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재학 시인은 새 시집 '습이거나 스페인'에서 "분명한 생(生)과 분명하지 않은 생 사이"를 끊임없이 들여다본다. <본인 제공>
송재학 시인은 새 시집 '습이거나 스페인'(문학과지성사)에서 그간 자신을 따라다닌 '애매성의 공간'을 되짚는다. 이를테면 습에서 스페인이라는 음차 사이에 존재하는 장소성이 바로 알지 못할 생의 한 요소란 것을 보여준다. "시 쓰기는 진실이라는 견고함의 성채인 육체"라고 말하는 시인은 이번 시집을 통해 "분명한 생(生)과 분명하지 않은 생 사이"를 끊임없이 들여다본다. 그와 이번 시집에 대한 이야기를 더 나눴다.
'또한 목발뼈 발배뼈 입방뼈 쐐기뼈라는 순롓길을 짚으면서 스페인을 다녀온 뒤 한동안 비에 젖거나 비를 찾아다닌 꿈이 나를 간섭했습니다 아침마다 복용하는 약병의 라벨을 뜯어내니까 다른 라벨이 숨어 있습니다 문득 내 이름이 지명이거나 당신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짐작을 합니다'(습이거나 스페인 중)
▶표제시의 제목(습이거나 스페인)이 상당히 낯설고도 흥미롭게 다가온다. '습'과 '스페인'이 병치된 배경은.
"'습이거나 스페인'에 등장한 화자의 이름이면서 배경 물질인 '습'은 시에서 달콤씁쓸한 비애의 역할을 한다. 습은 습지의 습이면서도 물들다는 의미의 습이다. 내가 가진 어두운 부분은 모두 저러한 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기와 습지의 이미지를 간직하면서 번짐의 생활력을 품고 있는 습이 왜 하필 스페인을 동행으로 삼았을까. 아마도 관습적인 언어의 버릇(민감하고 예민한)이 스페인이라는 어휘를 추천하지 않았을까. '습이거나'에서 '스페인'까지의 음차라는 습관은 먼 이베리아 반도의 장소성과도 겹친다. 습이 스페인이라는 지리와 시간까지 번졌다고 변명한다. 어쩌면 멀고 먼 장소인 스페인은 습의 모서리이면서 가운데라고 지레짐작한 듯하다."
▶감각주의자란 평을 받는다. 남들이 보고 듣고 느끼지 못하는 것들을 체험하려는 사람이라 생각된다. 이번 시집에서 이런 태도가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은.
"아직 나는 놀라운 삶에 더 매혹돼 있다. 그 매혹으로 떠미는 것은 감각이다. 그런 감각에 붙잡힌 졸시 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누에 암나방은 다섯 번째 탈피를 마치면 알을 낳은 뒤 입이 퇴화되어 점차 먹지 못해 죽는다 누에 암나방은 태어날 때 이미 눈이 없다"(어떤 입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라는 시집 두 번째의 시편이다. 누에 암나방으로는 평범하고 현실적인 생존방식이 우리의 시선으로는 끔찍하고 비범한 생존 방식이다. 평범과 비범이 한 장소에서 나뉘어지는 이 공간성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 공간에는 인간이 느낄 쾌락은 조금도 존재하지 않는다. 저는 감각의 방식으로 그 공간성을 가두고 수용한다. 그러면서 그 공간성이 나와 연결된 확장이라는 전율을 느낀다."

습이거나 스페인/송재학 지음/문학과지성사/108쪽/1만2천원
▶"너무 오래 지상에 붙잡혔기에 시들고 마는 생에 반발하여"(잎새의 물갈퀴) 등에서 '죽어가는 것'을 탐구하는 태도가 엿보인다.
"정령주의자이면서 범신론자인 제게 죽음은 졸시의 구절을 빌리자면 '지구에서 나는 소멸되고 정신의 복사열만이 이곳으로 옮겨와서 생을 반복하고 있다 무엇이 나를 이곳으로 보냈는가는 나를 지구로 보냈던 약속과 다를 바 없다 광활하다는 우주의 넓이와 깊이는 늘 익숙하고도 으스스하다 생은 시공을 다시 삼키면서 반복하는 것이다(가니메데라는 궤도)'처럼 다시 생의 연장이자 반복이다. 그것이 에너지이거나 윤회이거나 섭리를 따라가는 우주의 되새김질 같은 종류이기에 저는 자연의 순환론자다."
▶"어떤 별로 돌아가라는 우울의 간격, 나는 떠나야 하네"(푸른 별) 등에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려는 다짐도 느껴진다.
"나의 시 쓰기는 새롭고 낯선 것을 짐승으로 규정하고 그 짐승에 대한 탐구생활이었다. 언어나 감각뿐만 아니라 생이라는 서사를 통해서 보아왔던 매혹이 성립하려면 새로움이 중요하다고 짐작한다. 따라서 세계가 나에게 부여한 감각을 언어로 바꿀 수 있는 힘이 끝나는 시간이 온다면 그때는 단호하게 시를 쓰지 않을 것이다. 여진문자비에서 발견한 '푸치히'(부처) 같은 신비한 감성을 만난다면 언제든 작업할 수 있겠다만."

조현희
문화부 조현희 기자입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