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九曲기행 .14] 안강 옥산구곡(下)...관어대 위엔 독락당 계정…숲·바위·맑은물 어울러진 ‘仙界’

  • 김봉규
  • |
  • 입력 2018-02-22 07:47  |  수정 2021-07-06 15:03  |  발행일 2018-02-22 제24면
이언적 ‘독락’‘계정’ 詩로 노래
7곡 징심대
맑고 차가운 물 쉼없이 흘러들어
자신의 도심 지닐 수 있도록 다짐
20180222
오곡 관어대에 자리한 계정과 주변 풍광. 계정은 이언적이 42세 때 자옥산 아래 지어 거처로 삼았던 독락당에 딸린 정자다.

‘사곡이라 원천이고 태암이니(四曲原泉又泰巖)/ 학전은 어느 때 봉황의 모습이었나(鶴何日鳳儀)/ 적은 물이 바다에 이르는 천리 길에(涓到海心千里上)/ 시냇물은 밤낮으로 빈 못으로 들어가네(晝夜川流入空潭)’

4곡 공간(孔澗)을 노래하고 있다. 공간은 세심대에서 조금 올라가면 나오는데, 구멍이 난 바위가 많은 시내라는 의미다. 이 시를 이해하려면 ‘맹자’의 글이 필요하다.

‘근원이 좋은 샘물은 용솟음쳐 흘러 밤낮으로 그치지 않아, 파인 웅덩이를 가득 채우고 난 뒤에 넘쳐흘러 나아가 바다에 이른다. 학문의 길에 근본이 있음은 이와 같으므로 이것을 취한 것이다(原泉混混 不舍晝夜 盈科而後進 放乎四海 有本者如是 是之取爾).’

‘물을 보는 데는 방법이 있으니, 반드시 그 여울목을 보아야 한다. 해와 달은 밝음이 있으니 빛을 용납하는 곳은 반드시 비추는 것이다. 흐르는 물은 웅덩이가 차지 않으면 흘러가지 않는다. 군자가 도를 추구함에도 문장을 이루지 않으면 통달하지 못한다(觀水有術 必觀其瀾 日月有明 容光必照焉 流水之爲物也 不盈科不行 君子之志於道也 不成章不達).’

이가순은 이곳에서 밤낮으로 그치지 않고 웅덩이를 채우고 나서야 넘쳐흘러 바다로 나아가는, 근원이 좋은 물처럼 학문을 성취하고 도를 이루려는 뜻을 다지고 있다.

5곡 관어대
물고기 바라보며 즐거움 깨달아
이언적 ‘독락’‘계정’ 詩로 노래

7곡 징심대
맑고 차가운 물 쉼없이 흘러들어
자신의 도심 지닐 수 있도록 다짐


◆오곡 관어대에 자리한 계정(溪亭)

‘오곡이라 시냇가 정자는 경계가 더욱 깊어(五曲溪亭境更深)/ 꽃에 물 주고 대나무 기르니 원림이 풍성하네(花剖竹園林)/ 종일토록 관어대에서 물고기의 즐거움 깨달으니(臨臺永日知魚樂)/ 활발한 천기는 성인의 마음과 계합하네(活潑天機契聖心)’

5곡 관어대는 계정이 자리한 암반이다. 독락당에 딸린 정자가 계정이다. 물고기를 바라보는 누대라는 의미의 관어대 위에 계정이 서 있다. 관어대 앞으로는 맑은 물이 천천히 흐르면서 제법 넓은 못을 이룬다. 숲과 바위, 맑은 물이 어울려 선계를 떠올리게 한다. 이언적은 이곳을 ‘관어대’라 이름 짓고 계정을 지어 물고기를 바라보며 도를 닦았을 것이다.

이언적이 지은 시 ‘독락(獨樂)’이다.

‘무리를 떠나 누구와 함께 읊조릴까(離群誰與共吟壇)/ 바위 위의 새와 시내의 물고기는 내 얼굴을 익히 아네(巖鳥溪魚慣我顔)/ 그 가운데 빼어난 곳 알고자 하니(欲識箇中奇絶處)/ 자규새 소리 속에 달이 산을 엿보네(子規聲裏月窺山)’

이언적은 정자를 읊은 시 ‘계정(溪亭)’에서는 이렇게 노래한다.

‘숲 곁에서 우는 그윽한 새 소리 기쁘게 들으며(喜聞幽鳥傍林啼)/ 새로 띠집을 작은 시내 옆에 지어(新構茅壓小溪)/ 홀로 술 마시며 다만 밝은 달 맞아 짝하니(獨酌只激明月伴)/ 한 칸에 오로지 흰 구름과 함께 깃드네(一間聊共白雲棲)’

이가순은 관어대에서 이곳에서 노닐던 이언적의 경지를 그려보고 있다.

‘육곡이라 떨어지는 한 굽이 맑은 물결이여(六曲懸流玉一灣)/ 맑은 하늘 우레와 날리는 우박 솔숲을 뒤덮네(晴雷飛雹掩松關)/ 동천은 속세와 멀리 떨어져 있어(洞天逈與人煙隔)/ 태극서 이뤄지고 일월이 한가하네(太極書性日月閑)’

6곡 폭포암을 노래하고 있는데, 지금은 이런 모습을 그려보기 어려운 환경이다. 이가순은 인간세상을 떠난 것 같았던 이곳에서 한가한 자연의 이치가 드러남을 읊고 있다.

◆칠곡은 마음을 깨끗이 하는 징심대

‘칠곡이라 징심대는 푸른 여울에 비치고(七曲澄臺映碧灘)/ 신령스러운 근원 한 점 거울 속에 보이네(靈源一點鏡中看)/ 하늘과 구름은 밤낮으로 참다운 모습이니(天雲日夜眞光景)/ 작은 못에 차가운 활수가 더해지네(添得方塘活水寒)’

7곡 징심대에서는 맑고 차가운 물이 쉼 없이 흘러들어 시내가 맑은 것과 같이 자신도 쉼 없는 활수, 즉 도심을 지닐 수 있도록 다짐하고 있다.

이언적도 이곳에서 맑은 물을 내려다보며 자신의 마음을 깨끗이 할 수 있었기에 ‘징심대’라 이름을 지었을 것이다.

‘팔곡이라 차가운 못은 바위 안고 흐르니(八曲寒潭抱石開)/ 티끌 묻은 갓끈 다 씻고 물길 따라 도네(塵纓濯盡任沿)/ 내게 베풀어진 광명 다함이 없는데(光明惠我垂無極)/ 묘처를 누가 능히 체험하리(妙處誰能體驗來)’

8곡 탁영대는 시내 양쪽에 바위가 마주하고 있는 굽이다. 시내가 바위 때문에 좁아지고 두 바위 사이로 시냇물이 완만하게 흘러간다. 한쪽 바위 위에는 사람들이 머물 수 있는 넓은 공간이 있다. 이가순은 탁영대에서 하늘이 베풀어준 광명, 밝은 덕을 밝혀 묘처(妙處)에 이르고자 하였다.

탁영(濁纓)은 중국 춘추전국시대 시인이자 정치가인 굴원의 ‘어부사(漁父辭)’ 중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을 것이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을 것이다(滄浪之水淸兮 可以濁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라는 구절에서 유래한다.

옥산십사영(玉山十四詠)을 읊은 소재 노수신은 이 탁영대에서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이 물은 원래 절로 맑고(此水元自淸)/ 이 마음 원래 절로 밝네(此心元自明/ 맑음과 밝음 날로 서로 비추니(淸明日相映)/ 외물은 티끌 묻은 갓끈이네(外物是塵纓)’

‘구곡이라 산 높고 땅은 경계가 분명하니(九曲山高地截然)/ 복사꽃 눈에 가득하고 해오라기 냇가에 졸고 있네(桃花滿眼鷺眠川)/ 신령한 사자 한 번 울어 뭇 생명 놀라게 하여(靈獅一吼驚群蟄)/ 만고의 혼돈 세계를 거듭 연다네(重闢渾淪萬古天)’

9곡 사암은 옥산구곡의 마지막 굽이인 극처이다. 복사꽃이 가득 피어있고 해오라기는 시내에서 졸고 있다며 신선 세계인 것같이 표현하고 있다. 사자의 포효가 혼돈의 세계를 새롭게 열듯, 성리학의 도가 널리 퍼져 태평한 세상이 펼쳐지기를 희망했다.

사암(獅巖: 사자바위)은 옥산 저수지 왼쪽 수구(水口) 부분에 있는 바위다. 지금은 저수지 축조 과정에서 많이 파괴된 상태다. 사암 맞은편에 호암(虎巖)이 있다. 옛날 호암 부근에 호랑이가 자주 출몰해 사람들을 해쳤는데, 이언적 선생이 맞은편 바위를 사자바위라고 명명한 뒤 호랑이가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는 전설이 전하고 있다.

글·사진=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기자 이미지

김봉규 기자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