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잇조각같이 위태하게 선 벽엔 주인공 잃은 그림과 문구

  • 노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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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2-19   |  발행일 2014-02-19 제3면   |  수정 2014-02-19
■ 참사 뒤 현장은…
참사 면한 학생들은 침묵의 긴 귀가 행렬
붕괴 직전…상상도 못했다
종잇조각같이 위태하게 선 벽엔 주인공 잃은 그림과 문구
17일 밤 경주시 양남면 신대리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건물이 붕괴되기 직전 부산외국어대 학생들이 잠시 후 닥칠 참사를 상상도 못한 채 체육관에서 신입생 환영회를 하고 있다. <경북경찰청 제공>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18일 오후 찾아간 경주시 양남면 신대리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주변은 붕괴 당시의 끔찍한 순간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휴양을 위한 조용한 산속 리조트는 생지옥으로 변해 있었다.

한눈에 봐도 약해 보이는 체육관 건물의 중앙부는 폭탄을 맞은 듯 폭삭 내려앉아 있었다. 건물은 브이(V)자 형태로 중앙부가 완전히 함몰돼 푹 꺼진 상태였다.

무너진 지붕 위에는 얼핏 보기에도 엄청난 중량감이 느껴지는 커다란 눈덩이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돌덩이처럼 단단해 보이는 눈덩이로 볼 때 붕괴 당시 새내기 대학생이 느꼈을 공포가 온몸으로 전해졌다.

눈덩이 위로는 참사 이후에도 계속 내린 눈이 5㎝가량 더 쌓여 있었다.

종잇장처럼 구겨진 샌드위치 패널 옆으로는 철골 구조물이 앙상하게 드러났다. 샌드위치 패널을 지탱했던 철골 구조물은 엿가락처럼 휘어져 있었다.

체육관 건물 양쪽 벽면도 형태만 겨우 유지하고 있을 뿐 언제 무너질 지 모를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기울어져 있었다. 벽면은 샌드위치 패널 여러장을 나사로 연결해 만든 것이었다. 30도가량 기울어진 벽면에는 신입생 환영회의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대학생들이 만든 각종 그림과 문구가 붙어 있어 보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 밑으로는 무대공연 시설과 집기들이 무너진 샌드위치 패널 지붕에 깔려 있었다.

출입구 쪽을 비롯해 체육관 벽면 곳곳의 창문 유리창은 모두 깨진 상태였다.

체육관 바깥에는 구조대가 수색작업을 하면서 끄집어 내놓은 물건과 부서진 패널이 그대로 쌓여 있었다. 습기를 한껏 머금은 샌드위치 패널의 유리솜을 만져보니 묵직함이 느껴졌다.

사고 현장 옆에 위치한 숙소에서는 다행히 참사를 모면한 부산외국어대 학생들이 귀가 버스를 타기 위해 어두운 표정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이날 오후 3시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직원들이 현장검증을 벌였다. 현장을 찾은 국과원 본원과 대구연구소, 부산연구소 직원들은 쌓인 눈 때문에 이동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이들은 참사가 난 체육관 건물의 구조를 꼼꼼히 살펴본 뒤 구석구석을 카메라에 담았다. 무너진 체육관 지붕 쪽을 가리키며 심각한 논의가 오고 가기도 했다.

박남규 국과수 법공학부장은 “사고 원인을 밝히기 위해 여러가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증거자료 등을 분석하지 않은 상태여서 아직 섣불리 원인을 추정할 수 없다”며 “이번 사건으로 인한 사회적 파장이 워낙 크기 때문에 객관적이고 정확한 원인이 도출될 수 있도록 시간을 두고 신중히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장에서 만난 원창학 경주경찰서장은 “눈이 계속 와서 현장검증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 다각적인 조사를 통해 명확히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소재를 철저히 가리겠다”고 했다.

봉사단체의 지원도 잇따랐다. 사고 소식을 접하고 이날 오전 11시 현장을 찾은 적십자사 울산지사의 직원과 자원봉사자 10여명은 현장으로 가는 길목에 간이 천막 3동을 마련하고 사고 수습에 나선 119 구조대원, 경찰 등에게 컵라면과 차를 제공했다.

앞서 적십자사 경북지사는 오전 3시쯤 일찌감치 사고 현장을 방문하고 인명구조 및 수색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구호 물자를 실어 날랐다.

경주=노진실기자 know@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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