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현숙의 전통음식이야기] 미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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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21   |  발행일 2018-03-21 제30면   |  수정 2018-03-21
[권현숙의 전통음식이야기] 미나리
미나리
[권현숙의 전통음식이야기] 미나리
전통음식전문가

봄이 조금씩 시작되고 있다. 이맘때쯤 청도 한재, 팔공산 일대에는 ‘청정 미나리’ ‘미나리 - 삼겹살’이란 현수막이 곳곳에 나붙는다. 주말이면 독특한 향의 미나리를 맛보기 위해 도로가 복잡해진다. 삼겹살과 미나리가 환상의 조합을 이루어 대구 동구 5미(味)로 선정됐다.

예로부터 미나리는 우리나라 사람의 입맛에 잘 맞았다. 고려 시대, 조선 시대에는 미나리가 흔했다는 기록이 여러 곳에 있다. 조선 성종 때의 ‘해동역사’에는 명나라 사신 동월이가 “조선의 왕도 한양이나 개성에는 집집마다 연못에 미나리를 심어놓았다”고 말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에는 배추가 널리 보급되지 않은 시절이라 추울 때는 무김치, 봄에는 미나리 김치를 먹었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세종 때 제사를 모실 상에는 미나리 김치를 둘째 줄에 놓아야 한다’는 대목이 나온다. 당시 미나리는 중요한 대접을 받아왔음은 물론 더 큰 상징성이 있었다고 한다. 미나리는 사대부에게는 충성과 정성의 표상이며 학문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조선 시대에는 성균관에서 공부하는 것을 채근(采芹)이라 했는데 채근은 미나리를 뜯는다는 뜻으로 나라의 훌륭한 동량을 발굴해서 키운다는 의미로 생각해왔다.

옛 속담에 ‘처갓집 세배는 미나리 강회를 먹을 때 간다’고 할 정도로 봄 미나리가 맛있다는 뜻이다. 예전에는 미나리를 키우는 곳을 미나리꽝이라고 했다. 더러운 물에서도 잘 자라고 습지 정화능력이 뛰어났으나 거머리가 많아서 다듬기 꺼려 하는 채소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는 “미나리는 눈 맑은 사람이 다듬어야 하고 씻을 때 놋그릇에 넣어 거머리를 떨어지게 하여 일일이 골라 씻으라”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언양 미나리가 임금님의 진상품에도 포함됐다고 했다. 최영년이 쓴 ‘해동죽지’에는 전국 미나리 중 남원 미나리가 최고라고 기록했다.

미나리의 ‘근채삼덕’이란 말이 있다. 속세를 상징하는 더러운 물속에서 때가 묻지 않고 깨끗하고 싱싱하게 자라는 굳건한 심지, 음지라는 악조건을 극복하는 지혜, 가뭄에도 푸름을 잃지 않는 강인함이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는 정성을 많이 들인 미나리나물을 소개하면서 지나친 음식을 경계한다. “대개 음식은 담박해도 깨끗하면 먹는 것이지만 결단코 사치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적혀 있다.

미나리는 다른 채소에 비해 독특한 향기와 풍미가 있어 봄철에 입맛을 되살리는 데 좋다. 비타민B군 등이 풍부해 춘곤증을 없애는 데 좋다. 주위에 흔한 미나리가 예부터 우리 조상들로부터 귀한 채소로 대접받아 왔던 점을 되새기며 미나리로 활기찬 봄을 맞이해보는 것이 어떨까. 전통음식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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