것은 예술 자체가 아니라, 결국은 공감이고, 사랑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것. 죽음과 고통은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이라는 것. 예술이 힘을 발휘하는 것도 그 지점일 것이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8개월이 지났다. 병원에 누워 고통스러워하던 엄마의 죽음은 트라우마로 남았다. 아주 가끔 눈물이 쏟아지는 것을 빼면 대체로 무덤덤했다. 슬퍼할 겨를 없이 바쁘기도 했다. 클로이 자오 감독은 "슬픔은 상실로부터 다시 태어나기 위한 그릇"이라 말했다. "슬픔이 곧 사랑"이라고도 했다. 아무래도 나는 충분히 슬퍼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직 아프다. 날개를 펼쳐 자유롭게, 고통 없는 곳으로 훨훨 날아간 엄마를 이제는 보내주어야겠다. 우리 모두 가야 할 길이니까. 영화를 보며 내 안의 아픔과 슬픔을 본다. 김은경 영화 칼럼니스트
2026.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