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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로닉
호스피스의 시선으로 본 삶과 죽음의 경계
데이비드(팀 로스)는 죽음을 앞둔 환자들을 돌보는 호스피스 간호사다. 다른 간호사들과 달리 헌신적이고 환자들의 삶에 깊숙이 개입한 그는 정작 본인의 삶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대신 자신이 맡은 환자에 따라 아내를 잃은 남편으로, 건축가 형을 그리워하는 동생으로 자신의 삶을 종종 치환한다. 그런 데이비드의 지나친 몰입은 결국 환자 가족들로부터 성희롱으로 고소당하는 사태까지 야기한다. 직장을 잃고 한동안 방황하던 데이비드. 이후 지인의 소개로 다시 호스피스 간호사로 복귀하지만 새로 맡은 환자는 그의 아픈 과거를 이용해 감당하기 힘든 요구를 한다.
“내가 정말 두려운 건 저들한테 의존하는 거야.”
시한부 삶을 살아가고 있는 환자 대부분은 극 중 대사처럼 가족들의 희생에 대해 미안함과 부담감을 갖고 있다. ‘크로닉’은 이를 출발점으로 삼아 죽음보다 더 무거운 삶의 무게를 지고 있는 호스피스 간호사와 그의 이야기를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통찰의 시간을 마련한다. 연출을 맡은 미셸 프랑코 감독의 할머니와 그녀를 돌보던 호스피스 간호사의 실제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았다.
영화는 시작부터 강렬하다. 카메라는 타이틀 시퀀스 이후 7분 동안 아무런 대사나 극적 효과 없이 그저 묵묵히 일하는 데이비드의 행동을 따라간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시선이 멈춰진 건 부러질 듯 앙상하게 마른 한 여인의 육체를 조심스럽게 씻기고 옷을 입히는 과정을 능숙하게 해내는 데이비드의 모습이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에이즈 말기 환자인 세라를 지극 정성으로 돌보는 이 모습은 아름답고 숭고해 보이기까지 하다. 이는 시한부 환자들이 존엄과 품위를 지키며 삶을 끝맺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호스피스 간호사로서 데이비드의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실제 감독의 할머니와 간병인 이야기 모티브
97컷으로 채운 러닝타임 94분 ‘롱테이크 美學’
또다른 문제 제기의 충격적인 결말 진한 여운
데이비드에게 죽음과 상실은 늘 가깝게 마주해 있다. 어찌보면 그의 삶 대부분은 타인의 죽음들로 채워진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죽음 앞에 신체 기능이 저하된 환자들은 가족보다 생판 남인 데이비드에게 마음을 연다. 그의 놀라운 헌신과 진정성에 자신의 치부를 거리낌없이 드러낸다. 에이즈에 걸린 세라도, 반신불수의 절망감을 포르노로 달래는 건축가 존도, 60대 암환자 마사도 그렇다. 그렇게 데이비드는 환자의 가족보다 더 가까운 위치에서 죽음의 전 과정을 지켜보고 그들의 삶에 깊이 개입한다.
마주하기 쉽지 않은 소재와 이야기지만 영화는 별다른 장치나 기교 없이 영화가 말하고자 한 의도를 향해 묵묵히 밀고 나간다. 단순하고 간결하지만 울림은 크다. 러닝타임은 총 94분, 전체 컷 역시 97개이다. 한 컷당 평균 1분씩을 사용했다는 얘기인데, 카메라는 음악도 배제한 채 관객과 영화 속 인물들 사이의 거리감을 유지하며 정적인 롱테이크 촬영 기법으로 이를 담아냈다. 덕분에 삶과 죽음의 경계가 주는 묵직함, 환자들의 고통, 데이비드의 희생 정신은 어떤 것에도 방해 받지 않고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크로닉’ 출연을 자청했을 만큼 영화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의지를 보인 팀 로스의 존재감은 단연 돋보인다. 그는 데이비드가 지닌 이타적 모습과 병적인 측면을 시종 균형감있게 표현해냈다. 특히 충격적인 결말은 삶과 죽음에 대한 심오한 질문을 던지며 오래도록 잔상을 남긴다.(장르:드라마 등급:15세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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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츠맨:윈터스 워
동화 ‘백설공주’ 재해석 판타지 블록버스터
영원한 아름다움과 끝없는 권력의 욕망에 사로잡힌 이블 퀸 레베나(샤를리즈 테론)는 절대악의 힘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건설하려 한다. 그녀에겐 순수한 사랑을 믿는 여동생 프레야(에밀리 블런트)가 있다. 하지만 욕망에 눈이 멀어 동생 모르게 그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이 모든 것이 사랑을 믿은 자신의 탓이라고 여긴 프레야는 고통과 슬픔이 수반되는 과정에서 겨울을 지배하는 아이스 퀸으로서의 엄청난 능력을 발견하게 되고, 자신의 심장처럼 차가운 겨울왕국을 건설한다. 이후 사랑을 사악한 것이라고 간주한 프레야는 이를 세상에서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 아이들을 납치해 최강의 전사인 헌츠맨으로 키운다. 하지만 헌츠맨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전사 에릭(크리스 헴스워스)과 사라(제시카 채스테인)는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아이스 퀸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는다.
‘헌츠맨:윈터스 워’는 유니버설 픽처스가 3부작으로 기획한 ‘스노우 화이트 앤 헌츠맨’(2012)의 스핀오프다. 하지만 내용상으로는 프리퀄과 시퀄, 둘 다 포함하고 있다. 일단 바뀐 제목처럼 전작의 주인공이었던 스노우 화이트(크리스틴 스튜어트)가 퇴장하고, 그 빈자리를 에릭을 중심으로 한 영웅 서사로 새롭게 꾸몄다. 관객이 기대하는 포인트 역시 ‘백설공주’에서 모티브를 따온 ‘헌츠맨:윈터스 워’가 전편에 이어 그림 형제 동화의 저변에 깔려 있는 어둡고 잔혹한 정서를 어떻게 성공적으로 담아냈을까 하는 것이다.
3부작 ‘스노우 화이트 앤 헌츠맨’의 스핀오프
이블 퀸 vs 아이스 퀸 자매의 운명적 전쟁 그려
엉성한 서사구조로 키워드인 사랑 부각 실패
일단 영화는 전편의 기괴하고 음산한 기운을 내뿜는 어두운 숲과는 달리 좀 더 밝아진 분위기의 색채와 미장센으로 시선을 확보한다.
일찌감치 거세된 백마 탄 왕자와의 로맨스, 난쟁이조차 공주를 적으로 인식했던 전편의 지향점이 왕국을 되찾으려는 영웅적인 활약상에 있었다면, ‘헌츠맨:윈터스 워’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사랑’이다.
단호하게 “사랑은 동화에서나 나오는 것”이라고 말하는 레베나를 제외하면, 에릭과 사라, 프레야는 사랑 때문에 늘 상처받고 갈등한다. 대규모 전투 신과 CG로 점철된 화려한 볼거리로 물량공세를 펼쳤던 전편과 비교해도 ‘헌츠맨:윈터스 워’ 에서 감지되는 주된 정서는 네 캐릭터의 다층적인 심리와 감정변화이다.
하지만 사랑에 대한 그들의 이야기는 관객과의 접점을 찾는데 실패한다.
볼거리 위주의 판타지 블록버스터임을 감안하더라도 서사 구조가 너무 허술해 왠지 허공에 떠있다는 느낌이다. 더욱 아쉬운 건 현재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배우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샤를리즈 테론, 에밀리 블런트, 제시카 채스테인, 그리고 크리스 헴스워스를 캐스팅 하고도 이런 결과물을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그들의 불꽃 튀는 연기대결을 기대했던 관객들이라면 적잖이 실망할 듯하다. 3편에선 좀 더 고민한 흔적이 보여지길 기대한다.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의 시각 효과를 담당했던 세딕 니콜라스 트로얀이 연출을 맡았다.(장르:판타지 등급:12세 관람가)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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