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美연방대법관, 법의 언어로 차별과 싸우다

  • 노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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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1-18   |  발행일 2020-01-18 제16면   |  수정 2020-01-18
[신간] 긴즈버그의 말
소수자지만 균형감각 갖고 인권 위해 싸워
적확하고 품위 있는 언어로 표현된 신념
법정의견서·인터뷰·강연 등서 추려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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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여성 연방대법관들. 왼쪽부터 샌드라 데이 오코너 전 대법관, 소니아 소토마요르, 긴즈버그, 엘리나 케이건 대법관. <마음산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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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 베이더 긴즈버그·헬레나 헌트 지음/ 오현아 옮김/ 마음산책/ 200쪽/ 1만5천500원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살아있는 전설' 혹은 '살아있는 역사'라는 수식어에 걸맞은 삶을 산 인물이다.

1933년생으로 이제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인 그는 1993년 미국 연방대법원의 역사상 두번째 여성 대법관으로 임명됐다.

긴즈버그가 두번째 여성 대법관이어서 유명한 것만은 아니다. 어찌 보면 그 자신도 소수자였던 삶을 부단한 노력으로 멋지게 살아냈고, 인간이 가지는 보편적 평등권 보장을 위해 법률가로서 많은 노력을 해왔기에 명성을 얻은 것이다. 미국의 많은 젊은이들, 특히 여성들의 '롤모델'로 꼽히는 인물 중 한 명으로, 우리나라에 영화와 다큐멘터리로 소개된 바 있다.

이번에는 책을 통해 긴즈버그를 만나볼 수 있다. 최근 출간된 '긴즈버그의 말'은 법률가로서 그의 삶이 담긴 '말'들을 모은 책이다.

긴즈버그는 한평생 많은 이슈에 대해 적확하고도 품위 있는 언어로 자신의 논리를 펴왔다. 법정 의견서와 언론 인터뷰, 강연 등에서 그가 했던 말을 통해 긴즈버그의 풍부한 지성과 신념을 알 수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웅장한 입구에는 '법 앞에 평등한 정의'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인종과 젠더. 그외 출생 신분은 이제 더 이상 과거처럼 정의에의 접근을 막는 장애물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빈곤층과 심지어 중산층까지 법정에 서려면 재정적 장애에 맞닥뜨린다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들은 지갑이 두둑하거나 정치적 배경이 든든한 사람들과 달리 안정적인 접근 수단을 향유하지 못한다."(2001년 4월, 워싱턴대 로스쿨에서) 마치 현재 우리 사회를 향한 일갈 같다.

그는 '진보' '보수'를 일차원적으로 나누는 진영논리에 대해서도 나지막이 꼬집는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혁신적 사건은 공화당원으로 나고 자라 애리조나 상원 다수당 원내 대표를 지낸 샌드라 데이 오코너가 대법관으로 임명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 둘은 여성의 기회와 관련된 모든 사건에서 놀라울 만큼 비슷하게 투표했다."(2014년 3월, 국립여성예술가 미술관에서)

'언론 출판의 자유'에 대한 말도 흥미롭다.

"숨김없이 자기 생각을 말할 권리, 빅브라더 정부가 옳게 생각하고, 말하고, 글을 쓰라고 다그칠까봐 노심초사하지 않아도 될 권리, 그것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중요하다."(2017년 2월, 스탠퍼드대학에서)

긴즈버그의 가장 빛나는 부분은 바로 '균형감각'에 있다. 여성과 소수자를 대변하면서도, 자신이 변호해야 할 대상을 국한하지 않고 인간의 보편적 평등으로 확대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사회적 약자인가 아닌가, 법과 사회의 모순과 편견으로 피해를 보느냐 아니냐'였다. 긴즈버그는 여성 혹은 남성만의 권리가 아니라 '인간'의 권리라는 점을 수시로 강조해 소모적인 성별 갈등이나 오해를 막았다.

책 곳곳에서는 그런 구절을 발견할 수 있다.

"남녀의 '태생적 차이'는 축하할 일이지, 어느 한쪽 성을 모욕하거나 개인의 기회를 인위적으로 제한하는 근거로 작용할 수 없다. 성별 구분을 여성의 법적, 사회적, 경제적 열세를 조장하거나 공고히하는데 활용해서는 안된다."(1996년 6월, '연방정부 대 버지니아 사건' 판결문에서)

"중요한 것은 시민 인권이었다.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의 권리도 중요했다. 나는 그것을 양성의 평등한 시민권을 위한 투쟁이라고 불렀다."(2016년 10월, 한 토크쇼에서)

"몇몇 장소에서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욕설'로 통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페미니즘이 의미하는 것은, 여성에게 동등한 기회가 주어져야 하고 자신이 원하고 또 그럴 능력도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 천부적인 재능을 발휘할 동등한 기회가 젊은 남녀 모두에게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2013년 5월, 시카고대학 로스쿨에서)

책은 한 가정의 아내이자 엄마, 때로는 병마와 싸워야 하는 약한 인간이기도 한 긴즈버그의 삶에 대해서도 싣고 있다.

"두번의 암을 이기게 해준 것은 '나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할 일이, 중요한 일이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고통과 통증에 머물러 있을 수 없었다."(2016년 9월, 노터데임대학에서)

"능력이 닿는 한 최선을 다해 이 훌륭한 일에 매진하려고 한다. 내가 영감을 주는 존재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다."(2015년 2월, 블룸버그)

이렇게 말했지만, 긴즈버그는 자신의 존재가 세상에 가지는 의미를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같은 시간을 살아간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위안과 자극이 되는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진정한 의미의 '스타(star)'다. 노진실기자 know@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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