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직무 수행과 권력 유지를 위한 두 축인 김현웅 법무부 장관과 최재경 청와대 민정수석이 23일 ‘최순실 게이트’ 정국에서 동시에 사의를 표명한 것을 놓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일단 박근혜 대통령을 ‘피의자’로 전환한 검찰 수사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에서 두 사람이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보고 있다. 23일 청와대에 따르면 김 장관과 최 수석이 사의를 표명한 것은 지난 21일쯤이다. 검찰이 최씨의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박 대통령을 ‘공범’으로 보고 피의자 신분으로 입건키로 한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한 바로 다음날이다.
김 장관 “현상황서 사직이 도리”
최 수석 “제 기능·역할 못했다”
檢에 대한 압박용 해석도 나와
예상 깨고 사표 수리 결정하면
권력내부 붕괴 신호탄 될 수도
당시 청와대는 박 대통령에 대한 직접 조사도 없이 검찰이 일방적으로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며 격앙된 분위기였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이 “인격살인” “상상과 추측을 거듭해서 지은 사상누각” “검찰의 성급하고 무리한 수사결과 발표”라며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따라서 김 장관과 최 수석의 동반사의 표명은 바로 이 같은 문제 인식의 결과라는 해석이다.
실제로 최 수석은 사의표명과 관련해 “지난 21일 밤 법무부 장관의 사의가 전달돼 고민을 했다”며 “청와대 민정수석의 역할이 사정을 총괄하면서 대통령을 올바르게 보필해야 하는데, 제대로 기능과 역할을 못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남들은 청와대가 불타는 수레라고 빨리 나오라고 하지만, 그런 이유로 사의를 표한 것은 아니다”며 “당초 관직에 대한 욕심으로 청와대에 들어간 것도 아니다. 어려울 때 국가가 호출하면 부름에 응답하는 게 공직자의 도리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법무부는 이날 “김 장관은 지금의 상황에서는 사직하는 게 도리라고 생각해 21일 사의를 표명했다”고만 밝혔다.
두 사람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정치권 안팎에서는 박 대통령 측과 검찰 사이에 조성된 대치 국면에 대한 부담이 작용했다는 해석도 내놓고 있다. 검찰이 대면 조사 없이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이에 반발한 박 대통령 측이 검찰 조사 자체를 거부하면서 검찰을 지휘하는 법무장관과 사정라인 컨트롤타워인 민정수석의 입장도 난처해졌다는 것이다. 더욱이 최 수석의 경우 검사 재직 시절 후배들로부터 신망이 두터웠던 인물이어서 그 부담이 더욱 컸을 것이란 관측이다.
이와 함께 검찰이 박 대통령을 향해 연일 대면조사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 주목, 두 사람의 사표가 검찰에 대한 항의 차원이자 압박용이란 분석도 나온다. 검찰이 법무부에 최순실 게이트 관련 수사 내용을 일절 보고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 대해 김 장관은 강한 불만을 가져온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두 사람의 사의 표명 의도와는 별개로 박 대통령이 실제로 사표를 수리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많다. 현재로서는 법무부 장관과 민정수석 모두 현 정국에서 후임 인선이 쉽지 않은 데다 법무부 장관의 경우 ‘여소야대’ 국회에서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한다는 점 등이 박 대통령으로선 부담이다.
물론 관측과 달리 박 대통령이 김 장관과 최 수석에 대한 사표를 모두 전격적으로 수리할 경우 상황은 급전될 것으로 보인다. 표면적인 사표 제출의 이유와는 달리 박 대통령을 향한 정치권의 탄핵과 여론의 퇴진 요구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해 권력의 두 축이 쓰러지는 것이라면, 청와대 장악 문제나 대통령 입지와도 연결되면서 권력의 내부 붕괴로도 이어질 수 있는 위험 신호다. 자칫하면 특검과 탄핵정국을 앞두고 박 대통령이 홀로 싸워야 하는 형국이 전개될 수도 있다.
이영란기자 yrlee@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