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 끝 모르는 장기불황에 직격탄 ‘몰락 도미노’

  • 이은경,홍석천,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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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09-01  |  수정 2012-09-01 08:13  |  발행일 2012-09-01 제11면
대출창업→과당경쟁 수익악화→폐업 악순환
엄청난 과포화…소득대비 부채도 159% 달해
자영업자, 끝 모르는 장기불황에 직격탄 ‘몰락 도미노’
대구시 수성구 범어동 주택가 골목길 한 점포에 ‘임대’ 표시가 크게 내걸려있다. 경기불황과 소비심리 위축으로 ‘창업’과 ‘폐업’하는 자영업자들이 크게 늘고 있다. 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정용철씨(가명·46·대구시 서구 평리동)가 식당 경영을 시작한 것은 10여년 전이었다. 통칭 20평 남짓한 작은 분식점이었지만 재미는 쏠쏠했다. 분식에서 찜닭, 삼겹살 등으로 메뉴를 바꿔가며 사업을 키웠다. 1억원이던 가게 보증금은 사업 시작 2년 만에 갚았고, 순수익만 월 3천만~4천만원에 이를 정도로 호황을 이뤘다. 금방이라도 부자가 될 것 같았던 호시절은 그러나 잠시였다. 4억여원을 투자해 본격적으로 외식업에 나서면서 사업은 몰락하기 시작했다. 상권, 입지, 규모, 트렌드 등을 10여년의 노하우로 꼼꼼히 따져 시작했던 사업이었다. 때마침 시작된 금융위기의 탓이 컸다. 답답한 마음에 두부전문점, 한정식집, 횟집 등으로 업종도 잇따라 바꿔봤지만 소용없었다. 재기를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발버둥쳤지만 결국 실패했다. 그동안 벌어둔 자산을 몽땅 날리는 데는 5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정씨는 2년 전 주위의 도움을 얻어 다시 분식집을 차렸다. 마흔이 넘은 적지 않은 나이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고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음식을 만들고 파는 것 말고는 없기 때문이다. 10여년 전과 마찬가지로 20평의 작은 분식집에서 정씨는 이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고 있다. 오전 8시 매천시장에서 장을 봐서 하루 종일 주방과 배달을 번갈아 하며 밤 10시까지 365일을 그렇게 분식집에 매달려 산다. 주방과 홀, 배달까지 합쳐 3명의 직원이 한달 벌어들이는 돈은 1천800만원 정도. 재료비 700만~800만원, 월세 130만원, 공과금 100만원, 직원 월급 550만원을 제하고 나면 정씨가 손에 쥐는 돈은 200만원을 겨우 넘는다.

“한집 건너 한집이 식당이고 대구지역 음식값이 전국에서 제일 싸다”는 정씨는 “자영업이 경기불황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불황에 경쟁 포화 ‘악순환의 쳇바퀴’

사상 유례없는 장기 불황으로 포화 상태에 이른 자영업자들이 무너지고 있다. ‘불황-대규모 퇴직-대출을 낀 생계형 창업-과당경쟁으로 인한 수익 악화-폐업-빈곤층 전락’이라는 악순환의 쳇바퀴에 갇힌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조사에 따르면 2000년에서 2009년까지 10년 동안 연평균 76만6천개 업체가 탄생한 반면 비슷한 규모인 75만2천개 업체가 같은해 곧바로 퇴출당했다. 종업원 5인 미만의 영세사업체가 1년 동안 생존할 가능성은 65~75%, 영세 자영업체 3곳 중 1곳은 1년 안에 문을 닫는 셈이다.

구장혁씨(가명·39)에게 지난 2년은 그야말로 악몽과 같은 시간이었다. 식품 대기업 영업 관리직에 근무하던 구씨는 좋은 실적과 승진기회도 포기하고 경험을 살려 창업에 도전했다. 퇴직금과 창업 대출금 등 2억원의 자본금으로 사업을 시작한 그는 처음 식품 대리점 사장이라는 명함을 받고는 부자가 된 듯 기뻤다.

구 사장이 하는 일은 두부와 콩나물 등의 신선식품을 슈퍼에 납품하는 대리점, 즉 중간 유통업이다. 동네 슈퍼와 음식점 등 신규 거래업체를 뚫기 위해 ‘1+1’행사나 ‘특가 상품’ 등 마케팅 비용이 적지 않게 들어갔다. 물론 마케팅 업무를 10여년 해왔던 구 사장은 적정한 투자를 통해 시장 점유율을 높인다면 투자비 회수가 가능하다고 자신했지만 문제는 시장 상황이었다.

그는 “정확히 2011년 추석 이후부터 바닥 경기는 그야말로 바닥을 뚫고 들어갔다”고 한숨을 쉬었다.

지난해 초 6천만원대를 유지하던 월 매출이 3천만원대로 반토막 나면서 위기가 현실화됐다. 매출감소는 회사의 장려금 축소와 함께 판매 압박을 높였고, 불경기를 정면돌파하려던 그는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의 밀어내기 판매를 계속할 수밖에 없게 됐다.

구 사장은 “동네 슈퍼도 장사가 안 되니까 반품은 쌓이지만, 신선식품 특성상 회사가 받아주는 반품 물량은 정해져 있어 이중의 비용이 들었다”고 말했다. 돈을 주고 상품을 확보했지만, 안 팔리는 물건들이 쌓이면서 구 사장은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

구 사장은 신용보증기금의 운영자금 대출과 친인척 보증도 부족해 사채까지 써가며 버텼지만 얼마 전 최종 부도를 맞고 말았다. 창업자금 2억원에 또 그만큼의 빚을 진 구 사장은 현재 채무조정신청을 한 상태다.

자영업자, 끝 모르는 장기불황에 직격탄 ‘몰락 도미노’

◆자영업자 부채도 많아

통계청에 따르면 7월말 현재 자영업자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19만6천명이 증가, 전체 취업자 증가수 47만명의 41.7%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자영업자 증가 비중은 2011년 8월 10.8%에서 급증해 올해 6월 46.3%에 이어 이달에도 40%선을 연속해 넘겼다. 자영업자에 무급 가족종사자까지 포함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에 따른 자영업자의 비중도 6월 41.9%에 이어 7월엔 절반 수준인 48.3%까지 치솟았다.

대구지역의 7월 현재 자영업주 수는 43만3천명으로 한달새 7천명이 늘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는 1.7% 늘어난 수치다. 자영업주와 무급가족봉사자까지 합치면 그 수는 58만1천명으로 늘어난다.

자영업자수가 크게 증가하면서 은행 개인사업자 대출도 크게 늘었다. 5대 시중은행의 개인사업자 대출 규모는 지난 6월 기준 109조3천227억원에 이른다. 1년전 대출잔액인 96조297억원보다 13.8%, 13조2천930억원이 늘었다. 지난 5월 자영업자가 584만6천명인 점을 감안하면 자영업자 1명당 5대 시중은행에서만 1천870만원씩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소득 대비 금융부채는 일반 직장인이 78.9%인 반면 자영업자는 159.2%에 달한다. 50대 이상 자영업자 대출은 17.5% 급증했다. 여러 금융회사에 빚을 지고 있는 다중 채무자 가운데 자영업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50%를 넘어섰고, 5월말 현재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은 1.17%로 지난해말 0.8%에 비해 크게 치솟았다.

더욱 큰 문제는 영세자영업자들이 크게 늘면서 특정 업종에서의 과열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1인당 국민소득이 비슷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와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는 자영업 부문에서 229만명이 과잉 취업해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특히 경쟁이 과열된 레드오션 산업에서 영세 규모로 사업하는 생계형 자영업자는 2010년 기준으로 169만명인 것으로 추산됐다.

또한 이들의 소득은 국민소득 기준 하위 20%에 속하며 2009년 기준 생계형 자영업 종사자의 개인소득은 707만5천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광석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고연령층을 중심으로 자영업이 증가하는 데다 그들끼리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수익성마저 떨어지고 있다”며 “자영업자 포화 문제는 가계부채와 맞물려 있는 심각한 사안이므로 정부 정책의 초점도 창업이 아닌 재취업 유도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재형 한국개발연구원(KDI) 전문위원은 “영세사업자들은 수입이 절대적으로 적은 데다 수입 증가율도 물가는 물론 국민소득 수준에도 못미치면서 큰 고통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온 가족이 매달려 힘들게 점포를 꾸려가지만 수입은 갈수록 줄어들고 파산의 두려움에 떨어야 하는 것, 대한민국 자영업자들의 현주소다.

이은경기자 lek@yeongnam.com

홍석천기자 hongsc@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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