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 예방적 살처분 “그게 최선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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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2-16   |  발행일 2017-02-16 제30면   |  수정 2017-02-16
20170216
안혜련 (참문화사회연구소 대표)

가축질병 차단용이라지만
살아있는 생명 묻는 살처분
생명 학대, 환경오염 유발
정부 가축질병 선진화 계획
동물복지 문제 함께 고려를


집 근처 생협에서 장을 보았다. 거의 매일 식탁에 올리던 ‘계란님’과 ‘치킨님’을 조류인플루엔자(AI) 때문에 한동안 외면하면서, 가끔 먹어줘야 기운이 나는 ‘남의 살’을 찾아 소고기와 돼지고기 코너를 기웃거렸다. 어지간한 잘못은 ‘이것 사줄게’라는 말로 용서되는 한우가 할인판매 중이었다. 곧 값이 오를 테니 여유있게 사두라는 매장 직원의 친절한 조언에 별 생각 없이 장바구니에 세 팩을 담았고 돼지고기도 두 팩을 담았다. 세일한다고 너무 많이 산 것 아닌가라는 반성의 마음이 들 때쯤 구제역이 발생해 축산 농가에 불안심리가 퍼지고 있다는 뉴스를 보게 되었다.

지난 5일 처음 구제역 의심신고가 접수된 후 1주일 만에 살처분된 소가 1천203마리에 이르며, 특히 돼지는 구제역에 걸리면 공기 중으로 배출하는 바이러스양이 소보다 최대 1천배가량 많아 더 불안하다는 내용이었다.

‘살처분’이라는 살벌하고도 낯선 단어를 듣게 된 것이 그리 오래전은 아닌 것 같다. 방송에서 포대에 담긴 짐승들이 대량으로 매몰되는 장면을 가끔 보기는 했으나 흰 보호복을 입은 사람들이 믿음직스러웠고 전문가들이 알아서 잘하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대량 살처분된 과정에서 포대를 뚫고 살아나온 닭들의 모습을 본 순간, 구제역으로 가축이 대량 매몰된 현장의 ‘3년 후’ 기사와 사진들을 본 후 가축 전염병 이야기만 나오면 당연히 따라 나오는 살처분이란 말에 예민해졌다. 도대체 ‘살아있는 생명을 이렇게 대해도 되나’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살처분(stamping out)’이란 ‘가축의 법정전염병 중 특히 심한 전염성 질병을 방지하기 위해 실시하는 예방법의 일종으로 감염 및 접촉한 동물, 동일 축사의 동물 등을 죽여서 처분하는 것’이다. AI의 경우 발생 지점 주변 3㎞ 농가에 대해 획일적으로 ‘예방적 살처분’이 시행된다고 한다. 더 많은 희생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는 하지만 문제는 이 예방적 살처분이란 것이 살아있는 생명을 대량 학살하는 것에 가깝다는 것이다. 아직 병에 걸리지 않은 멀쩡한 오리와 닭을 환풍기를 틀지 않아 죽게 만들고, 돼지·소들을 불도저로 밀고가 미리 파놓은 구덩이에 쓸어 넣은 뒤 울부짖는 동물들 위로 흙을 덮어 버리는 것이 살처분의 내용과 과정이다.

현재 정부는 저렴하게 육류와 달걀을 공급하기 위해 대량 생산이 가능한 공장식 축산 지원정책을 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공장식 밀집사육이 반복되는 게 가축 전염병의 한 원인이라고 본다. 가축들의 면역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어 병원균에 쉽게 전염되고 그 전파 속도도 빠르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수차례의 경험을 통해 이런 사육 방식이 전혀 경제적이지도 환경적이지도 윤리적이지도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피해 농가에 대한 막대한 보상금 지급, 가축 매몰로 인한 2차 환경오염, 생명학대 논란 등의 결과지를 받아들었기 때문이다.

최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AI와 구제역 방역시스템 체계를 재점검해 ‘가축질병 선진화 종합계획’을 마련하겠다고 하는데, 주로 유통 개선, 방역 체계, 살처분 시스템 등에 집중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정책에 더해 가축의 사육 환경, 살아있는 생명을 존중하는 동물복지 문제를 함께 고려해 주었으면 한다. 동물복지는 생명윤리문제뿐만 아니라 가축전염병 예방을 위한 항생제 남용 문제로 우리 건강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2009년 화제가 되었던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에서 노인과 소는 30년을 동고동락했다. 한 끼 맛난 식사를 위해 30년도 살 수 있는 소에게 겨우 2∼3년 만의 생을 허락하면서 우리는 그 삶조차 지극히 모질게 대하고 있다. 우리에게 과연 그럴 권리가 있을까? 안혜련 (참문화사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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