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빚는 사람들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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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9-21   |  발행일 2018-09-21 제33면   |  수정 2018-09-21
매천·서문·칠성 3대시장 명절 대목 장사
차례·간식 겸용 만두·찐빵·포장떡 인기
대구 추석송편, 달모양 아닌 손송편 대세
1인가족 시대…반려견 위한 선물도 등장
20180921
남문시장 경남떡집 김정숙 사장이 송편을 빚고 있다. 송편은 일견 단순해 보이지만 오랜 추억을 간직한 추석의 대명사. 대구는 달모양이 아니라 그냥 손모양을 탁본처럼 새겨내는 게 특징이다.

추석(秋夕).

보름달이 음력 하늘의 복판을 파고드는 절기. 온갖 농작물도 수확기에 든다. 곡식과 과일은 이 무렵 절정의 품새를 갖추게 된다. 농번기에서 농한기로 터닝하는 절기. 농부에겐 ‘행복절정’인 순간.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시절의 명절은 사실 농사의 ‘꽃’. 하지만 농부는 그 수확물을 절대 자신의 몫으로 돌리지 않고 ‘천지의 몫’이라 여긴다. 모두 수확하지 않고 까치밥 정도는 남겨둔다. ‘더불어삶’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가난이 일상이었던 그 시절에 명절은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집성촌은 일제히 한해 농사의 말미를 정리하면서 ‘한국식 추수감사절’을 봉행할 준비를 한다. 그게 바로 명절 ‘차례(茶禮)’다.

오곡백과(五穀百果). 이건 하늘과 땅, 천지가 공모해서 잉태해낸 생명의 원천이다. 천지와 한몸이라 여겼던 선조들, 특히 한 가문의 권위를 지켜내려했던 가부장이 추석에 임하는 자세는 각별할 수밖에 없다. 추석은 한해 농사를 결산하는 동민의 동제(洞祭)이자 문중의 가례(家禮)였다.

하지만 추석문화도 세월한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 시절 추석이 아니다. 남존여비가 아니라 여존남비 세상이기에 추석풍속도도 여성 위주로 굴러간다. 예전엔 조상과 문중이 ‘갑’이었다. 그 앞에서 개인은 설 자리가 거의 없었다. 이젠 아니다. 가족, 아니 자신이 갑이다. 합리적 의견을 중재해낼 수 있는 가부장이 실종된 세월이다.

누군 ‘이젠 추석보다 스마트폰과 반려견이 풍요와 위안의 원천’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이미 핵가족도 넘어선 시절이다. 도처에 독신자와 실업자가 있다. 그런 혼밥시절, 반려견이 최상위 포식자로 등장했다. 백화점에 반려견 선물코너까지 등장했다.

누군 추석이 신나는 건 명절이 아니라 연휴 때문이라 했다. 이동식 차례상을 들고 명절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그들을 위한 간편식 제기와 차례상도 인기다. 차례음식 준비에 기겁한 며느리를 겨냥한 대형할인매장 차례음식마케팅이 포문을 열기 시작했다.

아무튼 명절분위기는 역시 전통시장에서부터 온다. 매천시장, 서문시장, 칠성시장. 대구 차례용품 3대 공급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천시장은 채소류, 건어물은 단연 서문시장이 독점적 지위를 점하고 있다. 칠성시장은 과일 등 청과류 대목에서 상당한 파워를 자랑한다.

‘추억의 떡’을 찾아 남문시장을 방문했다. 남문시장은 자동차용품거리, 남산동 인쇄골목, 그리고 보쌈골목 등에 둘러싸여 있다. 바로 지척에 대구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탑마트가 신축돼 시장상권을 압박 중이다. 1970년대 대구 대표 카바레로 불렸던 남남카바레. 지금은 페인트칠이 다 벗겨질 정도로 방치돼 있다.

시장 안에는 전국구 명물 음식 가게가 둘 있다. 지역 납작만두 3인방 중 하나인 ‘남문납작만두’, 그리고 ‘비빔만두’의 최강자로 불리는 38년 역사의 ‘남문만두’다. 만두가 의외로 강세다. 최근 들어 차례와 상관없이 식구와 함께 먹기 위해 만두를 박스째 사갖고 간다고 한다. 갈수록 빵에 많이 길들여져 떡은 상대적으로 인기가 덜하다. 많이 준비해봤자 먹는 사람이 없어 차례와 간식 겸용이 될 만한 걸 고르다 보니 송편 자리를 밀고 들어간 게 바로 만두·찐빵·낱개 포장떡이다. 달성군 가창면사무소 주변에 밀집된 가창찐빵거리의 핫플레이스인 ‘호찐빵’도 명절용 찐빵이 박스째 잘 팔려나간다.

남문시장 떡집거리에서 가장 오래된 떡집은 ‘경남떡집’이다. 1983년쯤 문을 열었다. 시어머니 일을 돕던 안동 출신 김정숙 사장이 2대 사장으로 지금껏 한 자리를 고수한다. 마진이 그렇게 크지 않아 별도 직원 없이 모든 과정을 혼자서 감내한다. 김 사장은 대구 염매시장 덕산떡전거리, 그리고 신세대를 겨냥한 지역 퓨전떡문화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하고 있다. 이 집에서 가장 인기 있는 건 콩고물 묻힌 인절미다.

가게를 찾았을 때 그녀는 송편 빚기 삼매경에 빠져 있다. 그런데 송편 모양이 좀 이상하다.

“왜 달 모양으로 송편을 빚지 않으세요.”

“대구 추석 송편은 달모양이 아니라 손으로 압착해서 만든 손송편이 대세입니다. 손송편은 대구만의 전통이죠.”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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