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기자의 ‘脈을 잇는 사람들’] 이명희 명창과 제자들

  • 김수영 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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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9-21   |  발행일 2018-09-21 제41면   |  수정 2018-09-21
대구 판소리 산역사 스승, 명창의 소리 이어가는 딸과 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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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희 명창(대구시무형문화재 제8호 판소리 예능보유자, 왼쪽에서 둘째)과 그의 제자들(맨 왼쪽부터 정정미, 성정모, 이소정)이 모정이명희판소리전수관에서 포즈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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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무형문화재 제8호 판소리 예능보유자인 이명희 명창이 창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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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와 한 무대에서 공연하고 있는 이명희 명창(오른쪽). <영남판소리보존회 제공>

인터뷰를 하기 전 사진촬영부터 했다. 이명희 명창(73·대구시무형문화재 제8호 판소리 예능보유자)과 그의 제자 3명이 모정이명희판소리전수관에 모였다. 사진기자의 요청에 맞춰 자리를 잡고 사진을 찍는 내내 유쾌한 모습들이 이어졌다. 사제지간이라 했는데 사진을 찍는 모습이 마치 가족 같았다. 제자이자 딸인 정정미씨(40·전수조교)를 비롯해 제자인 성정모씨(47·전수조교), 이소정씨(39·이수자)는 오누이같이 다정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농담을 섞어가며 때로는 가족처럼 티격태격 싸우는 듯한 모습도 보여가면서 사진을 찍고 인터뷰를 이어갔다.

가족처럼 느껴진다는 기자의 말에 최소 10년 이상 한솥밥을 먹으며 판소리를 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정정미씨는 어릴 때부터, 성정모씨는 25년, 이소정씨는 10여 년 전부터 이 명창에게 소리를 배우고 있으니 그럴 법도 하다.

제자들이 아주 사이가 좋은 것 같은데 이런 화목한 분위기의 비결이 무엇인지부터 물었다. 이 명창은 “나에게 제자는 아들 딸과 같다. 그러니 저희들도 오누이 같이 지내는 게 당연하다”며 “이렇게 티격태격하다가도 판소리를 하고 행사를 치를 때는 어찌나 마음이 잘 맞는지…. 이제는 제자들이 이렇게 잘 지내고 멋진 행사를 만들어가는 걸 보는 게 가장 큰 보람”이라고 한다.


이명희 명창
전주대사습 대통령상·무형문화재
국악 저변 확대…다양한 경연 기획
“힘들지만 전승 게을리해서는 안돼
성실히 전통계승하는 제자들 대견”

제자 정정미·성정모·이소정씨
10여년이상 한솥밥 먹으며 판소리
서로 오누이처럼 지내며 소리 배워

딸 정씨 “판소리전수관 이을 소임”
25년간 호된 가르침 받은 성정모씨
“스승소리 듣자마자 운명처럼 느껴”
명창에게 배운 후 구미활동 이소정씨
“천직인 소리길 열어주신 고마운 분”

작년이어 올 10월 영남소리제전 개최
신인·학생부 신설 가왕전 규모 키워
소리·무용 어우러진 최고무대 선사



이 명창은 대구 판소리의 산역사라 할 수 있다. 37세 때 만정 김소희(1917~95, 전북에서 태어난 판소리 여성 명창. 조선성악연구회, 화랑창극단 등에서 판소리와 창극배우로 활동했으며 1964년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춘향가 예능보유자로 지정됐다) 문하에 들어가 소리를 배운 그는 뒤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더 열심히 익혔다. 이 덕분에 전주대사습놀이 명창부 대통령상을 받았고 1990년대 초반 대구시무형문화재가 되었다. 그 이후로 자신의 개인공연을 꾸준히 이어가고 제자 양성에 힘을 쏟은 것은 물론 국악인구 저변 확대를 위해 달구벌전국청소년국악경연대회, 상주국악제 전국국악경연대회, 대구전국민요경창대회 등을 기획해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다.

스승의 이 같은 왕성한 활동을 곁에서 늘 지켜봐온 제자 성씨가 스승의 말을 이어갔다. “몸이 편찮으셔서 이제는 소리에만 신경을 쓰면 되는데 국악 인구를 늘려야 된다며 아직도 좋은 사업 구상에 골몰하신다. 건강도 돌보지 않고 오로지 국악 발전에만 신경을 쓰는 모습을 보면 존경스럽기도 하고 때론 걱정스럽기도 하다”고 솔직한 속내를 드러냈다.

이 말에 이 명창은 “내 아들이나 다름 없는 제자라 저런 말을 한다”고 한 뒤 “국악을 배우려는 사람이 점점 줄고 국악이 뒷방늙은이 취급을 받는데 이렇게 활동하지 않으면 우리 전통음악을 어찌 살리느냐”고 반박한다.

그 말에 성씨는 “늘 저 말씀만 하신다”며 안타까워했다. 성씨에게 역시 이 명창은 어머니 같은 분이다. 군대에 들어가 해군군악대로 활동하던 그는 우연히 TV프로그램에 나온 이 명창을 보고는 호기심이 발동해 전역하자마자 이 명창을 찾아갔다. 스승의 소리를 접한 뒤 그의 삶의 방향을 정해버렸다.

“진짜 운명처럼 소리가 다가왔습니다. 스승님의 소리를 듣고는 이것이 내가 할 음악이란 생각이 들었지요. 그래서 능력은 없지만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지금까지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스승님을 보면서 한계를 느끼지만 그나마 이 정도의 실력을 갖추도록 해준 것도 바로 스승님입니다. 스승님의 엄격함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평소에는 소탈한데 가르치실때는 호랑이 선생님이 따로 없지요.”

겸손한 제자의 말에 이 명창은 “판소리를 하는 남자들이 잘 없다. 쉽지 않은 소리의 길을 걷고 있는 제자인 데다 소리가 아주 좋다”고 은근슬쩍 칭찬의 말을 전한다.

이 명창의 말에 딸인 정씨가 “첫손 꼽을 만한 좋은 소리를 가진 명창”이라며 성씨의 실력을 치켜세운다. 이 명창의 제자 가운데 성씨만큼이나 오랜 소리 역사를 가진 이가 바로 정씨다. 어릴 때부터 어깨 너머로 배워온 소리인지라 자연스럽게 어머니의 길을 이어가고 있다. 판소리 전수조교는 물론 이 명창이 설립해 이사장을 맡고 있는 <사>영남판소리보존회 부이사장을 맡아 실무를 담당하고 있다. 또 한국국악협회 대구지회 국극분과위원장, 국악愛숲 전통예술원장, 계명대 평생교육원 국악학과 외래교수, 대명공연예술센터 판소리강사 등으로 왕성히 활동하고 있다. 소리는 좋아했지만 평생 이 길을 갈 것이란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늘 바쁜 어머니의 일을 돕다가 자연스럽게 발을 담그고 말았다.

“현재 어머니와 같이 살면서 소리를 배우고 어머니의 판소리전수관도 운영해가고 있는데 쉽지 않은 일입니다. 어머니가 계셔서 소리하는데 큰 힘이 되었지만 어머니가 그동안 이뤄놓은 업적을 잘 이어가야 한다는 부담도 상당히 큽니다. 그래서 제 아이들은 이 길을 가지 않길 바랐는데 두 딸이 모두 소리를 좋아해 이 길을 갈 것 같습니다. 큰애는 이미 예술고등학교에 입학해 판소리로 진로를 정했지요.”

말은 이렇게 하지만 정씨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머니와 판소리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다. “어머니는 지역에서 판소리를 널리 알리고 발전시키는데 일조를 하셨는데 좋은 제자들을 많이 배출한 것도 큰 의미가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이 제자들과 함께 어머니의 국악 정신을 잘 이끌어가는 게 제자이자 딸인 저의 가장 큰 소임이라 생각합니다.”

딸의 말에 이 명창은 “나이가 든 데다 건강이 예전 같지 않아 대외활동이 조심스러운데 딸이 이런 점을 많이 보완해주고 있다. 외롭고 힘든 길을 걷고 있지만 늘 씩씩하게 일해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이들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이소정씨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10여 년 전 학교 선생님의 추천으로 이 명창의 문하에서 소리를 시작한 그는 구미에서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국악인이다. 구미에 국악을 일으킨 명창 박록주 선생을 기념하는 박록주기념사업회 이사이기도 한 이씨는 “소리는 나와 딱 맞는 천생연분이다. 스승님은 나의 천직이라 할 수 있는 소리길을 열어준 고마운 분”이라며 “스승님을 롤모델로 삼아 좋은 국악인이 되는 것이 꿈”이라는 소망을 밝혔다.

이 명창은 이런 제자에게 오히려 고마움을 표시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10여 년 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늘 성실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대견스럽다. 아직도 일주일에 5일 이상 배우러 온다. 타고난 소질이 있는데다 성실함까지 겸비하니 실력이 일취월장할 수밖에 없다. 마치 딸처럼 다정하게 말벗까지 해주니 여러모로 사랑스럽다”고 했다.

이런 제자들과 힘을 합쳐 이 명창은 여러 사업들을 해나가고 있지만 어려움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달구벌전국청소년국악경연대회, 상주국악제 전국국악경연대회 등 10년 넘게 해오던 기존의 큰 행사도 많은데 이 명창이 지난해 영남 판소리의 찬란한 명성을 되찾자는 취지의 영남소리제전이라는 대규모 행사를 기획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대구문화재단의 집중기획지원사업에 선정된 이 행사는 이틀에 걸쳐 대구문화예술회관과 경상감영공원에서 다양한 국악 공연을 보여줘 호응을 얻었다. 판소리 명창들이 출연하는 단순한 국악공연에서 벗어나 대구 판소리의 역사 및 미래 발전과 관련한 학술세미나를 열고 전국 명창들이 참여하는 판소리 가왕전(전국판소리경창대회)이라는 새로운 행사를 기획해 눈길을 끌었다.

이 명창은 “조선 말기에 경상감영공원 선화당 앞에서 경창대회가 열렸다고 한다. 이 대회는 일종의 판소리 등용문이었고 내로라하는 전국의 소리꾼들이 선화당 앞에서 혹독한 신고식을 치렀다. 이같은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영남지역 판소리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당시 융성했던 판소리의 명성을 이어가기 위해 판소리 가왕전을 마련했다”고 이 행사의 의의를 설명했다.

영남소리제전은 올해도 대구문화재단의 우수기획지원에 선정돼 오는 10월3일 경상감영공원에서 치러진다. 오전 10시부터 판소리 가왕전을 치른 뒤 오후 4시부터는 국악공연 ‘경상감사 국악을 즐기다’를 마련한다. 판소리 가왕전의 경우 지난해는 명창부만 열었는데 올해는 신인부, 초·중·고부도 신설해 행사의 규모를 키웠다. 이 명창이 총감독, 김재만 극단 엑터스토리 대표가 총연출을 맡아 소리와 무용이 함께하는 품격높은 무대를 선사할 예정이다.

이 명창은 최근 국악이 침체 양상을 보이는데 우려를 표시했으나 제자들은 희망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전수조교 정씨와 성씨는 “어머니는 특히 국악을 하는 젊은층이 줄어들어 걱정을 많이 하는데 젊은 국악인들이 중심이 돼 퓨전국악밴드 등을 결성해 국악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어머니와 저희처럼 전통국악의 맥을 이어가는 사람들도 있고, 현대적 감각의 국악을 선보이는 이들도 많아 국악의 밝은 미래를 예견하게 한다”고 했다.

이렇듯 국악을 걱정하고 국악을 사랑하면서 서로 힘을 합쳐 국악을 일으키려는 이들의 모습을 보니 그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은 듯했다. 그들의 열정이 국악의 힘을 키우는데 큰 불씨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글= 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사진=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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