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영의 포토 바이킹 .22] 대구 건축디자이너 박재봉 선생 건축현장 ‘오마주 라이딩’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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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12-25   |  발행일 2015-12-25 제40면   |  수정 2015-12-25
우리 실내건축의 산 역사…‘동성로의 박전설’은 대구 처처에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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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멋과 아름다움을 창조한 동성로의 박전설 건축디자이너 박재봉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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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준공된 수성구 중동에 위치한 한마음선원 대구지원은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걸작이다. 대법당에 들어서는 순간 그 아름다움에 부처님께 엎드려 큰절하고 싶었다.

연말연시를 맞으니 마음이 바빠집니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진실한 사람이 그리워 포토바이킹 2015년 마지막을 오마주라이딩으로 장식합니다. 그 주인공은 건축 디자이너 박재봉 선생입니다. 1939년생인 선생은 올해 77세 희수년을 맞이했습니다. 제가 박재봉 선생 오마주 라이딩을 마음 먹은 것은 대구·경북에 큰 족적을 남겨 두고도 바람처럼 구름처럼 떠도는 그의 업적을 사회적으로 기록하고 연구했으면 해서입니다. 대구·경북에서 인테리어 업계에 종사하는 분치고 박재봉 선생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으면 족보가 안 삽니다. 문하생은 많은데 진정 선생의 업적을 제대로 기리는 업계 후배는 없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대구·경북과 인연을 맺은 인물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선생은 그 가운데 대구가 가장 잘 나가던 시절의 번영과 영광을 간직한 현대대구의 자부심 코드라고 생각됩니다. 대구를 창조도시로 만들려면 대구시장님이 가장 먼저 찾아봬야 할 분은 건축업자가 아니라 ‘동성로의 박전설’ 박재봉 선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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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앞산 카페거리의 길문을 열었던 카페 갤러리 F&P(FASHION&PASSION)는 현재 DINING YOU(다이닝유)로 바뀌었다. 주인이 바뀌어 영업품목 변경에 따라 인테리어도 확 바뀌었지만 박재봉 선생의 흔적을 완전히 지우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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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금·토요일엔 재즈공연이 열리는 동성로 삼덕소방서 건너편에 위치한 재즈클럽 올드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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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셔터를 누르면 그림이 한점 나오는 범어공원 산책로 입구에 있는 아트리움(199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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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촌 신한리에 있는 선빌리지는 갓바위 요양원에 있는 어머니 문병길에 들렀다.인간과 자연을 최대한 교감하게 하려고 애를 쓴 박재봉풍 건축 철학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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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문을 연 수성구 만촌동 주택가의 전통찻집 다천산방은 교수촌의 터줏대감 노릇을 하고 있다. 제주도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의 간판체와 비슷한 박재봉 선생 캘리그래피가 눈길을 끈다.

박재봉 선생의 건축디자인을 돌아보는 오마주라이딩을 위해 동성로부터 찾았습니다. 평일인데도 인파가 많았습니다. 그가 도시의 미래라고 역설하는 젊은 청춘이 먼저 1979년 대구의 원두커피전문점 시대를 연 ‘늘봄’이 있었던 금곡삼계탕 앞으로 가 보았습니다. 의구한 5층 건물 외관 안으로 빈점포가 보였습니다. 5층짜리 건물 인테리어 시공을 수주해서 3층까지는 직접하고, 4~5층은 비디오 아티스트로 유명한 고 (故) 박현기 선생에게 맡겼다고 했습니다. 경쟁자라고 할 수 있는 분에게 일을 떼주는 건 상식 밖이라고 물었더니 “라이벌과 함께 일을 할 때 더 잘 해보겠다는 의욕이 생겨 좋은 작품을 기대할 수 있다”는 취지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동성로에 가면 어디에 서나 그의 헛기침 소리가 울립니다. 박 선생과 함께 노닐던 공간을 둘러보았습니다. 삼덕성당 뒷골목의 VIN은 버거 가게로, 나를 비롯한 몇몇이 나서서 중구청의 보차도분리공사를 막아내 보행자중심도로가 된 동성5길의 뽕테(PONTE)는 설빙으로, 야시골목의 올드블루는 판타지 주점 간판으로 바꿔 달고 있었습니다. ‘동성로의 박전설’은 사라진 공간들(늘봄, 반줄 등)과 더불어 영원한 추억 속 신화로 남을 것 같습니다.

선생은 어떤 자리에서 제게 “동성로 대구백화점 기준 사방 1㎞ 밖을 변두리라고 생각하며 살았다”는 말씀을 했습니다. 제가 조기축구를 하며 함께 공을 찼던 어떤 광고업계 인사는 박 선생을 ‘동성로의 박전설’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실내건축은 상업공간에서 연출되는 디자인이라 목숨이 길지 못하고, 일시적으로 소비되는 비운의 운명체입니다. 이런 연유로 대부분의 공간은 사라지고 터만 남아 있습니다. 그나마 반월당 화방골목의 풀하우스와 삼덕소방서 건너 올드블루가 원형을 유지하고 있어 다행입니다.


“라이벌과 함께 일할 때 의욕생겨”
일감 경쟁자에 떼준 박재봉 선생
대구경북에서 활동하며
한국인테리어디자이너協 작품상

지금은 사라진 동성로‘늘봄’부터
찻집 같은 실내 분위기 한마음선원
공간 연출의 줄기 잡아준 뉴욕뉴욕
교수촌 전통찻집 다천산방
범어공원 입구의 아트리움
대구 첫 노출시멘트 건축 전상진 패션
와촌 신한리 갓바위농원 선빌리지
실내인테리어 업자 벤치마킹 1순위
나무@906까지 선생 손길 닿은 작품


앞산 남명삼거리에 문을 열었던 패션디자이너 변상일씨의 카페갤러리 F&P(FASHION&PASSION)는 앞산 카페거리 조성의 길목 역할을 했습니다. 2003년엔 ‘남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점포’에 선정되었더군요. F&P는 아메리칸 스타일 레스토랑 ‘튜즈데이 모닝’으로, 현재 DINING YOU(다이닝유) 간판으로 바꿔달고 있었습니다. 주인이 바뀌고 영업 품목이 바뀌면서 디자인 훼손이 불가피했겠지만 박재봉 특유의 핸디환경디자인은 나무와 돌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천장 구조물을 떠받치는 굵직한 원목 프레임은 손을 댈려야 댈 수 없는 불변재(不變材)처럼 매달려 있어 웃음이 나왔습니다. 공간이 생활을 바꿉니다. 여기가 앞산 카페거리 1호점이었음을 알리는 안내판을 새겼으면 좋겠습니다.

DINING YOU(다이닝유)를 둘러보고는 남구청 네거리 박 선생님 사무실을 경유하기 위해 예수성심시녀회 앞 골목을 따라 보데갤러리를 지나 캠프워커로 향했습니다. 주택가에 늘어선 각종 카페, 레스토랑이 눈요기를 해줍니다. 대덕노인복지회관을 거쳐 광덕시장쪽으로 가니 대명로를 만납니다. 영대병원 네거리를 지나 봉덕로를 따라 1㎞ 가면 남구청 네거리. 우회전해서 피쉬그릴 3층에 있는 핸디환경디자인연구소를 한번 우러러보고 중동교로 향합니다.

중동교에서 신천동로 방향으로 조망하면 기와지붕을 한 건물이 눈에 들어옵니다. 한마음선원 대구지원입니다. 이 사찰은 어떻게 박재봉 선생과 인연을 맺었을까요. 상업건축디자인을 해온 선생이 사찰건축에 손을 댄 것은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6년 전 우연찮은 기회에 한마음선원에 공양하러 갔다가 절집보다는 찻집 같은 실내 공간 분위기를 보고 놀랐습니다. 보수공사를 하고 있는 걸 보고 약간의 인연이 있을 것으로 짐작되어 다시 찾아갔습니다. 당시 불사의 건축을 총괄했던 김종구씨(대구불교총연합회 대외협력처장)는 “박재봉 선생이 사찰 내 인테리어디자인을 했다”고 해 심증이 사실로 확인되어 기뻤습니다. 김 처장은 “건축 과정이 즐거운 추억이 되었고, 특히 계단 난간의 손잡이(핸드레일) 제작 과정에서 20개가 넘는 샘플을 만들어오는 꼼꼼함과 집요함에 깜짝 놀랐고, 인간적으로도 큰 감동을 받았다”고 회상했습니다. 핸드레일의 적정 사이즈와 촉감을 잡아내는 열정에 건축주였던 혜계 스님도 대만족을 하고, 공사가 끝나고도 여러 차례 물심양면 감사를 표시하기도 했답니다.

한마음선원 불자가 아니면 법당 안의 아름다움을 볼 기회가 없고, 신자라 하더라도 문화예술적 안목이 없다면 잘 못 느낄 것입니다. 저는 감히 수성구 중동의 한마음선원을 우리시대가 기념할 대구국보 1순위 후보이고 국보를 능가하는 대구문화재라고 생각합니다. 사찰의 내외부가 우리시대의 최선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라 엄지손을 치켜듭니다. 여기에 투입된 건축의 인적 자원만 하더라도 최고 일꾼들이었고, 불사에 임하는 혜계 스님을 비롯한 건축주 측의 마음도 부처님을 향한 자세로 최대한 모시고 베푸는 마음으로 임해 만족스러운 결실을 거두었던 것입니다. 박 선생의 손을 거친 공간들이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 까닭은 건축디자인을 하면서 돈 벌 생각보다는 매 순간 최고의 일꾼과 최선을 다해 일을 했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일부자였던 당신이 돈부자는 아닌 이유를 김 처장의 회고담을 통해 재확인하게 되어 오마주라이딩에 한마음선원 잘 포함시켰구나 싶었습니다. 안 찾아왔더라면 큰 일 날 뻔 했습니다. 한마음선원(http://www.hanmaum.org/daegu)이 궁금하신 분들은 매월 둘째주 일요일 정기법회 때나 금요일마다 열리는 금요요전법회 때를 이용하면 되겠습니다. 최고의 건축은 건축주와 건축가가 하나 되는 과정이라는 것을 한마음선원에서 배우고 기분 좋게 수성못의 뉴욕뉴욕으로 향합니다.

뉴욕뉴욕은 박 선생의 친구이자 동업자인 박세환 사장의 영업장인데, 공간연출의 큰 줄기를 잡아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식장 건축에는 깊이 간여한 것으로 아는데, 역할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뉴욕뉴욕은 강남에 내놓아도 한강이남 소리는 하지 않아도 될 지역명소입니다. 뉴욕뉴욕 박세환 사장과 박재봉 선생의 협업 관계는 대구건축사나 일상의 문화사에서 중요한 연구 포인트일 것입니다.

수성못 바람을 마시며 뉴욕뉴욕을 한 바퀴 도니 선생이 말년에 지은 황금네거리 롯데캐슬5단지 들어가는 입구에 위치한 모퉁이쿠키로 갈 차례입니다. 모퉁이쿠키는 카페에서 시작해 쿠키와 초콜릿 선물로 유명해진 곳인데, 전국에서 최고라고 했습니다. 혹시나 선생님이 마실 오셨나 해서 들러봤는데 역시나 안 계셨습니다. 이효민-성수경 두 사장은 선생님이 정성껏 지어준 집을 잘 지키고 싶은데, 경영 여건상 카페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공방처럼 쓸 수밖에 없어 선생님께 죄송한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박 선생의 진면모는 제자가 잘 되도록 끊임없이 코치를 하는 아스날의 벵거 감독 같았습니다. 우편배달 데드라인에 걸려 정신없는 와중에도 모처럼 들린 박스패밀리라 챙겨주는 정커피 한잔에 선생님과 얽힌 애증담을 맛있게 주워들었습니다. 그래, 갈등해 보지 않고 어떻게 친하다 말할 수 있으리! 여하튼 선생님과 관계된 곳과 인물들은 어디나 최고, 최초, 최선으로 장식되어 있어 흥미롭습니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요.

밤이 깊어져 속도를 내어 교수촌의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은 전통찻집 다천산방으로 향했습니다. 커피대세, 찻집의 몰락 속에도 이 집만은 건재합니다. 1994년에 주택가 집을 개조해 담장을 허물어내고 문을 연 뒤 20년 넘게 한결같이 성업하면서 수성구 만촌동 교수촌 카페골목의 맏형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다천산방의 적정공간 연출 못지않게 정겨운 것은 박 선생의 손글씨체 물씬한 작은 간판입니다. 제주도 올레길의 필수방문 코스인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의 간판체의 형님뻘 됩니다. 크지 않아도 눈에 쏙 들어오는 따스한 간판의 정형이었습니다.

영업 종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다천산방에서는 겉만 돌다 범어공원 입구에 있는 스테이크 하우스 아트리움으로 속도를 냈습니다. 아트리움은 선생님 작품 리스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곳인데, 이곳에 함께 한 적은 없었습니다. 스테이크를 즐기지 않아 내부를 보지 못했습니다만 경영진의 배려로 내부를 감상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장면장면 한 폭의 정물화로 변해 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여기에서도 20년이 지나도 한결같고 100년 세월을 살아내고도 남을 좋은 건축재료들을 만납니다. 언제 이 좋은 곳에서 선생님과 함께 사진 한 장 찍어볼 날이 오면 참 좋겠습니다.

오마주라이딩의 종착역은 운 좋은 날 박 선생을 만날 수도 있는 삼덕동 재즈클럽 올드블루였습니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에 도착하자 빗방울이 쏟아져 도피처인 양 달려갔습니다. 기네스 한 잔을 홀짝홀짝 마시며 특별한 라이딩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이 말고도 26년 전 대구 최초의 노출콘크리트 건축 전상진 패션, 경산 와촌 신한리 갓바위농원의 선빌리지, 실내인테리어 업자의 벤치마킹 1순위 공간인 나무@906 등은 박재봉 선생의 작품입니다. 박재봉 선생 건축공간을 따라 라이딩하는 것만 해도 멋진 대구·경북 일품여행이 될 것입니다.

건축가라기보다는 건축디자이너라고 불리길 바라는 그는 대구·경북에서 활동하며 대한민국 최고상을 수상한 유일한 인물로 기록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1984년엔 제1회 한국인테리어디자이너협회(KOSID) 작품상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때가 선생의 전성기이지 않았을까 합니다. 한국인테리어디자이너협회가 1979년 창립되었습니다. 현재 인테리어 디자인은 실내(장식)를 넘어 건축물 환경, 상업미술 등 포괄적인 디자인을 의미하는 것으로 발전했습니다. 선생은 그 이전부터 인테리어디자인을 해왔으니 한국 실내건축의 산역사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동성로의 박전설은 잘 나가던 대구와 함께 아직 살아 있습니다. 아자, 대구!

인물 갤러리 ‘이끔빛’ 대표 newspd@empas.com

☞ 세부 라이딩 코스

동성로~현대백화점~남산동인쇄골목 상덕사~대명동 물베기마을~삼각지~앞산네거리~앞산 카페거리 다이닝유~캠프워커~남구청 네거리 봉덕동 사무실~중동교~중동 한마음선원~들안길~수성못 뉴욕뉴욕~경일원빌라~모퉁이쿠키~경북고~만촌네거리~교수촌 다천산방~범어공원 아트리움~삼덕소방서 앞 올드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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